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일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지속돼야자기 발전도 가능할 수 있다 아침 6시10분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고 나의 단잠을 깨우며 ‘5분만 더" 이불 속에 몸을 움츠리며 나오질 못한다. 6시15분이 돼서야 헐레벌떡 일어나는 나의 모습! 저는 올해 6년차 일산 백병원 구강외과 담당 치과위생사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둥지를 튼 이곳에서 벌써 6개월도 아닌 6년의 시간을 보내고 내년이면 7년이 되어가는 서른 살의 아줌마입니다. 아직은 새내기 한 달도 안된 초보 아줌마인데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함께 하는 일이 익숙치 않아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미숙한 사냥꾼입니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고 하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직업의 중요성과 자기 일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는 맞벌이 부부가 대다수이다 보니 저 또한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저의 바뀌어진 집 덕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일찍 도착하는 병원에서의 아침이 여유로운 진료준비와 함께 잠깐의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돼 하루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제가 일하는 장소는 항상 똑같은 치과인 반면에 매일 매일 환자들의 구강 안의 다양한 불편을 호소하는 방
치과의 진료 분야는입밖도 포함한악안면 영역입니다 몇 년 전 서울치대에서 제1회 악안면성형치과학회 강연을 들었습니다. 주로 보톡스를 이용한 안면성형 라이브 강의였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니, 치과의사가 어떻게 안면 성형을 하지? 성형외과에서 뭐라 할 텐데…! 근데,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의 한마디가 용기를 줬습니다. “치과의 진료 분야는 입안만이 아닌 입안을 포함한 악안면 영역입니다!"라고. 치과가 아닌 악안면 치과라는 거죠! 그 강의를 듣고 그 후 보톡스에 대한 공부를 더해서 드디어 첫 환자에게 보톡스를 시술했는데 그때의 기분 아주 묘했습니다. 매일 입속에 수없이 인젝션 하는데 입밖에 그냥 얼굴에 주사를 놓을 뿐인데 떨리다니…. 환자의 사각턱이 몇 개월 후 가름해져서 사진이 너무 잘 받는다며 좋아하고 친구도 데려오고…. 그 후 소개환자가 많아져 보톡스로 할 수 있는 모든 시술을 다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들의 요구가 자꾸 더 많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성형분야를 찾아서 환자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치과의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치과의사가 성형을 한다는 편견 때문에 분명한 선을 그어서 환자분을 대하고 있
가장 사실적인 행위예술이며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연극은 세상의 변화에도 영원하리라 시골 치과의사, 개업 15년차, 지독히도 틀에 박힌 일상, 마시고 마셔도 공을 치고 쳐도 지루한 일상, 아이들 학교성적 걱정, 느슨해지는 부부관계에 대한 고민, ‘이런 게 인생인가?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 싶었을 때 나에겐 뭔가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따르르릉” “어, 선생님.” “박 군, 내일 한 번 나와 보시게.” 약 2년 전, 평소 존경하던 고교시절 국어 선생님의 전화 한 통으로 나의 연극인생(?)이 시작되었다. 현직에 계시면서 극단의 고문을 맡고 계신 그 분과 가끔씩 식사를 할 때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대사 없는 행인 3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몇 차례 말씀드렸던 게 정작 현실이 되자, 긴장과 부담이 확 밀려왔다. 한편으론 예과 1년 시절 학과예술제 때, 엉겁결에 했었던 연극 한 편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용기를 일깨워 주었다. 낯설고 긴장되기까지 했던 새로운 시작도 막상 닥쳐보니 그 동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인지라 그럭저럭 적응이 되고, 마침 극단이 새로 준비하는 연극에 단역으로 캐스팅 돼 약 석 달 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퇴근 하고나서 두 서너 시간의 연
차를 아끼고 사랑하며차의 단점도 끌어 안아야진정한 카 마니아라 할 수 있다 치과원장은 내 직업이다. 그리고 카 마니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라는 물건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이 불러주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일상의 나’라면, 와이프와 애기들이 잠든 시간(대개는 밤 11시가 넘어서지만)부터는 자동차를 장난감 삼아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노는 내 취미 생활이 시작된다. 운이 좋은지, 아니면 현실 감각이 무뎌서인지는 모르지만, 난 다양한 장르의 각기 다른 4가지 색깔을 가진 4대의 차를 데리고 산다. 물론 그중 어느 하나도 정말 억(?)소리 나는 몸값을 가진 차는 없다. 4대를 다 더하면 꽤 되어서 부러운 시선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안타깝게도 그들은 합체는 되지 않는다. 패밀리 세단 용도로 사용하는 볼보 S80T6(2002년 데리고 온 첫째), 겨울철·험한길 운행과 평상시에는 와이프 차인 Jeep 뉴체로키 3.7 리미티드(2003년 데리고 온 둘째), 출퇴근과 꼬불꼬불한 길을 빡세게 달리며 즐기는 것이 주용도인 이것 저것 튜닝된 현대 클릭 1.3(2003년 데리고 온 셋째), 그리
소독기구가 동 났을땐꼭 환자를 돌려보내는 등현지 치과위생사 감염관리 철저 처음 에리트리아란 나라를 알게 된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였다. 그곳으로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비행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현지 모습이 어떠한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나라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국경 분쟁에 대한 짤막한 뉴스뿐이었다. 정말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생각에 설레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나서 얼마뒤에 에리트리아에 여러 번 다녀오신 조도연 선생님을 통해 현지 사진들과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생각만큼이나 척박한 곳이지만, 그만큼 깨끗한 곳이며, 현지인들도 온순한 편이고, 가장 우려했던 풍토병에 관한 걱정은 하지않아도 된다는 말에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다들 말라리아 약을 1주일전부터 복용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까지 11시간, 두바이에서 쥐부티를 경유해 에리트리아 아스마라 공항까지 다시 6시간이 걸렸다. 장시간 비행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데다가 6시간이나 늦은 시차덕분에 아스마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공항까
늘 출근하는 길이지만 교정이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 때쯤이면 문득 내가 걷는 이 길이 출근길인지 책을 가슴에 안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걷던 길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긴머리의 소녀가 걷던 길 중에서도 항상 제일 먼저 그리움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축제이다. 지금처럼 노을빛을 닮은 잎사귀들로 교정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할 때 쯤이면 교정의 곳곳에는 단풍잎과 같이 형형색색의 포스터들이 나붙는다. 다른 것들보다 좀 더 눈에 띄기를 바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을 하고 ‘이제 곧 축제랍니다’라고 소리친다. 우리가 다니던 학창시절의 축제는 동아리나 학과의 발표회와 행사들로 이어지는 우리만의 축제였다면 최근의 축제는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잔치로 변해가고 있다.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저녁식사 후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들을 무동 태운 아빠들과 함께하는 가족동반 나들이로 다양한 연령층들이 함께 한다. 축제를 준비하는 학생회 측도 참여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일몰 후 프로그램에는 더욱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소풍날만 되면 비가 온다 하지만 늘 쌀쌀하기만 했던 날씨도 올해는 유난히 따사롭다. 낮에는 각
나름대로 성인이라면서‘헬리곱터 부모 증후군’서 벗어나자신들을 존중해 달라 합니다 한 달 전쯤입니다.“엄마, 나 내일 대학가요제 2차 예선 가요.”“엥? 아니 언제 대학가요제 준비했었어?” 대학가요제라 하니 큰 아이가 심취해서 4년 전 대학가요제 강원도지역 예선에서 금상을 탄후, 학업을 쉬고 그 방면의 공부를 하겠다하여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 덜컥 되살아났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고 대학 들어가서도 밴드 활동을 왕성히 하다 작곡 공부도 곁들여 하는걸 보고 평생 취미로 괜찮겠다싶어 장비며 컴퓨터를 적극 지원해 주었더니 아예 그 방면으로 접어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국가고시를 본 후에 취미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리의 말에 지금이 가장 감성이 풍부한 적기이므로 때를 놓치면 어렵다는 큰 아이를 공부도 때가 있다고 힘들게 다독여서 학업으로 돌려놓았었는데… 두 아이 다 의과대학생으로서 학업은 때가 있다는 우리의 주장과 신선하고 풍부한 감성을 지닌 지금부터 음악수업을 해야 한다는 아이의 주장이 맞서다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음악 전공한 한 친구는 하고 싶은걸 못하면 평생 한이 되어 계속 그 쪽
밤새 찌익찌익대던쥐들의 수다도 그립고펜팔했던 그 사람은 잘 있을까 엄마가 그려준 약도 한 장을 들고 새로 이사 간 집을 찾아갔다. 다닥다닥 붙은 작고 많은 집들 중에 우리가 살게 될 집은 어디지? 아무리 봐도 그 집이 그 집 같고… 한참을 헤맨 끝에 찾은 집. 작은 방 두개, 주방엔 가스렌지와 싱크대 한 칸이 겨우 들어가고 동생과 쓸 방은 침대 하나와 책상 두개가 들어가니 의자 놓을 자리도 없어서 침대에 걸터 앉아 책상을 써야 했다. 덕분에 밤샘하는 공부는 거의 불가능했다. 침대에 앉아서 공부하다가 뒤로 넘어가면 바로 잘 수 있기 때문에 그건 좀 편했다. 물론 등받이가 없어서 허리가 좀 아팠지만 우리 방엔 골목 쪽으로 보이는 창문 하나가 다였다. 난 창이 큰 방을 좋아했는데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한 여름 밤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잤는데 후레시 불빛이 방안으로 뻗어왔다. 그러더니 창문으로 웬 손 하나가 쑤욱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다리를 찾는 겐가? 누군지 잡으려고 몰래 일어나 문을 후다닥 열었는데 도망가고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창가엔 가을대추 음료수 캔 두개와 껌 한통이 놓여 있었다. 누굴까? 그 집은 여름에는 찜통, 겨
노원종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구강건강실태조사단 공보의 말년차로서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감사 “삐비비비” “삐비비비” 오늘도 어김없이 방을 뒤흔드는 자명종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눈 비비고 일어나보니 새벽 4시, 오늘은 천안으로 구강건강실태조사를 가는 날이다. 올해로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 3년차, 소위 김정일도 무서워서 못 건드린다는 공보의 말년차이다. 사실 요즘은 플루토늄 때문에 내가 좀 무섭긴 하지만… . 먼지 가득한 닭장 같은 내무반에서 훈련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말년차라니… 난 1, 2년차 때에 경북 예천에서 공보의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구강보건의료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06 국민구강건강실태조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보의다. 사실 처음 이곳(실태조사단)에는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편안한 공보의 시절을 마무리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보의가 새벽 4시에 골프가 아닌 근무를 위해 일어난다는 사실만으로 이는 충분히 입증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는 조사라 며칠씩 지방에서 머물면서 근무하는 건 둘째
정말 열심히 살았고스스로를 수고했노라며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87년에 대학을 입학하고 16년만에, 서른여섯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또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위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임상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꼈고 늘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이렇게 정체된 듯한 느낌으로 마흔을 준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2년반 동안의 대학원생활이 시작되었고 입학식 날의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엊그제 같기만 한데 얼마 전에 드디어 졸업을 했다.‘졸업’이라는 단어 앞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참 많은 기억과 추억이 한데 섞이어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병원 원장으로 두 아들의 엄마로 그리고 아내로도 모자라 학생의 역할까지… 그랬다. 난 많은 걸 하고 싶었고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내 주변에 나의 멘토가 되어줄 만한 동기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면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대학원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숨가쁘게 놓여
인생을 전·후반 경기로 나누면난 벌써 후반전에 접어들었고후반전 실점은 만회가 더 힘들다 어떤 모임에 참석을 하든지 그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를 만납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리더인지 판단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판단력과 설득력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런 차별성을 나타내는지를 고민하다 그것은 카리스마의 차이라 결론지었습니다. 그런 카리스마가 부족한 나는 리더로서 부적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리더십에 관한 글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대략 기억해보면 어느 재벌그룹의 부회장이 리더십에 관한 유명 저술가인 피터 트러커에게 전화를 걸어 리더십에 관해 질문을 했습니다.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어떻게 하면 계발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피터 트러거는 리더십과 카리스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리더십은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목표를 끊임없이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리더의 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