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만년동 스타벅스 앞 06시 40분. 젊은이 대여섯이 줄을 섰다. 가방이나 배낭에는 노트북이 들어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왼 종일 앉았어도 눈치를 주지 않으니, 쾌적한 독서실(?)에 좋은 자리 잡으려고 일찍 나와 기다린다. 몇 분 걸으면 서구보건소 버스정류장. 새벽 교통인구가 적고 배차시간이 떠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시계를 60년 전으로 돌려보자. 황금노선 홍릉 - 노고산 1번 버스 종점은, 현 신촌 로터리에서 서강대 쪽에 위치한 비포장 허허벌판. 비오는 날이면 신촌이 아니라 진촌,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새벽 여섯시면 버스타려는 시민이 백여 미터씩 줄을 섰다. 70여 명쯤 꽉 차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여차장이 “오라이!”, 차체를 탕탕 두드리면 출발이다. 버스는 처음 몇 정거장을 난-스톱으로 달린다. 다음 버스는 반만 태우고 출발하여, 이대 앞과 굴레방 다리에서 각각 20명씩을 더 태운다. 숨이 막혀 비명이 터져 나오면, 버스는 갈 짓 (之)자로 곡예운전을 한다. 젓가락 고르듯 승객을 이리저리 휘두르면, 신통하게도 다음 정류장에서 몇 사람 더 탈 공간이 생긴다. 능구렁이 기사님 비장의 특기다. 새벽 네 시 통금이 풀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를 창립하면서 졸저 ‘I. O. U.’를 냈다(2004). 대전광역시치과의사회장 때 영시(英詩)와 수필을 엮은 ‘첫사랑’(1993)으로 시작하여, ‘오늘부터 봄’은 대전치과신협 초대이사장(1996), ‘거품의 미학’은 협회 대의원총회 의장(1999)에 취임할 때 출판하였다. 자신의 포부와 정견을 홍보하려는 선거 입후보자의 통과의례, ‘출판기념회’와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점이라면 필자는 출판시점이 취임 후 3개월쯤이고, 최종 발송까지 모든 비용은 자비였으니, 선거운동이나 정치자금 모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컸지만, 회무를 추진할 때에 회원들이 베풀어준 이해와 협조를 되돌아보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 ‘차용증서(I Owe You)’라는 책 이름은, 캐리 & 론의 노랫말을 빌려 불가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풀어낸 수필 제목이었다. 장형은 부모(長兄父母)요 부모만 한 자식 없다는 말은, 인물비교가 아니라, 가없는 헌신의 내리사랑 얘기다. 공기와 물처럼 내 전부가 그 안에 잠겨있어, 떠나가신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님 은혜는 살아생전에 갚을 길이 없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만기
해군 군의관 전역 후 초창기 충남대학병원 치과 과장을 맡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12시까지는 선친의 임 치과에서 교정환자를 진료했다. 대위 4호봉을 조금 넘는 박봉이지만, 동문 주니어 스태프들과 어울려 즐겁게 보낸 5년이었다. 오후 4시 외래가 끝나면 테니스로 땀을 흘리고, 병원 앞 슈퍼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어 은행동 정종대포가 풀 코스였다. 임상연구비 연 백만 원은 사실 생활보조금인데, 논문 제출이 의무였다. ‘구저부(口底部)에 발생한 피부양낭종(Dermoid Cyst) 적출 증례’를 써서 용감하게(?) CPC에 발표했다가, Skin Inclusion을 따지는 조직병리학 교수에 진땀을 뺐다. 평소 큰소리 치는 내과는 직접 열어본 외과에 밥이요, 외과는 세포로 확인하는 조직병리에 밥이라는 속담과 나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다음부터는 주제를 치과 영역으로 돌렸다. 덕분에 남은 ‘하악 제3대구치 발육에 관한 X-선학적 연구’는 작으나마 보람 있는 논문이었다. 당시 성년 전후의 연령감정 수요가 많았다. 남자는 병역과 청소년 운동선수의 한계연령, 여자는 동갑이나 연하남을 기피하는 사회적 통념 탓이었다. 천여 장의 필름에서 제3대구치 발육상태를 10개 패턴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순위는 사람에 따라 바뀌어도, 으뜸가는 불가사의는 역시 인간 자체일 것이다. 인간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인문학(文史哲)이며 그 중심에 역사가 있다. 역사를 읽는 현실적 단위인 국가 흥망을 보면, 멸망 원인은 내우외환(內憂外患), 즉 내우가 앞선다. 가정에서 국가까지 경계해야 할 대상은 항상 ‘내부의 적’인 것이다. 협회장 재선거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은 교훈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처럼 수익구조가 없는 전문인 단체는 소송 같은 파상적인 소모전 공격에 대책이 없다. ‘미 투’의 물결로부터 “독버섯은 침묵과 방관을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보지 않았는가? 구성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무관심을 기화(奇貨)로, 목소리 큰 자가 휘젓고 다니는 일방통행을 방치하면,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른다. ‘닥치고 소송’의 재발 방지에 전 회원이 뜻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선거를 물고 늘어져도 문제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협회의 작은 통제력마저 훼손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요양기관이나 영리병원 등 대세의 흐름을 앞두고 심각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사무장치과 체인이 ‘연쇄소송’을 ‘학습 모델’로 삼아, 치
삼 년 전 최초의 협회장 직선제 선거 후에 ‘불복 움직임’ 소문이 돌더니, ‘설마 했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났다. 무슨 ‘소송단’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선거무효와 재선거의 비극만은 피하자는 칼럼 3편을 썼으나, 극단론에는 극약처방 외에 답이 없다는 통설만 증명한 채로, 결국 협회의 장래를 법의 심판에 맡기게 되었다. 지성인의 공식 단체로서는 부끄러운 무능의 노출이요, 회복하기 힘든 신뢰 추락을 자초(自招)한 것이다. 재선거 직전, 높은 투표율을 호소하는 글 제목을 ‘명예 회복과 재충전을 위하여’로 붙인 이유다(본지 2018년 4월 23일자 게재). 그에 앞서 썼던 세 편의 제목은, ‘1. 소송공화국 2. 신임절차 3. 재발 방지’였는데, 당시 또 다른 불복에 대비해 써둔 제3편은 다행히 게재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제 선거철이 다시 돌아왔으니, 또 한 번 법적 공방을 벌이는 불미스러운 사태를 우려하는 심정에서 올리기로 한다. 먼저 법원 조정위원 20여 년에 느낀 점을 정리해본다. 첫째, 생활관습·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고소·고발 건수가 16배가 넘고, 최종심까지 가는 비율은 더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활 법 미숙과 성급함 탓이요, 사법부
샌프란시스코를 세계 3대 미항으로 등극시킨 일등 공신은 금문교(Golden Gate Bridge)다. 바닷바람의 부식을 막으려고 매년 페인트(光明丹)를 칠하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린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 그 가운데 우뚝 선 빨간 두 개의 철탑과 양팔처럼 드리운 케이블… 금빛 석양과 만나면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네 번을 왔지만 전장 2.8km의 다리를 단체로 걸어서 건넌 것은 처음이다. 이러한 만남이 함께한 사람들 간에 장벽을 허물어 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함은 세상만사가 ‘만남(Meeting)’에 있다는 뜻 아닌가? 오지랖 넓게 궂은일을 도맡아 크고 작은 모임을 마련하고, 꾸리며 마무리해 내는 사람이 임원 내지 정치인이다. FDI·ADA 세계총회도 어김없이 준비·조직·실행 각 단계에 묵묵히 봉사한 여러 임원들의 땀의 결정이리라. 그러나 보다 원활한 진행과 풍성한 성과를 얻으려면, 공식적인 대회진행과 별도로,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리더십 있는 국가대표들은 초청 리셉션을 통하여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이번 대회도 개최국인 ADA·APDF(중식)·일본의 밤·ADA-FDI 연합·샌프란시스코 시·내년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