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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치아, 부서지는 마음

스펙트럼

치과의사가 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되어간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그동안 치과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왔다. 혹한에 수도가 얼어서 진료를 며칠 동안 못한 적도 있고, 반대로 화재가 났다가 초기진화 되어서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아찔한 적도 있었으며, 환자분이 쓰러져서 119 구급대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진료 중에 보철물이 입안으로 떨어져서 아이가 삼켜서 급히 흉부 방사선사진 촬영의뢰를 한 일도 있었고, 진료 도중에 정전이 되어서 하던 진료 중단하고 내원한 환자분들 귀가시켜드리는 해프닝도 겪어 보았다. 물론 대부분의 하루하루는 귀여운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도 많은 날들이었고,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가슴 뿌듯함의 보람이 있는 날들이 많음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제까지의 어떤 일들보다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생겼다.

한 달쯤 전에 앞니를 다쳐 절반정도가 부러진 상태에서 여러 병원을 거쳐서 타 치과에서 발수를 하고 임시충전 상태로 내원한 아홉 살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머님께서 부러져나간 치아 조각을 소중히 가지고 오셨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부러진 부분을 붙여주지 않고 크라운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소문하여 찾아왔다고 하셨다. 방사선 검사결과 치근파절은 안보이고 가지고 오신 파절편이 다행히 남은 치아와 쪽이 맞아 보였다. 평소에도 부러진 치아 모양 회복치료의 시작은 조각이 맞으면 붙여보고 만일 그것이 쉽게 떨어지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진료스타일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근관치료 마무리 한 후 떨어질 가능성이 있더라도 일단은 파절편을 붙여보겠다고 치료계획을 설명 드리고 가져오신 치아조각은 깨끗하게 처리해놓기 위해서 병원에서 보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연락주시더니 아이의 아버님이 대학병원에 가보자고 하신다고 하시면서 맡겨두었던 부러진 치아 조각을 받아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진료실장이 상기된 얼굴로 “원장님 그 조각 놓아둔 곳에서 보이지 않아요. 주위를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여요. 어떡하지요?” 정말로 대략난감 하였다. 진료 중간에 계속 찾기를 거의 하루 종일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았다.

실장이 전화 드려서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려드리니 극심하게 화를 내시면서 무조건 찾아내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하루 이틀 더 찾아보았으나 발견되지 않아 다시 전화 드려서 사실을 알리고 병원에 오셔서 상의하시자고 하였으나 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고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변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만 빨리 정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다. 이후에 직접 어머님과 전화통화를 통해서, 문자를 통해서 반복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이후에도 여러 번 직원을 통해서 다른 병원에서 부러진 치아의 회복치료에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보상에 관한 입장을 전달하였으나 한 번에 기본 1시간 이상 장시간 통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께서는 그런 큰일을 저질러놓고 가볍게 보상을 생각하는 것이 기가 막히며, 이번의 치료비는 물론이고 아이의 성장이 끝난 후의 완전한 보철치료비까지 보상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런 보상은 치아조각을 잊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내용이 아니라 아이를 다치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이 해주어야 할 보상내용이라고 말씀드리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고 요청 드렸는데 우리병원에서 그렇게 보상을 못해주겠다면 변호사 선임, 여러 단체에 민원신고, 그리고 지역사회에 우리병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인터넷 내용을 올리겠다는 등의 이야기 까지 하셨다.

혹시라도 너무 병원 입장에서 보상범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해서 치과의료계의 지인들, 그리고 일반 분들, 심지어 변호사분에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서 조언을 해달라고 해보았지만 상황이 답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보상을 해달라는 것은 너무 무리라고 생각한다 라는 답변만이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보상까지는 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 드린 후에 기다려보고 있었다. 며칠 후 보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민원이 들어왔는데 사실 확인을 위해서 연락했고 사안이 보건소에서 처리할 내용은 아니니 제발 당사자 간에 원만히 잘 해결하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병원에 방문하셔서 초진 영수증과 차트복사본을 발급해 달라고 하셨다. 준비하는 동안에 치아조각을 분실한 실장이 직접 뵙고 사과를 드리는데 장시간 전화상으로 했던 이야기를 다시 따지는 것을 시작하셔서 붙들려 실장이 진료에 복귀를 못하는 상황이 생겨 다른 직원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데스크 앞에서 큰 소리를 한참동안 하시더니 급기야는 직원에게 당신 아이가 당한 일보다 더 나쁜 일이 당신 아이에게 일어나기를 빌거라는 말까지 하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지 정말 확신이 안선다. 보관하기로 약속한 치아조각을 분실한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어떻게 보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 정해진 룰이 있을 수는 없지만, 사람이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면서 예측하지 못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은 따르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부서지는 내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고 있다.

이번 일이 어떤 형태로 끝나더라도 아마도 나의 치과인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에서 하나가 될 것임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럴 것이라면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기왕이면 해피엔딩을 원하듯이, 지금까지의 소통의 반전으로 어머님도 병원도 이전까지의 생각에서 탈피해서 훈훈한 상호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잘 마무리 되고, 또 그것을 아름답게 기억하면서 이후의 치과생활이 더욱 즐겁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