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나 미래의 몇 억보다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단 몇만원이 더 가치 있다 어느덧 무더위가 가시고 가을 냄새가 스며드는 9월 월요일 날, 오전진료가 거의 끝날 때 쯤 진료실에서 훤히 보이는 불암산을 쳐다보고 있는 P원장에게 치과위생사 K양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원장님! 친구분이 오셨는데요.”P원장이 환자 대기실에 나가보니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고등학교 동창생 S씨이다.대기업에서 승승장구 하면서 최연소 승진한다고 친구를 통해서 간헐적으로 들었건만 이렇게 갑작스런 방문에 P원장은 의아해 했다. “자, 들어가서 차 한잔하자.”원장실에 들어와서 마주본 S씨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니 그리 밝은 모습이 아니다.“남들보다 먼저 승진해서 일찍 이사까지 됐다가 퇴직하고, 몇 년 동안 조그만 사업이라도 해보는데 잘 안되는구만. 오늘도 갑갑하고 마누라 눈치보여서 자네한테 한번 들러봤네. S이사님이라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맴도는데 내 신세가 말이 아니네.”미소를 띄우며 P원장이 대답했다. “S이사님 이라는 허상에 아직 묻혀 있구만.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이런 말은 무리가 있을 줄 아네만, 죽어있는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말게나. 과거는 지나간 껍데기에 불과하네, 잊어버리게.”S씨
나의 삶의 터전이얼마나 풍요로운가를 느끼며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기로… 2005년 9월 10일 행복한 교회에서의 진료는 참으로 행복했다. 이 교회가 위치한 톨고이트 지역은 몽골인들 중에서도 시골에서 올라온 빈민층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모든 집들은 판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변 환경은 참으로 열악하였다. 교회조차도 화장실은 어릴적 시골에서의 푸세식 그대로였다. 길거리에서는 동네 어린이들이 낡은 축구공을 가지고 먼지투성이의 길거리 축구를 즐기고 있었으며 어른들은 우리들의 무료진료에 대한 보답으로 몽골전통 만두와 양고기를 준비해 주셨다. 진료장소를 옮길 때 마다 짐을 운반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온 몽골청년들 덕분에 짜증보다는 오히려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첫 환자인 엥크톨(3)은 엄마 에르튼 토야(26)가 봉제 공장에서 밤을 새우며 일하다 보니 시기를 놓쳐 염증이 목까지 퍼질 정도로 심하게 되어 우리 의료진을 만나 절개, 배농과 투약으로 한숨 돌리게 되었다. 치료 후 아이 엄마의 감사의 눈물을 보면서 우리가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몽골의 의료 환경에 답답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나누어야 할 일이참 많다라는 생각을…몽골에서의 첫날 매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봉사를 위해 방문할 때 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행운으로 이 시간 이 자리에 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방문한 나라이고 모아 네트워크의 첫 의료봉사이기에 많은 걱정도 앞서지만, 분명 이 나라에는 우리들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Over Charge 까지 해가면서 싣고 온 짐을 매번 어떻게 옮기면서 다닐 것 인가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숙소에 도착한 지금 편안한 마음이 자리 잡는다. 날마다 최선을 다하며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으로 품으며 진료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05년 9월 7일오전엔 몽골 울란바트로 시내를 둘러보고,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몽골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해발 1400m의 고원지대에 공해의 띠가 검게 둘러져 있었다. 문명 시대를 맞아 발전해가려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푸른 초원의 싱그러움이 사라져 가고 있는 모습에는 왠지 씁쓸하였다. 점심시간의 김치찌개는 한국을 멀리 떠나있다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맛이 완벽했다. 오후 진료 시작워낙
인륜으로대립·반목의 고를 풀고천륜으로 우주일가입니다 해마다 전북 익산에서는 서동축제가 열립니다.올해는 9월 30일에서 10월 3일까지 중앙체육공원에서 즐거운 공연과 행사가 열립니다.서동은 훗날 무왕이 됩니다.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며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그 모친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백제의 서울 남쪽 못가에 살면서,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재주와 도량이 커서 장차 큰일을 할 바탕을 갖추고 있었는데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서 생계를 꾸려 갔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머리를 깎아 중의 형색을 하고 신라의 서울로 들어가서 서울 근방의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그들과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자 자신이 지은 동요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 노래가 다음의 ‘서동요’입니다. 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遺去如선화 공주님은 / 남 몰래 시집가 놓고(정을 통해 놓고) / 서동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동요의 내용이 대궐에까지 알려져 공주는 먼 곳으로 귀
어느 부모가자식의 울부짖음에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팔 잡고, 다리 잡고”“으-허 악”“이거만 맞으면 괜찮다”“윽 으-허, 으-허 ”“예야 오늘 왜 그래” 장애인진료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전쟁을 각오하고 환자를 맞이하게 된다. 선천성심질환이나 신부전, 경련성 질환 등 협조가 그럭저럭 되는 환자들도 있지만, 치과치료를 위해 전신마취가 필요한 장애인 환자들의 대부분은 고도의 정신지체나 자폐증 환자들이다. 필자의 병원에는 전신마취를 시행하고 당일 퇴원이 가능한 장애인진료실이 갖추어져 있는데, 보통 아침 9시부터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게 된다. 예약 장부를 확인하고 오늘의 마취계획을 생각하면서 진료실로 내려오다 보면, 멀리 앉아 있는 환자의 얼굴과 마주 친다. 그 순간, 오늘도 전쟁은 피할 수 없겠구나. 전신마취라는 것이 환자의 의식을 없애고 보호반사기능을 억제하는 아주 위험한 과정이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장애인진료실은 뭔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마취에 협조를 해주어야 하는 데, 유니트체어에 앉히는 것 뿐만 아니라, 진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다. 하물며, 정맥마취제를 투
성공에 대한 열정·정체성은변성되지 않도록 보호하며주변의 환경에 적응해야 얼마 전에 자가치아이식 학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자가치아이식이란 짧게 표현하자면 원래의 위치에서 치아를 옮겨 심음으로써 치아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학부때 배우기로는 치아 이식은 예후가 좋지 않아서 끝내는 치아가 상실되므로 일시적으로 임시방편으로 하는 것이라 배웠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근래에는 여러가지 생물학적인 연구와 기술의 향상으로 치아 이식의 원리와 술식이 개발되어 그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높아 졌다고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자가치아이식의 성패를 좌우하는 여러가지 요소 중에 가장 핵심은 치주인대의 보존으로 생각됩니다. 학부때까지만 해도 이 치주인대란 놈은 치아와 치조골이라는 어떻게 보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구조를 연결시켜 주는 단순한 섬유조직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치아의 맹출 시에는 동력원이 되기도 하고 교정적인 이동시에도 중요한 매개체가 되며 심지어는 치수가 없어도 그 치아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치주인대가 없다면 그 치아는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치주인대가 손상되면 그 치아는 강직을 일으키거나 치근흡수를 보이게 되니까요. 또한 자가치
다시 흐르는 청계천처럼‘증오의 오염’을 걷어내어‘신뢰와 사랑’이 흐르게… 구릿빛 피부에 형형한 눈빛, 깡마르면서도 다부진 체격…. 선친과 함께 임치과 4층에서 정각도(正覺道) 보급을 시작하던 70년대 청산거사(靑山居士) 모습이다. 입에 로프를 물고 버스를 끄는 차력시범 전날에는 꼭 구강검사를 받는데 잇속이 무척 깨끗하고 튼튼하였다. 두어 해에 한번은 재충전을 위하여 자신의 사부(師父) 청운거사를 찾아간다. 십리 밖에서부터 “물렀거라! 송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불호령이 떨어지면, 속세의 때(?)가 빠질 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경내에 들이지를 않는단다. 육식(肉食)금기를 깨뜨렸다는 나무람이다. 어머님이 차리신 음식에 들어간 멸치국물 한 방울의 오염(?)도 스승은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것이다. NHK TV 초청으로 일본에 몇 차례 들나들더니, 이내 서울로 도장(道場)을 옮겼다. 소문으로는 언젠가 예의 스승 찾기로 입산한 뒤 종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사제(師弟)가 더 높은 도를 닦으려고 오염과 인적(人跡)을 피하여 더 깊은 산중으로 은거한 것인지, 아니면 함께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다만 그 뒤로 청산의 직계 제자를 자처하는 분들이 부쩍 늘
미루고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는더 크고 세찬 돌풍이 되어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조무사의 방사선 촬영이나 스켈링으로 인한 문제는 오래된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곳의 취업을 기피하는 위생사들의 지역적 편재가 문제로 대두된 지도 오래이고,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위생사의 파노라마 촬영 시비도 앞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해결책은 없는가. 해결책이 없다면 대안조차도 없는가.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을 받고 위생사입네 목에 힘을 주면서도, 성실하지도 책임감이 있지도 심지어는 스탠다드 엑스레이 촬영조차 조무사보다 못한 위생사보다는 근면하고 험한 일에 몸사리지 않는 조무사들에 더 애정이 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파노라마를 찍을 때마다 의사가 진료를 멈추고 방사선실을 드나들 수도, 그렇다고 해서 고액의 연봉을 줘야 하는 방사선 기사를 개인의원마다 고용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가. 법이란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웠건만, 약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법안들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혹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대표자들께서 입법자들에게 전혀 인식시키지
안 팎으로 어수선하니순하던 환자들 마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든다 아이들 말로, 요즘 기분 참 꿀꿀하다. 밖으로는 의료시장 개방이니 뭐니 하며 어수선하고 안으로는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너나없이 조급하고 불안한 환경에 가끔은 순하던 환자들마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든다. 얼마 전엔 사랑니 하나를 발치 했다가 곤란한 경우를 당하였다. 이날따라 부품하나가 영 불안하던 파노라마는 엔지니어를 기다리며 길게 하품을 하고 늘어졌었는데…. 다른 각도로 여러번 스탠다드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치근 끝이 보이지 않던 사랑니였다. 줄곧 다른 치료를 해 오던 환자라 돌려보내기 뭣하여 마취사고에 대한 위험을 설명하고 T자로 섹션해서 간단히 발치하였다. 막상 사랑니를 뽑아놓고 보니 간담이 서늘했다. 길게 휘어진 치근 넷이 서로 껴안다시피 얽혀 있었던 것. 이게 나오다 부러졌더라면 어쩔 뻔 했나…. 지인들에게 보여줄 양으로 널부러진 치아를 기념촬영(?) 하고 환자에게 웃으며 피차 참 운이 좋았다며 농을 하였는데, 정작 사건은 다음날 벌어졌다. 환자가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찾아온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운 곳의 외과를 전공하신 선생님께 보냈더니 발치할 때 휜 치
내년이면 마흔 아이가세월이 우릴 미혹하였구나지명·이순·종심·백수까지유쾌하게 살아보자 아침, 저녁으론 벌써 쌀쌀하다. 토요일 오후, 문득 Ju 원장이 생각난다. 지난해, 이맘 때 쯤 이었던가…. 어느 토요일, 대구로 가던 길에 Ju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전화를 했다며,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는 등의 통상적인 안부 뒤로, 대구에 간다는 나의 말을 낚듯이 채어 받아 저녁에 ‘퍼’ 모임을 하자는거였다. 자기가 Y, L, J에게까지 다 연락하겠다며, 약속 잡으면 다시 전화한다며 재빨리 통화를 끊어 버렸다. 보통 친구끼리의 일상적인 통화 내용이었지만, 내가 아는 Ju는 절대, 안부 정도로는 전화를 걸지 않는다. 더욱이 자기가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지는 않는다. 우리 모임에서 그런 일들은 항상 모임의 회장인 Y 혹은, 酒를 좋아하는 J의 몫이었다. 대학 시절, 우리는 몇 해를 지내면서 친구가 되었다. 각자의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들도 제각각이라 입학 후, 4년이 지나서야 지금의 모임이 되었다. Ju는 매번 모임 때마다 늦는다. 그냥 늦는 것이 아니라, 약속 한 시간 뒤에 확인 전화를 해보면 아직 집이란다. 졸업 후, 우리가 처음으로
금수강산에서태어난게 고맙고마음대로 오갈수 없어 원통하다 -둘째 날김주석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 김구 등이 참가한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던 쑥섬, 주체사상탑 관람 - 옥류관에서 냉면 - 개선문 - 지하철 시승 등을 거쳐 학생소년궁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유치원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5천여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특기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기관으로 보였다. 수많은 방들중 몇군데 밖에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컴퓨터, 자수, 바둑, 서양화, 체조, 피아노, 다이빙시설이 갖춰진 수영장 등에서 한명의 선생이 열명이내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영재교육 혹은 특기교육처럼 보인다. ·느낌하나 - 미술실에서 우리가 학교 미술공부시간이나 혹은 미술학원에서 보았던 석고상들 - 줄리앙, 비너스, 아그립빠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우리 이웃들 - 아저씨, 아줌마, 노인, 젊은이 -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석고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며 소묘공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 왜 우리는 서양의 미남 미녀 석고상을 그리며 미술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던 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