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온전한 한 사람의 치과의사가 될 준비를 끝내고알이 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졸업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봅니다.卒業 . 마칠 졸, 일 업. 사전적으로는 학업 등 정해진 과정이나 수련 기간을 끝내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졸업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졸업은 학생으로서의 나를 깨뜨리고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우리는 수정란 수준으로 단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포에 지나지 않던 수정란이 증식하고 분화하면서 머리가 생기고 심장이 생기고 날개가 생겨나듯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도 치의학이라는 학문을 배움으로써 머리가 생기고, 다양한 실험ㆍ실습을 통해 기술이라는 날개가 생기고, 환자를 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라는 심장이 생겼습니다. 이제 온전한 한 사람의 치과의사가 될 준비를 끝내고 아직은 두 날개를 접은 채 알이 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6년을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동기들, 어미 새가 알을 품듯이 아무것도 아니었
개원할 때의순수함을 잃지 말라는푸름의 충고를 되새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를 위하여 자전거 바퀴의 펑크를 의심한 일행들이 돌아왔고 그들의 도움으로 119의 구조를 받게 됐다. 119 구조대는 밤 한가운데의 시간 속, 더구나 깊은 산중이라 위치를 찾는데 힘들어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을 버린 뒤에야 구조 차량에 몸이 실릴 수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내려오는 차 속에서 고통은 더 해져만 갔다. 힘들게 병원에 도착해서도 x-레이 촬영시의 그 아픔과 오그라진 근육을 펴기 위한 추를 달아야 하는 수술의 과정을 거치는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수술 후에도 여러 달을 목발에 의지해서 걸어야 했으며 지금도 완쾌를 향한 길 위에 있다. 내 안에 현 삶에 대한 보람이 오직 나의 분깃에 의한 물질의 풍요로써는 결코 채울 수 없음을 실감케 한 사건이였다. 무심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주어진 직업의 안일함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온 내 일상이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세월에 순응만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동료들을 만나면 유별난 환자들 얘기로 시간을 버리고 그 스트레스로 일관된 푸념만 벌이며 지내온 많은 시간들이 무슨 유익이 있었나
개원이냐 취직이냐선택의 기로가 또다른 인생의 시작점 한참 되었던 것 같은데, TV프로그램 중에 이휘재 씨가 두 가지 길 중에 한 가지를 택하면 그 선택으로 인해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된다는 포맷의 ‘인생극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 경우의 결말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중요한 선택의 기로가 나에게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미리 그 선택의 결말을 말한다면, 지금 나는 제대를 앞둔 말년차 군의관이다. 13년 전 학력고사를 보고, 6년의 치대 생활과 국시를 통과하고 보철과 4년, 군의관 대위로 3년을 보냈으니 그때 그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15년전 늦가을이다.당시의 나는 격동의 91년, 새내기 대학생으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했던 환경공학과 1학년이었다. 사실 공부보다는 친구와 서울에서의 새로운 대학 생활이 더 좋았던 시절이라서 전공과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었다. 2학기 들어 전공 입문을 공부하게 되면서 환경공학이라는 학문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91년에는 두산에서 낙동강에 페놀을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신비로운 자연과 문화 유산을끝까지 존경하고 사랑하련다 나는 여러가지로 내가 못난 탓인지 존경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는 존경하고 내가 할줄 모르거나 할수 없는 것을 할줄 아는 사람을 존경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을 또한 존경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생각해 내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존경하고 내가 보기에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던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도 존경한다.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줄 아는 사람을 존경하고 내가 들을줄 모르는 것을 듣는 사람을 존경하고 내가 냄새조차 맡지 못한 것을 맡아 내는 사람을 존경하고 내가 맛보지 못한 것을 맛본 사람을 존경하고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줄 아는 사람을 무척이나 존경한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잘생긴 사람을 존경하고 나보다 힘센 사람을 존경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고 나보다 젊은 사람을 존경하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존경하고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존경하고 나보다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고 남이 존경하는 사람도 또한 무조건 존경한다. 나는 또 역사적인 인물중에서 훌륭한 일을 해낸 분들을 존경하고 나의 부모와 스승과 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선수들과의 우정·재미말로 표현못할 추억이… 지난 10월 15, 16일 양일간 경기도 양평 아이넷 서킷(경기장)에서 2005 엔진투어링 한국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선수권대회에 나가본 것이 2년 전인 2003년도인데 그당시 성적은 말할수 없이 처참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그동안 심기일전해서 꾸준히 연습을 거듭하며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총 60여명으로 알씨카와 관련된 제조회사들의 스폰서 드라이버를 위시하여 한국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대회입니다.저는 항상 그렇듯이 아마츄어로서 대회를 즐기며 약간의 긴장과 스릴을 느끼면 충분하다는 자세로 대회에 참가합니다만 이번에는 좀 의욕을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적이 너무 저조하면 기분이 나쁘니까요. 하하. 대회 첫째 날인 15일에는 연습주행 2회와 예선 1, 2차전이 열렸는데 1조부터 6조까지 나누어진 조편성 중에 1조에 속해있던 나는 무난히 조 1위를 차지했습니다.조편성은 보통 1, 2조가 불리하고 뒤로 갈수록 좋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차의 그립이 떨어져 기록이 좋지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첫째날 기록으로
아이와 같이 호흡 맞추고같이 땀을 흘리면서아빠로서 감사한 마음이… 그러나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또 한번 느꼈다. 조금 전까지도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짜증과 아내와 아이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공연을 끝낸 후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으로 바뀌더니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연한 아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사실 그동안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소원하였다. 바쁘다는 핑계(사실 정말로 핑계인 것 같다. 오히려 광고회사 다니는 아내보다도 덜 바쁘면서, 의사이니까 또 교수이니까 당연히 바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편승하여 괜히 바쁜척하며, 바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로 아이와 같이 놀아주거나 따뜻하게 챙겨주지는 않고, 오히려 한해 한해 커가면서 늘어나는 말썽과 특히 동생이 생긴 후부터 부쩍 심해진 고집을 꺾고자 거의 매일 혼내는 큰소리와 시시콜콜한 잔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 반성도 해 보지만 다시 아이를 대하면 여지없이 똑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공연을 통하여 아이와 같이 호흡을 맞추고 같이 땀을 흘리면서 아이에게 아빠로서의 새로운 모습도 보
여자아이들보다더 열심히 연습하는아들의 모습에 위안을 삼으며 안 형 준·94년 연세치대 졸 ·연세치대 교수·(가칭)대한레이저치의학회 총무이사 어느 날이었다. 아내로부터 유치원 졸업을 앞둔 아들놈이 유치원에서 하는 페스티벌 행사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하니 시간 좀 내서 같이 해 주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인즉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지역에서는 꽤 크다는 문예회관을 빌려서 모든 학부모들을 모시고 발표회를 한단다. 전체 원생 및 선생님들이 다 참여하여 프로그램도 거의 20개 가까이 되는 큰 행사로, 이 중 유일하게 아이와 아빠가 함께 왈츠를 추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라는 얘기다. 물론 전체 학생이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신청을 받아서 희망자 중 일부만 하는 거란다. 행사 날짜가 애매한 평일 저녁시간이고, 무대 체질도 아닌데다 또 왈츠라는 생소한 단어에 당연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거절하면 아이가 실망할까봐 바빠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대답을 미룬 채 시간을 끌어왔다. 나의 작전이 적중하여 어느덧 신청마감기간이 지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1차 연습까지 끝냈다는 소식을 들을 즈음, 아이의
노인무료틀니·장애인치과등치의의 적극적 동참 노력도사회 양극화 해소에 일조 시대에 따라서 생각하는 관점과 행동하는 양식은 다르기 마련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평범하다고 하는 교훈아래서 매일 매일 생활하는 우리의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다변화하는 진료환경에서도 치과의사가 전문지식인으로서 모든 분야에 대해서 환자가 묻는 것에 대해서 정치, 경제, 연예, 스포츠 등 어떤 주제든지 5분 정도는 그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치과 유니트체어는 거의 TV 모니터가 설치되어서 진료보조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진료중간에 기다림이 많은 환자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마취 후 시술을 기다리는 도중에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양극화’라는 단어가 나오자 중학생인 환자가 물어보았다. “치과선생님, 양극화가 무엇이에요?”그러자 나는 “두 개의 사물이 몹시 동떨어져 있다”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시대의 양반과 평민 계급을 또, 근대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분단의 아픔이 상존하는 남한과 북한, 또 남한 내에서도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호남, 특히나 요즘 많이 화두가 되는 경제적인 경
자기 치아를 뽑지 않고오랫동안 쓸 수 있게 하는 것은치과의사의 책임이자 의무 요즈음 세상살이는 정신이 없다.하루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 그 자체가 모순투성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나라를 이끌어가는 정계,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경제계, 국가이념과 철학을 책임져야 할 학계 그리고 국민건강을 사수해야 할 의료계, 농민, 노동계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모순과 이념의 혼돈 속에서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님비” 뿐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헤아려보는 큰 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탐욕하는 님비투성이다. 이렇듯 세상은 흔들리고 있다. 그냥 그대로 흔들리게 놓아 둘 것인가? 저 까마득한 광야에서 백마타고 나타나 흔들리는 세상을 바로 잡아 줄 기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날로 바쁘게 의료 환경이 변하고 있다. 의료시장 개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현실 속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것인가? 자그마한 외풍에도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그러나 변화하기는 싫은 낡은 관념의 병원에서 하루 세끼 밥만 먹으면 된다는 안일함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그냥 지낼 것인
길가의 꽃들 햇살들…성숙된 모습으로 돌아와 보니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행동은 있으되 내용이 없는 내 삶과 행동이 그렇게 점철되어버린 까닭은 386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욕될까? 매번 한 해의 시작과 동시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이 되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회한에 젖는다. 20대에 큰 포부에 담겨진 행동을 앞세웠고, 30대에는 앞으로 할 일과 계획에 관하여 생각을 하여 다시금 20대를 견뎌내며, 40대에는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간속으로 여행을 떠나, 후회와 현재의 모습에 허탈과 속절없음에 정신적인 방황의 기점에 외로이 서 있는 듯한 자신을 바라보며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차례의 홍역을 앓듯이…. 성숙된 모습으로 돌아와 보니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늘 다녔던 길가의 나무에 피어있는 꽃들이 보이고, 얼굴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빛에, 운동 후 땀에 젖은 모습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웃음을 공유할수 있음에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지금 이 여유로움을 세월 앞에 쇠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노인분들을 위해 작지만 도움을 주고 있는 시간들을 자주 갖고 싶
아직도 열악한 곳에서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많은 영혼들이 있다 2005년 11월 1일부터 12월 29일까지 두달 동안 태평양 남쪽 적도 바로 밑에 있는 파푸아뉴기니(PNG)에 다녀왔습니다. 이 나라는 호주의 통치를 받다가 1975년에 독립되어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곳에 가게된 동기는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일인데 한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M/V HANNAH Ⅱ 병원을 갖춘 선교선에서 봉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 나라 남북을 합친 두 배나 되는 크기로 인구는 5백만이었으며 제가 가서 일한 마당이란 도시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40만명이 살고 있었습니다.이 도시에는 치과 병원은 없었고 일반 병원이 하나 있는데 말라리아 전문 병원이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배 선교사 한 분이 충수염이 생겨 그 병원에 의뢰해서 수술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외과의사 한 분이 있지만 수술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고 했더니 수술기구를 소독할 소독기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우리 배에는 그런 기구를 소독할 충분한 기구가 있다고 하니까 배에 와서 보고 너무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서 모든 기구를 소독해 가 수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