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이전(縮小移轉) 공간을 줄여 이사하는 것이 몸무게를 빼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 정 섭 ·88년 원광치대 졸·현) 남원 노치과의원 원장 개원 15년째를 맞이하여 치과를 줄여서 이전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이라 함은 확장이전을 생각하기 때문에 축소이전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는 것이 무척 난감하였다. 거의 20여 평을 줄여서 이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공간배분을 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곳이 50평이 넘었기 때문에 아주 방만하게 공간을 활용하였으나 이제는 단 한 뼘의 공간도 낭비 할 수가 없었다. 원장실은 아예 없애 버렸고 간호사실, 소독실, 기공실을 통합해서 하나로 만들고 창고와 기계실도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몇 조각의 공간을 벌어보자고 멀쩡하던 에어콘과 온풍기도 버리고 한개의 냉온풍기로 통합하였다. 방사선실과 기계실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 문도 모두 없애버렸다. 실로 15년의 개원 경험에도 불구하고 유니트 체어 5개와 파노라마, 직원 5명을 유지할 공간을 32평에 만들기란 수월하지 않았다. 특히 아쉬운 것은 대기실이 좁아서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번 이전을 통하여 공간을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음악을 꼭 들어보길 권한다 필자는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있는데 그 중 음악을 매우 사랑한다.시작은 클래식이었는데 처음 들었던 곡이 지금도 좋아하는 베토벤의 황제였다. 누나가 클래식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집안에 흐르는 곡들을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귀에 익혔으며 하나씩 공부하고 알아가게 되는 과정을 거쳤다. 레드제플린과 딥퍼플을 좋아하게 되고 클래식에서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를 사랑하게 됐다. 국악은 제외하고.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가무를 즐기고 음악성이 뛰어난 민족으로 꼽혔는데 왜 현재에 이르러서는 우리 음악은 자취를 감추고 서양 음악만이 ‘음악’이란 단어를 독점하고 있을까? 오래된 낡은 것이라서? 아니면 음악성 자체가 저급해서? 고등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하며 국악을 접하게 됐는데 그 첫 느낌은 지루함이었다. 재미도 없었다. 박물관에 온 듯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한 그런 느낌과 함께….하지만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곡들을 억지로 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한 달쯤 지난 다음엔 그 지루하고 박물관의 존재 같던 국악이 문득 음악으로 들려오는 게 아닌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며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삼십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며 지금껏 나에게 있어 카메라는 참 낯선 기계였으며, 사진이란 것 또한 아주 어릴 적 내 모습을 담은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자식이란 존재는 참 대단한 것이었나 보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삶의 소중한 기억 특히 어린시절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내 사진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대의 카메라와 렌즈들을 장만했고, 여러 사진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도 기웃거리고, 사진 소모임 활동을 하고 나의 건조하고 지극히 일상적이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막연히 카메라를 들면 아주 거창한 것, 대단한 것을 찍어야 하는
티 없이 맑은 아이의싱그러운 말을 듣는 내 가슴엔 어느새 푸른 산소비가… 박 금 출 ·82년 경희치대 졸·현)박금출치과의원 원장 정말 어려 보이는 자매가 치료대에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올라간다. “아이들 몇 살이에요?"“나우가 6살이고 나연이가 4살이에요." 직장 근처 치과에 갔다가 아이가 입도 안 벌리고 울어서 치료를 못하고 왔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겁 많은 아이들 이모도 치료했다고 하시며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아, 어머니도 안녕하시고요? 참, 눈이 큰 백혜진씨는 시집갔나요, 요즘 안보이던데요?"“예, 이모 곧 결혼 할 거예요."불안에 떨고있는 아이들 표정을 보니 치료가 될 것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생각 밖에 없으리라. 오랜 경험에 의하면 이런 날은 얼굴만 익히고 가장 간단하고 쉬운 치료를 하고 보내는 것이 좋다. 다행히도 언니는 무사히 가벼운 치료를 했다. 문제는 더 어린 네 살짜리 동생 나연이다. “예쁜 어린이 이름이 뭐예요?"긴장해서 눈을 꼭 감은 채 대답을 안 한다. 엄마가 이름을 대신 말해준다."나연이 몇 살 이예요?"손가락 네 개를 보여준다.“치료하다 힘들면 왼손 들어요.
골프는 처음부터 끝날때까지자신과 싸우는 여정이며 웃고 울수 있는 드라마와 같다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진 않지만 골프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병원 수련 생활을 마치고 바로 개원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동료 개원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골프는 사치스런 여가 생활이었으며 골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저버리고 나름대로 골프를 해왔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되며, 또한 내 생에 큰 보람이었다고 자부한다. 나름대로 골프에 대한 철학과 생활에 대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면서 나름대로 되돌아보고 싶다. 처음 머리를 올린 날이 6월 6일로 기억되는데, 어스름한 새벽, 푸른 잔디 위엔 밤 새 살포시 내려앉은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런 낙원이 없다 싶었다. 푸른 들판에 몇 안되는 사람만이 거니는 순간엔, 평소 좁은 진료공간에 생활해온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잔디를 스치는 발자국 소리가 귓가를 맴돌 때 나를 돌아보게 하였으며, 같이 한 사람들과 평소 못한 친근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 하나의 행복을 만
자신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생(生)이라는 굶주린 독수리에게가슴 한켠을 파먹힌 자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그들은 그후로 오랫동안,어떤 외투로도 몸을 덮힐 수 없는우수의 계절을 살아간다. 나는 김민호 선생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outside’라는 닉네임으로 올라온 그분의 사진을 몇장 본 것이 전부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마련된 그의 사진들을 다시보며,나는 그와 채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허공 속,찰라에 펄럭이는 영혼의 풍경 한자락에 그만, 눈을 가리우고 만다. 삶이 질펀히 펼쳐놓은 잔치의 한복판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듯,비껴앉은 그의 시선은이승의 풍경들이 그려내는 속내를 그저 물끄러미 건너다볼 뿐이다.가만히 귀 기울인 그의 귓바퀴에선 잦아드는 울음의 뒤끝이거나길 떠나려 몸을 뒤채는 바람의 여운이 새어나온다. 한 걸음 뒤에서 생을 바라다보는 자에게,저무는 어스럼녘은 다사로운 한줌의 위안.숨죽인 어둠이 가만히 몸을 감싸올 때, 비로소 그는 깊은 숨을 내쉰다. 한낮의 햇살 아래서 바스러지는 웃음을 웃고 있을 때에도그의 목덜미 뒤엔 덜 말라 눅눅한 슬픔이 깃들
사는 것 별거 없다자신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듯남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면서 인생은 요지경이다. 정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삶인지?작년에도 아무도 온다 간다 말없이 슬그머니 그렇게 소리없이들 우리곁을 떠났다.겨울엔 어머님도 그렇게 우리곁을 떠나셨다. 내 자신이 속이 훵 비어 날아간 것 같았다. 이젠 정말로 孤者가 되었다.산다는 것은 어느 하나 확실한 것 없이 망망대해에 일엽편주 띄우듯, 각자 운명에 따라 바람과 파도에 몸을 맡기고 태어나 길고 긴 고행을 시작하지. 누구든 파도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느끼면, 순풍이든 역풍이든 내맡기고 힘을 빼는 지혜를 터득하기도 하지.가끔은 짜고치는 고스톱판에 끼여들은 것처럼, 아니면 로또복권 몇장 사들고 매주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속고 또 속는… ‘혹시’가 ‘역시나’ 로 끝나는 그런 삶이 생각보다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작년 연말 대해일로 낙원 같던 서남아시아는 지옥으로 변했고, 대자연의 진노앞에 너무나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무력한 인간의 모습에서 우린 할말을 잃는구나.처음 치과경력 1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동치미속에서 생활해 왔기에여전히 나는 의국원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참으로 바쁘고, 해내어야만 할 일이 너무도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시간 내어 만나기 힘든 요즘이다.주말과 휴일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로 약속을 한터라, 가뜩이나 더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그나마,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학회, 망년회 등의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마련되어야만, 보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매일 매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애별리고만큼이나 불행한 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있다. 내가 수련 받았던 의국이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나에게 많은 추억과 보람과 희망을 가져다준 우리 의국출신 선생님들이 매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다행히 의국원들이 매일 매일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생긴 것이다.이름 하여 동치미 카페가 그 사랑방이다. 동치미가 무슨 뜻이냐 하면, 겨울에 먹는 물김치를 이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의료원 치과의국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
항상 미소를 띠울수 있고가슴속에 따스함을 간직하길바라면서 한밤의 드라이브를…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고 찬바람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리 춥진않고…어둠이 일찍내려 어둑어둑해져 이른 저녁밥을 먹고나면 저녁시간이 매우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저녁 아니 밤에,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역시나 이른 저녁식사후 남편은 색다른 제안을 했다. 한밤의 드라이브…연애할때도 해보지 못했던 토요일 밤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드라이브 코스는 남산타워. 남산공원길을 차를 타고 오르는데 중간쯤부터 서행하더니 급기야 앞차가 멈춰버렸다. 아니 이밤에 우리말고도 남산타워를 오르는 이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아니나 다를까 주차공간이 없는거다. 망설이지 않고 적당한 공간에 차를 주차시키곤 옷깃을 살짝 여미고 운동화끈을 동여매고서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약 300m정도는 걸었을게다. 남산 팔각정이 보이고 왼쪽으로 남산타워가 불빛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파 남산 팔각정에 섰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야경은 커녕 성냥불 아니 라이터 불빛도 보이지 않고 캄캄한 나뭇가지들만이 있었다. 약간의 보수를 지불하고 타워엘리베이터
감독이 두셋씩 있어도온갖 장비를 동원해대량으로 컨닝을 해대는… 일 때문에 건너갔던 가고시마의 한 모퉁이 호텔에서, 나는 우연찮게 일본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한국의 대입 수능 시험 비리 보도를 보게 되었다. 시험 시간 내내 애타게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과 시험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굴비두름처럼 줄줄이 끌려가는, 점퍼를 뒤집어쓴 학생들의 모습이 연이어 클로즈업되며 앳된 여자 앵커는 그 특유의 하이 소프라노로 대대적이고도 조직적인 한국의 국가시험 커닝 사건을 흐름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보도했다. 이게 웬 망신살?! ... 한국에 돌아와서도 뉴스시간이면 반복되는 수능 비리 사건 수사보도를 볼 때마다 그 일본 앵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려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 전, 남편은 연합뉴스의 기사를 훑어보다 이것 좀 보라며 내게 손짓을 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수능 비리 때문인지 ‘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키우는 교육’, ‘32년간 무감독 시험 치르는 여고’의 제목 아래 개교이래부터 무감독 시험을 고집해온 10여개 고등학교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낯설지 않은 문구들... 나는 자연스레 고교시절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걸어가도 15분
나로선 할 수 있는최대한의 자세를 취했다고이번에도 안되면… 오전진료를 마치고, 12시가 되자마자 직원들이 사다준 찹쌀떡을 먹고는 응원을 받으며 병원 문을 나섰다. 이 거원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신 강사님께도 면목이 안서고, 응원해준 사람에게도 면목이 안 서는데,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그동안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성남 트랙을 향하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비도 오고….차가 밀려서 은근히 걱정을 했지만, 양재 쪽을 벗어나면서 차가 빠지기 시작하여 오후 1시가 못되어 도착을 했다. 적응시간은 있겠군…. 그런데 들어가 보니 벌써 뭔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번에 있은 도난사고로 응시자들을 한쪽으로 모았고 바로 필기시험을 위한 준비가 시작 되었다.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몸 풀고 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허허… 이런.. 똑같은 신세에 처해 3번째 만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재응시생만 20명이 넘어보였다.그런데 다른 것은 이번 기수는 신입 신청자가 유난히 적은 숫자이다. 예전의 반도 안 되는…. 그러고 보니 필기시험 재시생도 한 6~7명 정도가 보인다. 이런 지난 기수에서….2시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