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정해진 날이다. 학교 처음 가는 날, 소풍 가는 날, 시집 장가가는 날, 예배당 가는 날, 팥죽 먹는 날, 고희 잔칫날,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애인 만나는 날, 손자 손녀 백일 날…. 정해진 날은 설레고 들뜨고 흥분되는 날이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기다려지고 고대하는 날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날이다. 특히 소풍가는 날아나 애인 만나는 날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날은 슬픈 날이다. 부모님 돌아가신 날. 어린 딸을 잃은 날, 낙방한 날, 실연을 맛 본 날, 부도가 난 날, 무언지 모르게 공연히 눈물 나는 날…. 이런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해진 날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피하려 하고 잊으려 해도 자꾸만 생각나고 떠오르는 날이다. 그날은 잉태와 생산을 상징하는 날이다. 보통 그날을 손님 왔다고 한다. 즉 여성의 경도와 월경의 날이다. 이는 자손을 번식시키고 잉태를 나타내는 증표다. 그날 즉 손님이 없든가 고장이 나면 자손의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희망을 잃게 된다. 그래서 그날이 중요하고 꼭 있어야만 하는 날이다. 그날은 정년이 없다. 대체로 그날이라 하면 정해진 날짜와 한정된 기간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시작하는 날이 있으면 끝나는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환자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부를 까요?” 라고 물었다. 쓰러진 의사는 말이 없다. 정말로 정작 의사 선생님이 아프고 쓰러지면 이런 꼴이 일어난다. 누가 치료를 할 것인가가 문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 듯” 의사 자신이 치료를 못하니 말이다. 이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의사가 아프면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 의사가 아파 드러 누우면 환자는 어떻게 할까? 속절없이 고통을 참고 이겨야만 한다. 이런 경우 의사가 죄인이다. 그러니 의사 자신이 아프다고 드러 누울 수 없는 노릇이고 나 몰라라 할 처지도 아니다. 하여간에 의사가 아프면 골치 아프고,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의사가 아파서 환자가 되었을 때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인 의사 자신 뿐 아니라 자기를 치료해 주는 의사에 대한 참된 모상과 진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 자신을 투영해 볼 수도 있다. 우연히 눈의 망막이 터져 안과에 갔다.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처음 있는 일이다. 치과의사가 앞이 안 보인다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겠는가? 딴 환자를 위해서
맷돌은 돌로 아래짝 위짝을 같은 크기로 만들어 아래짝 한 가운데에는 수쇠, 위짝에는 암쇠를 끼워 매를 돌릴 때 벗어나지 않게 하고 곡식이나 콩 등을 타거나 갈아서 다른 재료를 만드는 연장이다. 맷돌의 모양새는 우선 윗돌과 아랫돌로 되어 있는데 윗돌에는 망밥을 넣을 수 있게 구멍이 나 있고 옆구리에는 망손, 매손, 어이, 어처구니라고 하는 손잡이가 있고 가운데는 암쇠가 있어 아래짝 수쇠와 맞물리게 되어 있다. 아래짝은 가운데 수쇠가 있고 바닥은 곡물이나 망밥이 잘 타지거나 연마가 잘 되게 매조가 처져있다. 맷돌은 BC 1500~3000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사용됐다고 하며 우리나라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맷돌의 이름도 다양하다. 과거에는 매, 매돌(재물보), 맷돌, 물명고, 물보(농가월령가), 차마(車磨), 연애(碾磑), 애(磑), 마(磨)(훈몽자회), 마석(磨石)(훙몽자치), 석마(石磨)(해동농서)로 불리었다. 또 지방에 따라 방언으로 가래(제주), 동매(예산), 망(함북, 함남, 평남), 망똘(황해도), 매뚝(전남, 전북), 매(전남, 충남) 등등으로 불리여 왔다. 어처구니없는 맷돌을 생각해 보자. 원래 ‘어처구니’는 명사로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무 당 벌 레텃밭 상추에 무당벌레가 찾아 왔네.농부는 좋아라 웃음 짓고아이는 신기한 듯무당벌레를 만지려 하니두 점 박이 무당벌레는 수줍은 듯사랑하는 줄무늬 무당벌레를 찾아 날아가 버리네.아이는 아쉬우나 무당벌레에게아름다운 사랑 꿈꾸기를 바라며손을 들어 안녕하네.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고 인 돌오천년 침묵이박모(薄暮)와 더불어지난밤 꿈과 함께 하네.한때의 맹심(萌心)이장대하고 웅대해거석(巨石)으로 태여 났네.이름도 모르고기억도 할 수 없는할아버지의 할아버지꿈속에 행여나조상님이 오셨나 해큰 절로 거석을 안아보네
난 하나님보다 하느님이 좋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시바신이 하나님일 수 있다.그러나 하느님은 하늘 어딘 가에 계시기도 하고, 내 마음 속에 있기도 하고, 큰 나무 등걸 아래에도 계시고, 부엌 봉당 한구석에 있기도 하고, 장독대에 놓인 맑은 정한 수 한 그릇에도 있다. 하느님에게는 정(情)이 있고, 마음이 있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무엇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품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게 있다.그래서 기대고 싶고, 같이 하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허물을 털어 놓아도 나무라지 않고, 보듬어 줄 것만 같다.항상 고맙고, 의논하고, 떼쓰고, 응석 부리고, 울면서 하소연 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웃으며 감사도 한다.첫째로 하느님께 감사할 것은 내가 남을 위해 의료봉사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던 시절에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한 외국인의 도움으로 질병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 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내 또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이에게 의료봉사를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하느님 감사합니다.둘째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는 거다. 사실 돈이 많으면 좋다. 죽
겨울 담쟁이 고즈넉한 돌담에 푸르고 넙적한 담쟁이 잎이 탐스럽게 걸려 있다. 소소한 바람이 담쟁이 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결을 따라 담쟁이 잎이 파도치듯 춤춘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 하듯…….어느 잎은 간지럽다고 웃고, 어느 잎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속내를 보이기 싫은 잎은 수줍은 듯 몸태를 기울고, 호방한 잎은 너털웃음에 힘차게 세상을 뒤흔든다. 이 모습은 여름 담쟁이다. 여름 담쟁이는 부러울 것이 없다. 힘차게 자랄 수 있는 물이 넉넉하고, 강렬한 태양은 담쟁이 잎을 짙푸르게 만들고, 담쟁이 넝쿨은 무서울 것 없이 맹렬히 뻗어 간다. 세찬 장맛비에도 몸 한번 툴툴 털면 빗물이 산뜻하게 떨어져 더더욱 깔끔해 지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너 번 허리를 기울었다 일으키면 거뜬하다. 여름 담쟁이는 담쟁이의 절정기이다.잔서리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검푸르던 담쟁이 잎이 어느 순간 단엽(丹葉)으로 변했다. 다소곳이 숙인 붉은 담쟁이 잎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꿈의 잔치를 하고, 잔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이 아름다웠던 세월의 날개를 너울너울 춤추며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가을 담쟁이의 잎은 마음의 허전
겨울 담쟁이 고즈넉한 돌담에 푸르고 넙적한 담쟁이 잎이 탐스럽게 걸려 있다. 소소한 바람이 담쟁이 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결을 따라 담쟁이 잎이 파도치듯 춤춘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 하듯…….어느 잎은 간지럽다고 웃고, 어느 잎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속내를 보이기 싫은 잎은 수줍은 듯 몸태를 기울고, 호방한 잎은 너털웃음에 힘차게 세상을 뒤흔든다. 이 모습은 여름 담쟁이다. 여름 담쟁이는 부러울 것이 없다. 힘차게 자랄 수 있는 물이 넉넉하고, 강렬한 태양은 담쟁이 잎을 짙푸르게 만들고, 담쟁이 넝쿨은 무서울 것 없이 맹렬히 뻗어 간다. 세찬 장맛비에도 몸 한번 툴툴 털면 빗물이 산뜻하게 떨어져 더더욱 깔끔해 지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너 번 허리를 기울었다 일으키면 거뜬하다. 여름 담쟁이는 담쟁이의 절정기이다. 잔서리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검푸르던 담쟁이 잎이 어느 순간 단엽(丹葉)으로 변했다. 다소곳이 숙인 붉은 담쟁이 잎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꿈의 잔치를 하고, 잔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이 아름다웠던 세월의 날개를 너울너울 춤추며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가을 담쟁이의 잎은 마음의 허전함을 나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