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7번째 이야기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어머니께서 주신 아들에 대한관심이 휠씬 컸다고 믿는다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끝이 없어보이는 긴 뚝길을 지나 넓은 개천이 좁이질때가 되면 거기에 외갓집이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앞 어귀에 곧게 뻗은 신작로. 그 길가엔 계절따라 피고지는 들꽃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지친 다리를 만지고 흙먼지와 떨어진 풀잎사귀를 털어내며 ‘또 가야돼" 하며 이제나 저제나 쉴 수 있을까 투덜거리며 걸었다. 외갓집에 다다르자마자 대청마루에 뛰어올라 큰댓자로 눕곤했다. 대학에 가서야 넓게만 보이던 개천은 밀양강의 작은 지류였고, 뚝길은 일제때부터 강의 범람을 막고 농사를 제대로 수확하기 위해 만든 아주 오래된 방수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옆동네로 신랑의 얼굴도 제대로 못본체 시집을 갔었고 잠시 시댁에 머물다 도회로 떠나며 질곡의 역사속의 한 증인으로서 일제를 거쳐 6.25사변과 우리의 현대사를 꿰뚫고 살아오신 한분이셨다. 소학교시절엔 당신의 백부를 따라 일본으로 가서 주경야독하며 공부하리라는 당찬 신사고를 가진 분이셨건만 그 시절 수많은 어머니들처럼 시집가서 집안의 밀알이 되어 한평생을 보내셨다. 그렇게 비슷
봄의 여인 볼수록 우리 어머니 품 같은진달래가 만개한 이 나라의 산은사랑스러우며 다정함을… 어느덧 4월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몸을 추스르며 아직도 자고 있는 나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나는 일어나 말없이 가버린 봄을 원망하지도 못한 채 또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건가. 할 수만 있다면 봄을 내 머리맡에, 뒤척이며 잠에서 깨면 항상 볼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숫자 4에 익숙해져 있다. 캐나다에 머무를 때도 가급적 4자가 들어간 콘도에서 살았고 새 차를 타게 되면 4444킬로 메타가 넘어갈 땐 혼자만의 자축을 한다. 자의든 타의든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 닥치면 차라리 그일을 즐긴다. 즐기다보면 어느새 그 일은 봄의 여인같이 내 곁에서 떠나게 된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불행한 일이 있어도 늘 마음속으로 이 일은 시간과 같이하며 나에게 자연스럽게 왔다가 추억만을 남긴 채 그냥 스쳐지나갈 것이라고 되뇌이곤 한다. 그렇게 인생이 살아지는가보다. 하루의 90%는 나 자신과의 대화에 빠진다. 그러기를 여러 해 지내온 것이다. 가끔은 나 자신에게 물어보길 니가 눈을 감는 순간 너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
음료수 대신 물을 마시고뿌리와 줄기채소를 통해충분한 양의 섬유질을 섭취하고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안면근육의 긴장도가 비슷해져 가면서 얼굴표정이 닮아 간다고 한다. 그런데 한 지붕아래 살면서 생활 습관을 공유하게 되면 얼굴 모습뿐만 아니라 몸매까지 닮아 가는 현상을 흔히 보게 되는 곳이 여기 미국인 것 같다. 슈퍼마켓 계산대의 긴 줄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은 무얼 사가지고 가나 쳐다보면서 그들의 저녁식단이 어떻게 차려지게 될까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상력의 한도를 넘어서면서 예측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뭘 해 먹을까. 냉동 피자 2판, 달걀 1줄, 4.5리터 우유 2병, 식빵 2줄, 콜라 12캔, 병에 든 파스타 소스 1병, 감자 칩 2봉, 스테이크용 고기 3팩, 그리고 미리 씻어서 썰어놓은 샐러드용 야채 조그마한 봉지 하나. 식빵 개수를 보면 일주일 치인 것 같은데 저렇게만 먹어도 될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추수감사절 전날, 어느 부부의 장바구니를 보았더니 아주 단순했다. 냉동칠면조 한 마리, 감자 한 봉지, 통조림 콩 하나, 케익 믹스 한 팩, 우유 1병.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들었는데아마도 그런 결정을 내릴때까지부모님과는 상당한 충돌도… 얼마 전 초대장 하나를 받았다.그런데 보낸 사람 이름이 생소하여 그냥 버리려다 뜯어보니 그림 그리는 선배의 아들이 작품 전시회를 연단다.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시회를 연다는 그 아이는 내가 알기론 현재 고3 수험생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전시회를 여는 날이 바로 수능 시험날인 것이다. 평소에 아버지 전시회에 작품을 하나씩 전시할 때만 해도 구색을 갖추기 위한 아들 작품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수능 날 자기 작품을 가지고 개인 전시회를 갖다니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들었는데 아마도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부모님과는 상당한 충돌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런 아들의 끼와 개성을 이해하는 아버지와 대학이 아닌 자기의 끼를 따라 그런 결정을 내린 그 아들의 결정과 용기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에만 몰두해야하고 자기의 재능과 개성을 묻어야만 하는 그리고 찾아볼 기회도 주지 않는 우리의 교육환경과 사회 분위기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너무도 안쓰럽고 미안하기까지 하다. 어느 모임 신조에서는 이 지구상에 가장 위대한 보배가
일본의 처사에 대항하기 위해우리도 과거의 일제만행에 잔인하게유린당한 역사를 부끄러워만…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군국주의 제국의 ‘위대함’을 잃어버린 일을 애석해 한다.”는 기사를 통해 일본의 우경화 경향을 비판했다. (중략) 최근 사례는 1905년 한국이 빼앗겼다가 수십 년 전부터 다시 관할 해온, 일본이 다게시마라고 부르는 독도라고 보도했다. 디 벨드는 난징(南京)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인체 실험,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라는 명목으로 매춘을 강요당했던 일 등 일본의 전범 사례를 꼽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들은 전쟁 범죄를 언급하지 않고 엉터리로 역사를 묘사한다.”고 비판했다.’ 이글은 제3자인 독일인 눈에 비친 일본에 관한 글이며, 2005. 4.12. 조선일보에 개재된 글이다. 오늘의 일본이 ‘과거의 위대함’을 그리워함은 이웃 한국, 중국과 동남아 여러 나라에게는 ‘과거의 잔인무도함’을 연상케 한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국 영토로 편입키 위한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과거의 침략사를 보는 듯하다. 일본이 불법 점유를 강조함은 그네들도 불법 점령 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 하다. 일본
온몸이 정상인 우리도언제 어느때 장애인이 될지 모르고장애인 자신이 무슨 큰죄를 짓고… 내가 컴퓨터를 어느정도 스스로 익히고 나니 다소 심심하던 차에 어찌 어찌 하다가 삼행시 모임이 있어 가입하게 되었다.내딴에는 내가 나이는 좀 먹었어도 글짓기 실력 만큼은 아직 젊은이들 못지 않다는 자부심도 있고 외계어가 판치는 컴퓨터 세계에서 국어 순화운동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해 보려는 잠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컴퓨터에서 말하는 소위 카페라는 곳인데 가입된 회원 대부분이 젊은이 들이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젊고 패기에 넘치는 기상이 보기에 썩 좋았다.카페 주인이 그날 그날 아침에 주제를 내어 주는데 예를 들면 ‘고구마" 하면 회원들이 돌려 가면서 고-- 고려자기는 구-- 구수한 맛이 있어마-- 마치 우리 고유의 숭늉같은 맛이 난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읽은 사람들이 간단한 평도 하고 칭찬도 하고 더 멋진 삼행시도 지어서 올리는 싸이트였다. 하루 하루 맛을 들여 가며 삼행시를 짓다 보니 글짓기 솜씨도 늘고 인터넷 상으로나마 많은 사람들을 사귈수 있어서 좋았다.회원중에는 중고생, 대학생, 직장인, 요즘 흔히 말하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나?) 등 각계 각층을
2년간 교정을 하며 정이 들어부모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치대를 선택했는데 내 인생… 3년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으로 출마하여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난생 처음 얼굴 화장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웃는 표정, 생각하는 표정 등등의 여러 표정을 지으며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결국 그 중에 모든 이를 드러낸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선택하여 사용하였는데, 그 사진 속의 가지런한 나의 치아를 보며 35여년 전을 회상하며, 나와 치과와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1969년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에 우연히 거울을 보니 나의 치열이 엉망인 것을 알았다. 앞이 4개가 서로 겹쳐서 들쑥 날쑥한 것이 영 보기가 좋지가 않았는데, 형제들은 드라큐라라고 놀렸다. 보다 못한 어머님이 치열 교정을 시켜준다며 나를 동네 치과로 데려갔다. 여러 군데 치과를 방문하였지만, 그 시대에 한국에 치열 교정을 하는 치과는 거의 없었는데, 어느 치과에 가니 소공동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소개해 주었다. 소공동 서울치대를 찾아가니 허름한 까운을 입은 원내생이 찌그덕 거리는 어두운 마루 복도를 지나 고물, 치과 유니트가 2∼3개 있는 구석진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는데, 그 곳이 서울치대
협회 일을 시작하면서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존경하고 싶은 분들이 너무도… 학창시절 나는 친구들과 종종 낚시터를 찾곤 했다. 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저수지의 새벽은 너무도 아름답고, 나에게 작은 설레임을 가져다주었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고요를 깨우는 물새의 맑은 노래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진한 커피 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새벽이라는 시작이 가져다주는 설레임인 듯하다. 누구에게나 늘 새로운 시작이 있겠지만 요즘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시작이 있다. 새로운 설렘이 시작된 것이다. 시 치과의사회에서 회원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많은 망설임을 가졌었다. 평소 낯가림이 심한 편인 나에게 이사로 선임되어 갖은 첫 만남에서의 어색함이란…. 다소의 걱정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겨나는 듯하다.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은 있지만 아직은 조언도 구하고 때에 따라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또 나의 일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넘쳐나는 각종 광고와 신문들을 뜯어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
월정 보수에다 인생공부를 더하여준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를해 댄 것이 당사자는 몹시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나 보다.내가 조그마한 개인 치과의원을 할 때의 얘기니까….우리 치과에는 김양 이라는 간호조무사를 한명 채용해서 썼었는데 얼마간 잘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루는 퇴직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때만 해도 구인난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나는 언제나 해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다소 불편 하더라도 즉시 소원을 들어 주는 성격이라 쾌히 승낙을 하는 편이었다.그런데 일을 곧 잘 하던 김양이 갑자기 그만 둔다 하니 하도 어이가 없어 난감하긴 했지만 다음에 올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참고나 하려고 왜 우리 치과의원을 그만 두는지 이유나 좀 들어 보자고 하였다. 이왕 그만 두는 마당에 그만 두는 이유를 바로 말해 주어야 다음에 여기 올 다른 사람한테는 같은 이유로 그만두는 일이 없게 할 것 아니냐고 하면서 애원을 하다시피 물었다.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사정을 해도 아무런 말을 안 하다가 나가면서 문 앞에서 하는 말이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하고 싶은 말을 언제고 하실 수가 있으시니..." 하고 나가 버렸다.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엄마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고무조건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작고 연약한 아기 나의 짝사랑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젊은 시절의 열병 같은 짝사랑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스무살 무렵 그 싱싱하고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던 그 시절에 밤잠을 설쳐가며 누군가를 그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수하기도 했던 그 시절.그저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들.... 그런데!지금 이십여 년이나 지난 이 나이에, 나에게 그런 짝사랑이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화내고 우는 모습도 사랑한다. 때로는 ‘그’가 나의 단잠을 깨우고, 나를 무척 힘들게도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그저 주기만해도 좋은, 곁에 있기만 하면 좋은, 너무나도 순수한 것이다. 나는 ‘그’의 생김새, 걷는 모습, 웃는 모습, 소리지르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도 좋다. 맛있는 음식, 좋은 클래식 음악, 신선한 공기, 나무가 많은 공원.... 어느 곳에 있어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나는 완전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나를 다시 달콤한 짝사랑에 빠지게 한 그대, 그는 바로 내
연자는 진지해야 할 강연에서자주 본론을 벗어나농담·잡담·한담을 하는데… Digital 시대에도 여전한 것 중의 하나로 권위자의 강연에 대한 청중의 진지한 태도가 있다. 한때는 강연 내용을 memo하고 정신 집중하여 경청하는 것이 최대의 경의로 받아 들여졌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뿌리박아 감히 연자의 자질이나 언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금기로 내려 온 것이 현실이다. 일전에 나는 이런 금기에 도전했다가 소위 연자사모원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는데 유감이 있어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요즘 열화 같은 seminar 붐은 여사한 강연회를 우후죽순 격으로 속출하는바 아무도 연자가 불만스러워도 누구하나 탓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연자는 오만스러워 가는 것이 눈에 띨 정도다. 이런 현상은 관습화 되어 성역화에 이른다. 나같이 배우는데 나이도 시간도 건강도 무릅쓰는 사람에겐 시간관념이 남 다르다. 하지만 연자는 진지해야할 강연에서 자주 본론을 벗어나 농담, 잡담, 한담을 하는데 이것이 지나쳐 우려할 지경이다. 양념도 자주 치면 음식 맛을 버리는데 소위 강연예절을 의식하여 음식 맛이 다 버릴 때까지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