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란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기까지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본지의 원고청탁을 받아 놓고 일주일 이상의 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마감 당일 컴퓨터 앞에 앉고야 말았다. ‘임박착수형’이란 딱지를 붙인 지도 2년은 넘어간 듯하다. 그 이전에도 마감기한보다 앞서 미리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객관적 잣대를 통하여 나에게 선고처럼 그 이름이 주어졌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왠지 그 동안은 그렇게 일 처리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의식했다면, 그런것으로부터 해방된 듯 한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떨땐 기적처럼 미리 준비하는 일도 간혹 생겼다. 물론 그렇게 할땐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것, 조금 고달프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 산뜻한 깨달음을 체험한 때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주위 치과 선생님들과 직원들을 모아 강사를 초빙하여 ‘MBTI 성격유형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다양하며, 그것엔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다는 Jung의 ‘심리유형론’을 바탕으로, Myers & Briggs 모녀가 수십 년에 걸쳐 실험과 통계를 거쳐 뽑아낸 94개의 귀한 문항으로 테스트를 한다. 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
치료실은 할머니의 사랑의 커피 향으로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치아의 달인 6월은 무료틀니환자를 치료하는 달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나도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국민에게 치과의사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기 위해 시작한 일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틀니봉사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향기나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냥 매년 해야 되는 사업으로 즐거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문을 들어서는 80전후의 두 할머니가 있었다. 여느 환자와 달리 무척이나 망설이며, 어렵게 그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얼핏 스친 나의 시선에 눈을 피하며 어렵게 행동하는 그 생뚱맞은 모습에 나는 그들이 무료 환자임을 쉽게 간파 할 수 있었다.간호사가 들고 온 서류에는 두 할머니가 같이 주소에 등재되어 있었다. 치료대에 앉은 할머니에게 “두 분이 같이 사세요?” 라고 말끝을 흐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독거노인에게 나오는 정부지원 생활비가 월 30만원도 되지 않아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는 것이라 했다. 한 분을 치료하고 다음 할머니가 치료 대에 오를 때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앉은 키가 선 키와 거의 비슷한 장애인 할머니였기 때문이었
서로 아무 교류도 없었을텐데인류의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생각하는 것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그리스 문화와 로마제국시대의 정교하고 리얼한 대리석 조각상들 그중에 특히 하이얀 우유 빛 대리석으로 높이 171cm의 아름다운 조각상은 남성미 넘치는 육체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느끼게 하며 한손에 포도송이를 쥐고 있어 한눈에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이 사용했든 정교하게 금세공으로 만들어진 에로스 펜던트 귀걸이 라든지 또는 사자머리 형태의 금 귀걸이들을 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신라인들도 똑같은 형태의 목적으로 금귀고리를 만들어 사용하였지 않았던가. 서로 아무 교류도 없었을 텐데 인류의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생각하는 것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로 같고 금이 귀중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금의 취급은 연금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술도 거의 동서양이 같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하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와 이후의 시대에 들어가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판화와 소묘 컬렉션은 그 규모에 있어서 250만점 이상이란다. 이번 한국전에서는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살아생전 감춰진 왕궁 내실에서청아한 수금을 듣는 호사스러움을생각나게 하며 죽어서도 살아있을… 화창한 봄날 4월 17일 일요일 아침 10시에 나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매표소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지난 화요일 날 대영박물관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선일보사 주최 KBS 주관으로 한국전을 한다고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였고 혹자는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많은 인파가 분빈 다고 하여 일요일 아침 일찍이 서둘렀다. 다행이 기대보다는 덜 복잡하여 큰 사위와 딸과 셋이서 표를 사 가지고 11시에 입장하였다. 대영박물관은 세계 여행 중에 십년 주기로 두 번이나 보았던 곳이며 나에게는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방대한 문화유물들이며 그동안 수집한 문화재가 자금만치 700만점이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과연 세계 3대 박물관이며 인류문명사의 위대한 보고(寶庫)라 아니할 수 없다. 다 보려면 몇 년이 걸릴 것 이라고 한다. 우선 이번 한국전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야와 이집트 그리고 중국, 인도, 중남미 등의 유물 그 일부분 약 335점을 선별하여 전시한다고 한다. 소개되는 유물도 가치를
치과를 접고 5년쯤봉사와 선교활동을 하겠다는신선한 충격을 나에게… 얼마 전 학창시절 나의 단짝 친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내던 터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그는 복잡한 서울이 싫다 하면서 서울 외곽에 살며 그곳에 개원을 하였고 치과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었으며 진료가 끝나면 취미로 산악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즐기고 있었기에 야간진료와 대학원 수업, 각종 세미나 등에 정신없는 나로서는 때론 부러워하곤 했다.식사 중에 그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당분간 치과를 처분하고 키르키즈스탄이라는 먼 이국땅에 선교사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 년에 몇 번씩 키르키즈스탄에 강의와 진료차 다니고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치과를 접고 한 5년쯤 가서 본격적인 봉사와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도 또한 학창 시절부터 그러한 꿈이 있어 태국이나 파키스탄, 남태평양 등에 진료봉사 및 선교활동에 참여해 왔지만 지금 아이가 셋 있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쁜 나에게는 가족과 여러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굉장히 어려운 결심으로 느껴지며
옷 벗고 걸어서 간곳이 여직원이 음료를 판매하는 휴게실이었으니… 지금부터 쓰는 얘기들은 실화이며 본인 또는 타인의 경험담을 모은 것이다. 별로 상쾌하지 못한 일들이라서 실명을 밝힐 수도 없고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안 된다는 뜻으로 올리는 글이다. 20여 년 전 총각 때 친구가 전어회를 먹자고 해서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소주를 14병쯤 마셨다. 문제는 그 횟집의 목재 미닫이문을 나서는 순간, 옆에 있는 전봇대를 두 사람이 동시에 잡고서 입으로 자동 배출된 것이다. 그 냄새를 생각하면 지금도 메슥거린다. 십수 년 전 비 많이 오는 날 기분이 안 좋았던지 선배와 술을 많이 먹고 양복 입은 채로 흠뻑 젖어서 집으로 오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혼자 들어가서 거기 있는 안주를 종류대로 다 시켜놓고 소주를 마신다. 아주머니는 손님도 나밖에 없는데 매상을 많이 올려주니, 먹든 남기든지 상관없이 안주를 만들기에 정신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머니도 한잔하쇼” 하면서 소주를 1잔 따라 건넸다. 그러나 그분은 포장마차 저쪽 구석에서 도마작업을 하고 있었고 내가 술을 권한 사람은 습도에 더워서 아주머니가 벗어 걸어놓은 조끼였던 것이었다. 내가 아는 어느 선배는 새벽까
힘들때 강한척 하지 말고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 가더라도마음 놓고 울어 볼 것을 권유… 쉽게 말하는 불혹의 나이입니다. 잘 살아왔는가에 대한 생각이 가끔씩 잠자던 나의 영혼을 깨우고 타성에 젖어 매일 반복하는 일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곤 합니다.얼마 전 저는 강남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목사님이 인도하셨는데 그날 제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내용은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거였습니다. 매일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눈물을 달라고 매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닌 눈물이라니요? 처음엔 좀 의아했지만 그날 기도회가 끝날 즈음 저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저의 눈에도 끊임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십수년 전 처음 병원을 개원했을때를 생각합니다. 빚을 진채 병원을 시작해서 매월 이자와 원금이 버거웠던 시절. 집은 전세를 살았는데 한참 집값이 폭등하던 때라 전세금을 못 올려주어서 이사를 해야 했던 힘든 경험들, 1년 만에 다시 병원을 옮기면서 다시 늘어난 빚들, 빠른 경제적 안정을 원하며 힘든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환자를 보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때는 아침 9시부터 저
너무 가볼 곳이 많고헤아릴 수 없이 볼거리가 많고머물고 싶은 곳이 많은 도시가… 서울을 떠나 수도권에 몇 년을 살다보니 어떤 때는 서울이 궁금하고 때로는 생소한 느낌이 때가 있다. 더군다나 병원마저 수도권으로 옮겨 놓은 상태 인 지라 접촉하는 사람들과 환자들도 대부분이 이곳 지역 주민 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학회나 친구들 모임, 동창회 또는 사회적 목적 모임이 있을 때 마다 부지런히 서울을 드나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옛날에는 이런 것들이 귀찮았지만 요사이는 그렇지가 않다. 교통이 막히지 않을 때는 승용차이지만, 대부분은 전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대중교통의 편이성 때문에 요즈음은 승용차를 이용한다는 것이 좀 촌스런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서울을 나가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이제 서울은 완전히 지도가 바뀐 것 같다. 옛날 90년대나 80년대 내가 다니던 광화문 길이나 태평로 시청 앞 로터리 북창동 길이 아니었다. 광화문 지하도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가 된 느낌이고, 그 넓은 광화문 네거리는 지하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않고도 지상에서 횡단보도를 이용한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도 상쾌했다. 전에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총수에 밀려 주눅이 들
내곁에서 맡은바 일에 충실하고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모든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함성을 질러내던 2002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료실에선 유니폼 대신 붉은 악마티와 머리두건을 두르고, 진료을 중단하고 대기실로 나와 고객들과 함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쳐대곤 했었다. 그때 그 감동이란... 벌써 3년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생각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축구의 승전은 스타 한명에 의존하여 그 스타가 빠지면 팀이 붕괴되는 스타플레이어 축구가 아니라 스타는 없지만 기막히게 의사소통이 되는 멀티플레이어 축구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직에서는 제멋대로 하는 실적 좋은 스타 한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평균적인 힘을 내는 것이 조직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조직은 이미 개인이 아니며, 조직은 나름대로의 룰과 법칙으로 운영될 때 파워풀한 힘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룰은 직원들의 의사와 행동이 통일되었을 때, 별개의 플러스 알파의 힘까지 분출 된다. 그 기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치의학 분야를 바라보며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하루가 다르게 세상 만사가 변화해 가고 빠른 것이 최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21세기 초반에 산다는 것이 행일까? 불행일까? 중국인의 만만디 습성을 조금은 우리네 가치관에 접목해야 한다느니 미국의 fast food에 맞서 우리 음식의 특성인 slow food가 well-being 생활에 더 적합하다느니 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느껴지지만, 여전히 우리는 초고속 지상주의의 현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20~30여년간의 기술발전은 특히 고도집적기술의 발달에 집중되어 상상만으로 여겨지던 일들이 각자의 손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약 십년내로 휴대폰 하나로 모든 일상생활의 문제가 해결되는 시기가 오리라 한다. 젊은이들 가운데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첨단 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구매하여 먼저 써 보는 것을 즐기는 집단을 ‘early adaptor"라 부르고 각 회사들은 이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사용 소감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휴대폰 말고는 MP3 player하나 없는 필자는 발빠른 early adaptor들이 부러울 따름이지만 치과에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선물하여모두 한자리에 모여 생일을 축하하고직원들이 영화를 보거나 화합을… 이런저런 이유로 찾아뵌 지도 오래되고 안부도 여쭐 겸해서 선배의 치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학시절·고등학교 시절의 족쇄를 풀어 버리려는 듯 삶을 비우는 일에만 급급한 후배들과는 달리 뭔가를 항상 채워나가기 위해 열심인 선배였기에 잘 따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 선배였다. 그런데 한참 핸드피스 소리와 석션 소리가 들려 나와야 하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 찾아왔나 싶었는데 간판이나 선배이름이 뚜렷이 적힌걸 보니 분명 제대로 찾아온 것은 맞았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고객들 사이로 난감해하며 그들을 설득하고 있는 선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멋쩍어 눈인사만 하고 멀거니 서 있는데 10여 분만에 나를 다시 발견한 선배는 그제야 원장실로 나를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오늘 아침에 출근해보니 스탭 모두가 동시에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화는 불통이고, 어제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예약환자는 대기하고 있고 혼자서 진료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