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인턴들이 으레 그러하듯 저 역시 신환을 주로 접합니다. 신환의 종류를 크게 둘로 나누자면, 아무 정보 없이 대학병원을 찾아온 경우와 타 기관에서 의뢰되어 온 경우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환자의 주소는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의뢰되어 온 환자의 대부분은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의 험로를 주소와 연관 지어 장황하게 늘어놓기 마련입니다. 의료전달체계에 관심이 많은 제게 상급 기관으로 환자가 의뢰된 배경을 유추하는 일은 꽤 흥미로운 것이지만, 유닛체어에 엉덩이가 닿기도 전에 하소연을 쏟아내는 환자에게서 명백한 주소를 찾아내지 못할 때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제 능력으로 환자의 주소가 쉽게 파악되지 않을 때 환자가 들고 온 진료의뢰서는 큰 도움이 됩니다. 숙련된 개원의가 관찰한 임상 및 방사선학적 소견이, 저같이 미숙한 치과의사에게 등대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요. 진료 중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와 관련하여 내원한 환자가 들고 온 의뢰서의 쓰임은 더욱 요긴합니다. 이 경우 환자는 대개 화가 나 있는데, 의뢰서에 적힌 주소를 빨리 파악하고 적절한 조처를 한다면 환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발적 사고임에도 의뢰서 한 장 없
한 번씩 카카오톡을 열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구경하곤 합니다. 잘들 살고 있나 궁금할 때면 메시지를 보내 인사를 건네기도 하죠. 그러고 보니 기술의 발전이 개인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에만 기여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안부를 묻기에도 썩 괜찮은 기술이니 말이죠. 제 카카오톡 친구 중에는 이미 몇 달째, 그만 살고 싶다며 속을 썩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화창을 열어보니 제가 읽고도 답장하지 않은, 소위 ‘읽씹’ 한 메시지가 펼쳐집니다. 선선한 바람에 산책을 나섰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형 안녕하세요.” 녀석은 저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동생입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집을 나갔고, 일용직 아버지와는 연락이 쉬이 닿지 않았기에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남다른 성장 배경 탓에 사회성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아, 단순 노무 업종에서조차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또 어느 공장에서 어떤 일을 얼마 동안 하다가 쫓겨났노라, 녀석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좀 어떠셔?” 더는 제가 해줄 만한 잔소리도, 조언도 없기에 화제를 돌립니다. 아버지의 안부 말이죠
드디어 해방입니다. 쳇바퀴 돌던 국시실, 유구무언 원내생의 삶, 모든 집합도 안녕입니다. 내가 정말로 치과의사가 되었다니, 어깨가 으쓱합니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의사 양반’ 소리가 멋쩍지만 영 싫지만은 않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전공의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노숙인 상담원으로 지내온 궤적을 따라 예방치과의 진로를 고려하다 보니, 연고가 전혀 없는 강릉에서 걸음마를 떼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상이 시작됩니다. 새집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처음 걷는 길을 따라 마트에 가고, 먹어본 적 없는 식당에서 혼밥을 합니다. 매일같이 낯선 하루가 펼쳐집니다. 타교 출신으로 많은 배려를 받고 있지만, 전공의 업무들도 막연하고 생소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벅차올랐던 가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비어가고 편하게 대화 나눌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통장을 잠시 스쳐나간 전공의 월급 명세서를 보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울상이 됩니다. 순탄치 않은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고, 사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회상할수록 치과의사가 되었다는 감격에 더욱 고취됩니다. 제 스스로가 대견하고, 또 장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문득, 과연 그리 여길만한 것인지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