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히 여기사
지금은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10여년 전 출퇴근 시간 분당선 전철에서는 시각 장애인 (맹인, 장님, 봉사)이나 하지 장애인 (절름발이, 앉은뱅이)들이 찬송가가 들어있는 녹음기를 사용하거나 때로는 직접 찬송가를 부르면서 비좁은 통로에서 구걸하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때 저는 왜 이들은 찬송가만 부르는가? 목탁은 치지 않는가? 아마 찬송가를 틀거나 부르는 것이 목탁을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벌이(?)가 좋아서 그런가? 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한국 전쟁을 겪은 저는 1·4후퇴 때 추운 겨울날 사방에서 포성이 가까이 울려오는데 피난민들은 엄청난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피난짐도 버리고 심지어 등에 업고 있던 아이까지 길가에 내던져 버리고 무작정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고 있던 기나긴 피난 행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미군들은 후퇴 하면서도 자기들의 생명인 무기도 버린 채, 그들이 타고 있던 지프차에 길가에 내버려진 울고 있는 아이들을 가득 태우고, 일부는 걷지도 못하는 애들을 들고, 안고서 얼어붙은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1952년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미국인 스완슨 목사가 우연히 숙소 창문을
- 김철위 S+H치과의원 원장
- 2015-10-30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