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돼서 무슨 짓이냐고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배낭여행을 마음먹었다 오래간만에 긴 휴가기간을 가져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던중에 일반여행사 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위에선 나이 50이 돼서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고 말렸지만 더 늦으면 그나마 시도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같아 배낭을 메고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역 근처에 숙소를 정해놓고 저녁에 그 도시 명물인 애플와인을 먹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선술집을 향했다. 마침 2008 유로 축구기간이라 술집마다 대형 TV를 켜놓고 술을 먹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처음 맛보는 애플와인을 먹어보니 발효시킨 술인지라 사과냄새가 나면서 시큼털털한 맛이 느껴졌다. 다시 돌아와 잠을 잔후 오전에 시내를 걸어 다니며 괴테하우스 등을 둘러보았다. 다리가 뻐근해졌다. 길거리에서 샌드위치 하나 사먹고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하이델베르그역에서 내린후 버스를 타고 옛 건물이 보존된 구시가지에 가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골목길이었다. 골목길사이에 위치한 학생 감옥이라는 곳에 들러봤다. 하이델베르그대학내의 학생끼리 자율적으로 200여년 동안 운영해온 터라 벽에
-덴탈캠프 거제도 원정진료기정말 좋은 일을늘 하시며 사시는 분은얼굴에도 저렇게 나타나는구나 # 첫째날아침에 일어나서 곤히 자는 식구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잰걸음으로 챙겨놓은 짐을 메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짐 옮길 때 비에 젖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많이 내리진 않았다. 택시를 타고 재단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보이고 어라, 얼굴이 흙빛이 된 권 소장님이 나타나셨다. 오늘 함께 출발하려고 며칠 밤을 새우셨다고 하니 그 마음이 짐작이 간다. 짐을 싣고서 출발. 짐 실으면서 드는 생각, 역시 우리나라는 낭자들이 더 우수하군. 여럿이 달려들어 정말 순식간에 짐을 버스에 실었다.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비오는 창밖을 바라본다. 크~ 좋다. 몽골 진료 때도 출발할 때 엄청 좋았는데… 버스 뒷 쪽에서 수원여대 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이 땅의 청년이여~” 나도 청년 할래…. 휴게소에서 점심 먹고, 다시 출발하는데, 날씨가 점점 좋아졌다. 간간이 햇빛이 비치는 곳도 있고, 하늘도 우리를 굽어 살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쪽 구석에서 권 소장님은 다시 시체로 변신. 애광원에 도착하니, 짐은 선생님들이 트럭으로 옮겨주시고
지리산 역사문화유산답사 끝없는 시간의 흐름속에한 점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간식을 먹으면서 재잘거리며 여행을 하는, 아주 귀한 기회를 가졌다. 이 순간만은 친구들과 나의 얼굴에 생긴 주름을 잊고 마치 20여 년 전의 학창 시절로 돌아 간 듯하였다.차창 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계곡들, 목적지인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들은 벌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들, 그리고 그 푸르른 나무들… 이 광경 하나로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준비하고 바삐 나온 수고를 이미 보상 받았다.제일 먼저 도착한 절은 실상사였다. 실상사의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전면에 있는 보광전과 양 옆의 탑을 바라보는 순간의 느낌은 ‘완벽한 정적’과 ‘평화’ 그 것이었다. 다른 절들과는 달리 단청도 하지 않았고 크지도 않았지만 실상사의 보광전이 주는 느낌은 군림하지 않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굽이굽이 굽은 지리산 능선으로 둘러 싸인 작은 평지 위에 지어진 보광전과 탑들, 완벽한 구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주문 앞에 있는 연꽃들을 재현한 분위기였다. 건물도 오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나주시 불회사 입구 돌장승은우리나라 돌장승의 ‘백미’다 장승은 경계표시나 이정표 또는 수호신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해 온 민속신앙의 조형물이다.지배계층 문화에서 소외된 불교, 도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민속적 장승신앙이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승은 마을장승과 사찰장승, 석(돌)장승과 목장승 등으로 나눌 수 있다.전남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 입구의 돌장승은 우리나라 돌장승의 백미라 할 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는 사찰장승이지만 마을장승을 그대로 옮긴 예로서 할머니는 주장군, 할아버지 장승은 당장군이다. 사실적인 박진감이 넘치며 우리네 주변의 친숙한 할머니, 할아버지 상의 전형으로서 해학성 넘치는 가운데 맑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늘 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사를 잘 살린 작품이다. 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풀덴쳐, 오버덴쳐, 코너스덴쳐, 임플랜트 덴쳐, 임플랜트 등등이 필요할까? 이런 시술이 없이도 한 없이 맑고 소박하게 살아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들 마음의 고향을 한번 느껴 보고, 자신들의 모습임을 느껴 봄직하다.가까운 운흥사에도 불회사 장승에 버금
언제가 가장 좋았는지묻는 말에 난 언제나‘지금’이라고 답한다 열두살 무렵의 생각으로, 막연히 스물여섯쯤의 나이면 삶이 방향을 잡고 평화로울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멋져보이던 영어선생님 영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스물여섯즈음은 내가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른채 지나가버릴만큼 변화와 갈등을 겪었던것 같다.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안돼서 좌절하고… 개원후 누구나 그렇듯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시간이 흐르고 결혼, 출산도 자연스럽게 지나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전엔 귀로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명치아래 어디쯤에서 들리게 되고 세상일의 판단기준이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인가"로 되어간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게 아름다워보이고 자신의 일에 최고인 사람에게 기죽던 내가 조금씩 다른 사람도 보이고, 평화의 소중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젊음 대신에 시간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좋거나 혹은 나쁜 기억일지라도 세상일에 헛된 일은 없어서 내게 추억이 되기도, 교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보니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사고를
국왕 가족이 살진 않지만그 규모와 화려함은예전 스페인 왕국의 영화 그대로 <1653호에 이어>다음날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을 떠나 다음여행지인 그라나다, 론다, 세비아가 있는 안달루시아지방으로 출발했다. 그라나다는 한때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세력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곳으로 세계문화 유산인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곳이다. 그라나다 유일의 한국 민박집에 짐을 풀고 시내관광과 옛 이슬람구시가인 알바이신을 둘러본 후 저녁엔 집시들의 동굴 플라맹고를 관람했다. 나중에 마드리드에서도 플라맹고를 봤지만 그라나다의 동굴 플라맹고가 더 흥겨운 것 같다. 부슬비 내리던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알함브라궁전에 갔다. 하루 입장객이 제한되는 곳이라 미리 예약을 못해서 줄을 서서 1시간정도를 기다려 입장을 했다. 알함브라궁전은 스페인 마지막 이슬람왕국이었던 그라나다왕국의 궁전으로 그 화려함과 조형미는 유명한 기타곡인 ‘알함브라의 추억’이란 노래가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전동안 알함브라궁전을 관람하고 다음 여행지인 론다행 기차에 올랐다. 론다는 안달루시아지방의 작은 도시로 스페인에 최초의 투우장이 생긴 곳이고 씨름 천하장사처럼 최고의 투우사들을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1651호에 이어그렇게 마음을 편히 하고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손전등의 불빛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결국은 꺼져버린 것이다. 아마도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켜져있는 상태였나 보다. 정말 큰일이었다.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고 주변에는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
스페인 여행을 선택한 것은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 싶었고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를 졸업 하고나서 가장 여유로우면서도 가장 바빴던 시기가 바로 작년 봄이 아니었나 싶다. 바로 나와 아내가 각각 페이생활과 수련을 마치고 개원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다. 그 바쁜 시간와중에서도 우린 어쩜 다신 이런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스페인 여행을 준비했다.아직 아이가 없던 때라 여행사를 통한 여행의 편안함을 버리고 직접 계획을 세워 스페인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느끼고 싶었다. 2주정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개원준비 때문에 9박10일로 개원 20일전에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인터넷을 통해 할인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바르셀로나-그라나다-론다-세비아-마드리드의 경로를 결정하고 둘러보고 싶은 명소들을 체크하고 도시별로 체류기간도 정하고 숙소를 정했다. 넉넉지 않은 예산과 배낭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국인 민박집이 있는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마드리드에선 민박집을 예약하고 중간에 이틀정도는 좀 편하게 쉬고 싶어서 론다와 세비아에서는 호텔을 1박씩 예약을 했다. 왜 스페인이었을까?스페
장애인에 대한 국가정책이치과영역에서 확실히 뒷받침돼마음 편히 치료를 받았으면… 그림같이 펼쳐진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재활병원이 제가 근무하는 일터입니다.상쾌한 아침, 출근하는 길엔 휠체어 혹은 기타 보조기구들에 의지해 운동하시는 환자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뇌병변 장애, 척수장애를 가진 분들입니다.마음껏 손발을 움직이실 수 없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뇌손상을 받으신 분들도 상당수입니다.‘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병원에 발을 들였지만, 생각처럼 환자분들과의 만남이 쉽지는 않습니다. 손놀림이 자유롭지 않으시기에 구강위생상태는 지극히 열악해 구강검진 자체가 고역일 때도 있고, 체어로 이동하시는데 일반인에 비해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치료 도중에도 돌발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나 뇌졸중, 뇌출혈, 정신지체 등으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그들이 하는, 알 수 없는 말들에 처음에는 시간을 갖고 귀를 기울였지만 차츰 차츰 소홀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어쩌면 망각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