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에 길들여졌던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고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이번에 개최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는 60년 전 남과 북의 문인들이 꿈꾸었던 전국문학자대회가 무산된 이후 최초로 대표성을 띠는 의미있는 사건이다. 남북의 문인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진 것은 1945년 12월 13일이다. 그러니 해방 이후 남북작가들이 조선문학동맹을 결성하고 전국문학자대회를 개최하려고 했던 행사가 신탁통치 결정으로 무산된 이래 실로 60년만의 일인 것이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60년만에 이뤄지는 대(大)사건이고, 민족사적 의의라면 남북교류 역사 안에서 처음으로 ‘내면의 교류’가 시작된 것임. ‘내면의 교류’란 무슨 말인가? “문학 안에는 이성 말고도 무의식이 있고, 내면이 있고, 꿈이 있다. 그것으로 사고를 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해석하고, 그것으로 발언하는 작가들이 서로 만나기 때문에”(민족문학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의 말) 이번 대회의 의미가 각별한 것이다. 그렇다 ‘통일은 갈라지기 전의 어떤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고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문화적 과정이다. 때문에 그 과정을 서로 인내하고 잘
파킨슨병 투병 중인94세 선배교수에깍듯한 존경과 사랑을… 지난 7월 29일, 30일 양일간의 베일러 치대 100주년 및 치주과 50주년 학술대회에 이대병원 치주학과 이승호 교수님과 필자는 베일러 치주과 동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으며, 한국 시간으로 7월 26일 화요일 오전 11시 반 KAL항공기를 탔다. 장장 13시간의 비행 끝에 달라스 포츠워스 공항에 내렸다. 달라스 포츠워스 공항은 미국 중남부의 중심공항으로서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공항이다. 달라스는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산업 중심지로서, 반건조지대이며, 7~8월달은 여름이며, 때로 기온이 화씨100도에 이를 정도로 매우 더운 날씨를 보이는 곳이다. 4계절구별이 되며, 4월말부터 날씨가 더워지고, 가을이 있고, 겨울에 비가 제법 내리는 기후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이 교수님의 동서분과 달라스 거주 한인 치과의사이신 김상택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김상택 선생님은 이승호 교수님이 베일러 치주과에서 공부하실 당시 베일러 치대생이었고, 가깝게 지냈었고, 당시 레지던트였던 이승호 교수님에게 학점취득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당시 김상택 선생이 개업할 당시는 달라스에 한인 치과의사가 3~4명밖에 없었는
<지난호에 이어 계속> 치아 하나하나에도양파 키우기에도인생의 교훈이 있다. 미워하는 양파에겐 반대로 최악의 악담을 건네준다. 여기에 적지 못할 정도로 심한 말이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무관심한 양파는 본 척도 말아야 됩니다. 특별히 주의해야할 사항이 있다면 양파에게 진심을 전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양파에겐 철저하게 진실한 사랑을, 미워하는 양파에겐 진정 미워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무관심한 양파에겐 이런 설명 글에 짧게나마 설명함으로써 관심이라 착각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이나 마음도 보여 주지 마십시오. 또 배신자가 없어야 합니다. 남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혼자 미움 양파나 무관심 양파에 마음이 아파서 사랑을 퍼 부어주는 여리디 여린 아가씨가 꼭 있습니다. 아저씨 아줌마들은 잔인하리만큼(?) 약속을 잘 지킵니다. 하지만 아줌마들은 마지막에 배신합니다. 시들기 전에 반찬으로 삼자고 주장합니다. 미리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협박을 해둬야 합니다.전체적인 실험 기간은 계절이나 각 치과의 실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행복을 심는 치과의 경우 6주 정도에 걸쳐서 실험합니다. 첫 2주간
3개중 한개는 사랑을또 하나는 미움을 주고나머지 하나는 무관심을 새까맣게 분칠한 탱탱한 포도 알맹이, 이글거리는 검붉은 태양, 검게 그을린 팔뚝과 하얀 속살이 어울리는 뜨거운 계절입니다.우리 치과계도 높고 큰 건물, 화려하고도 편리한 세련된 인테리어, 값비싼 최신 기자재, 수많은 배움을 통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 체계적인 직원 교육을 통한 친절서비스의 향상, 획기적인 경영기법의 도입 등 환자나 직원 그리고 치과의사 모두가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뜨거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린 것 같습니다. 어느 치과든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자의 상황이나 필요에 맞게 위의 방법 중 한두 가지는 시도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닌 대세에 편승한 수동적인 투자의 효과에 대한 실망 또한 큰 것이 사실입니다.특히 인적 자원(원장 포함)의 개선에 대한 투자가 가장 어려우며 그 결과 또한 성공이라고 평가되는 확률이 가장 낮습니다. 직원의 친절교육을 예로 든다면 모든 교육기관들이나 강사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목표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미소 짓는 방법은 훌륭히 교육하지만 진심의 집
아이들에게 웃음과 배려자신의 일에 책임질 줄 아는정열을 지니게 해주고 싶다 “엄마, 질경이는 어떻게 생겼어?” “몰라”“그럼, 바랭이, 달개비는?” “몰라”“엄만 도대체 아는게 뭐야?” “몰라”“엄마! 초등학교는 나온거야?” “아니, 엄마는 국민학교 졸업했어” 오늘도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한테서 구박(?)을 받고 생각에 젖는다.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은 아이가 물었을 때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거나 실물을 직접 보여준다는데 난 도대체 그럴 의지가 없다. 대신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거라고 전과 하나 달랑 사 주고는 혼자 해결하란다.시험을 보고 와서, 제 친구는 공부할 때 엄마가 모르는 거 다 가르쳐 주는데 엄마는 가르쳐 주는 것도 없고 도움이 안 된단다. 나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저소득층 아동 검진을 하러 학교에 간다. 보건 선생님이 걱정을 하며 말씀하신다. “얘들은 부모가 바쁘고 관심이 없어 머릿니도 있고 잘 씻지도 않거든요, 선생님 검진하시기 힘드실텐데요. 근데 얘들은 학원엘 다니지 않아서 수업 마친 후 검진해도 시간은 돼요.” 그런데 애들이 모두 다 예쁘다. 머릿니가 보이지도 않고 표정은 그냥 아이들이다. 아프게 할까봐 뒤로
선업을 많이 많이 쌓아서무량복덕 누리시고정의로운 치과계 만듭시다 나는 시쳇말로 60학번이다. 이순(耳順)을 훨씬 넘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다. 개업하고 있는 지역구에서 개업동기이자 대학 동기동창을 두명이나 앞세운 괴로운 경험을 가지고 외톨이로 남아있다. 그래서 요즘은 같은 구내에서 선후배 약 간명이 월1회 정기 모임을 꼬박 꼬박 갖고 있다. 또 대학동기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 사람이 그리워서….가끔 후배들로부터 선배님은 언제까지 현역에 남아 있을 예정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이제 곧 그만 두어야지 하고 얼버무린다. 오직 치과 의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긴 세월 외길로만 살아온 덕분에 아들도 치과의사가 되었고, 치과의사 며느리도 얻게 되었다. 아들 내외 왈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 쉬엄쉬엄 하시란다. 안 그래도 요즘은 어려운 경제 사정 혹은 나이 때문인지 환자가 뚝 떨어져서 열심히 하고 싶어도 쉬엄쉬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 나이쯤 된 개업의들의 공통된 사고는 현상에 안전하기를 원하고 새로운 투자를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흘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의 클리닉에 좀 비싼 진단 및 치료용
환갑·고희가 될때까지선후배와 같이 연주하며늙어 가고픈 마음이다 내가 ‘덴타폰’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84년 대학 입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어느 동아리에 가입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었다.치과대학 내의 동아리는 재수생을 꺼려했던 분위기라 대학을 재수한 내가 들어 갈수 있는 동아리는 많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마음에 끌리는 동아리가 눈에 들어 왔다. 덴타폰이라는 치과대학 내 그룹사운드 동아리였다. 그때 생각으로는 그 동아리가 남보다 튀어 보이면서도 폼나는 동아리라고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덴타폰에 몸 담아 젊을 때 혈기를 쏟아 부어 즐거운 추억을 남겨 볼 요량으로 이 동아리에 가입 했었다. 그 당시에는 아마 20대의 치기어린 배짱으로 젊음을 불살라 보자는 그런 가소로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동아리 생활은 시작되었고 방학도 없이 매일 학교에 출근해서 아니 연습실에 출근해서 멤버들 끼리 연주(演奏)을 했었다. 진짜로 말하자면 연주(連酒)를 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때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은 정도 많이 들어서 지금도 같이 어울리고 그때 겪었던 재미있었던 일들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아마 누가 나에게 대학 다
꽃·나무 등 자연을 벗삼아100KM를 뛰다가 걷다가완주하니 기쁨과 감격이… 듣던 대로 ‘몽고 Sunrise to Sunset 100km 마라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깨끗한 자연을 접하게 했다. 몽고북부 Hovsgol 호수가 있는 Toilogt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는 약 50명 정도로 영국, 미국,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고, 한국인으로는 우리 부부가 유일하였다. 마라톤을 하는 날,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식사 후 4시30분에 출발하였다. 새벽 기온은 영상 2도로 추운 겨울날씨와 같았다. 응급물품과 물 1.5 리터가 든 약3kg의 가방을 메고 뛰어야 했다. 대부분의 길은 늪지대, 자갈로 덮인 길, 산이었고 나무나 돌에 표시해 둔 초록색 페인트 표시를 찾아 달렸다. 평탄한 길에서만 연습한 나로서는 적응이 어려웠다. 오른쪽 발목에 특히 긴장이 심해져 약 10km 달린 후에는 발목에 통증이 느껴져 걱정이 되었다. 처음 42km 구간에서는 산을 두개 넘어야 했다. 2300m 고도의 산정상에 도달하는데 걷고 뛰었다. 숨이 목까지 찼다. 늪지대에서 찬이슬로 운동화가 젖어 발이 시려왔다. 42km지점에 5시간 30분만에 들어왔다. 나의 이전
나를 찾아주는 환자가 있고아내와 엄마로 사랑해주는‘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간호원 말고 원장없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개업 초창기에 5, 60대 환자들에게서 종종 들었던 말이었다.‘아줌마…’ 운운은 지금도 가끔씩은 듣는 말이고….(듣는 상황에 따라 뉘앙스는 완전 다르다.)치과 진료가 ‘의료 서비스 업’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딱 히 ‘존경’을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높은 dental IQ로 우기는 환자들에게 화가 나면 정말 남자라면 드잡이질이라도 하고픈 날도 있고, 어떤 날엔 정말 이 지긋지긋한 ‘치과의사질’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환자와의 trouble을 피해가는 것을 터득하였고 얼굴만 봐도 점쟁이를 할 만큼 분위기 파악도 제법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비단 여자치과의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 ‘창원’에 왔을 때 여선생 단독 개원이 다른 지방보다 무척 적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곳으로 이전하여 나만의 진료공간을 열었을 때 여자가 그것도 젊은 여자가 원장이라는 사실에 대한 환자들의 놀라움과 ‘불신’은 힘든 치과 일을 더욱 힘들게 했다. 분명 대학 졸업 동기 중 1/3이
비록 가진게 없지만살아 있음에 감사하고존재한다는 것에 가치를… 주5일근무가 시작되면서 주말이면 도심을 떠나 놀이공원이나 자연속으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의 번잡함이나 꽉 막힌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도 잠깐의 휴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만큼 삶의 무게가 무거웠던 것일까? 이제 장마가 끝나고 여름의 녹음이 짙어지면 휴가철이 되어 우리의 산하는 사람들로 고달픈 몸살을 치러야만 된다. 레고블럭처럼 반듯하게 잘 쌓아 올린 문명의 이기는 우리의 일터만 높이 올려 놓았을 뿐 아니라, 주거공간도 더욱 고층으로 높이 높이 단단한 갑옷처럼 무장을 하고 드나드는 사람까지 통제하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 아파트 층수를 올릴 때 얼마나 대단해 했는가? 나지막한 저층아파트에서 출발해 15층에서 25층으로 63빌딩이 그 높이의 위력을 자랑하더니만 주상복합아파트란게 생겨나고 높이도 66층부터 이제 130층까지 올라간다니…. 인간들의 군상이 하늘높이 뛰어 오르고 있는 듯 하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 밥그릇이 몇 개…. 개똥이네 집에 무슨 일이 있고 누구네 집에 강아지가 몇 마리 태어났는지….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하게 관심 많
들을수록 감칠맛이 나며한 여름 깊은 산골의 새벽동트자마자 맛보는 싱그러움이… 또 다시 뜨거운 여름이 찾아 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설레는 마음이 앞섰지만 이번 여름은 왜 이리도 힘들게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이 힘든 계절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두고 보아야 할일이다. 물가로 갈까? 산으로 갈까? 필자의 세 꼬맹이들은 벌써부터 들떠있다. 필자의 경우 1년에 한번 있는 휴가 기간동안 내내 집안에 처박혀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면 나머지 1년이 너무나도 즐거울텐데… (물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할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건대, 아마도 다른해와 같이 듣기 좋은 음반을 골라서 무더기로 구입하여 하나하나 섭렵해 보아야 하겠다. 2, 3년전만해도 수없이 많은 잡지에 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을 소개하는 코너가 많이 눈에 띄였는데 왠지 이번 여름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계속되는 불경기 탓에 사람들에게 한가롭게 음악이나 듣고 여유를 부려서는 안된다는 뜻같아 몹시 씁쓸하다. 하기야 불경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요즘같은 시대에 누가 음반을 사느라 부산을 떨겠는가?인터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