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3년이라는 세월은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던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1992년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마지막 수업시간, 맨 뒤에 앉아 졸고있던 나에게 험상궂게 생긴 동기하나가 다가온다.“야~!! 니.. 일단 따라온나" --;허걱!이렇게 영문도 모른채 따라간 곳이 곰팡이 냄새 퀴퀴하게 나는 밴드연습실이었고 부산대학교 치과대학내 ‘Dentaphone’이라는 메탈 밴드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됐다.예과 1학년때,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때의 빡빡머리를 보상이라도 하듯, 약간 긴머리(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웠음)를 하고 있었고, 이를 심상치 않게 봤던 동기생 하나가 나를 같은 밴드일원으로 점찍었던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인연을 맺고난 후, 예과 2년을 ‘음악’이라는 친구와 같이 보냈다.메탈음악을 처음 접해본 나는 생소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는 음악에 대한 매력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이지도 않았던 그런 시간을 보냈다.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음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거의 의무감으로 음악활동을 했고, 본과에 진입하고 나서는 자연스레 음악에서 멀어졌다.하지만, 막연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내맘속 깊은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던 때였을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밥때를 챙기곤 했던 것 같다공부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 전에 모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지금 이맘때면 형형색색의 온갖 물감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을 교정을 그저 스쳐 가는 눈길 한번 주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내 생각은 10여 년 전의 학창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국가고시 준비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생활해오던 그 때로.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일곱 명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여성동지들로만.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후 5시가 되면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학교 앞 여러 분식집들을 헤메고 다니곤 했다. 저녁 한끼를 먹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음식 맛보다 더 맛있는 시간으로 우리는 만들어 갔다. 여학생들의 뜻 없는 수다라고 표현할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어떤 이해관계도 끼어들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매일 만나는 친구들끼리 무슨 화제가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우리들은 밥을 먹는게 아니라 우정과 사랑을 나눠 먹으면서 쌓여있던 고민들을 모두 표출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본과 4학년 생활이 힘들고 고생스러웠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왼쪽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말을 듣고도 건강검진 한번… 원장님 전화왔는데요. 신문사라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아~! 그 나의 첫 피붙이였던 앙팡요. 그게...몇 년 전인가?... 20일까지요?예. 나의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단순해서 노력해도 안되면 미리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다. 나의 요즘 생활이 다람쥐 체바퀴 돌 듯 했다.(몇 년 전부터 건강상 이유로 술과 담배 일절안함) 오로지 치과일, 애들과 놀아주고 일요일엔 교회,신기(神氣)있고 독심술 있는 아내로부터 정신교육과 더불어 세뇌교육, 수족관(해수어, 담수어)과 온실수목관리...이 모든것이 일주일 단위, 짧게는 하루 단위로 반복된다. 나에게 이런 지루한(?) 안정된 생활패턴이 온 게 언제였나...1 년 전(?)... 단조롭다고 말을 내 뱉고나니 두 달 전 그러니까 7월 31일 장인어른이 세상을 뜨셨다.나는 차남, 아내는 막내인데 집사람이 일을 하게 되면서 장모님(위생관념이 강하시고 술, 담배하는 남자를 너무너무 싫어 하시는)이 우리 아이를 책임지시는 바람에 장인어른도 우리가 5년전부터 부산에서 이리로 모시게 되었다. 당신께서는 말기 폐암으로
설레는 맘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은 것이 엊그제 인데, 어느새 그 계절마저 깊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저리도 질서정연하게 매순간을 살아내고 있는데, 그 안의 나는 아직도 미혹을 헤매며 쓸데없는 집착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싶어 하찮은 길가의 은행나무 한그루에도 부러운 시선이 갑니다.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스럽고 아프게 느껴지는 일은, 떠나야할 때, 포기해야 할 때 과감히 돌아서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늘 적당한 때 와서 보기 좋게 머물다 딱 알맞은 때에 미련 없이 떠날 줄 아는 자연의 섭리가 유난히 맘에 와 닿는 요즈음이라선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머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또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행히 별 탈이 없이 더불어 그럭저럭 살게 되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때론 어떤 이유로 可不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곤혹스러운 순간에 더러 직면하게 됩니다.사람이나, 혹은 어떤 일에 대해 절망이나 회의를 느끼거나, 이건 옳은 길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하지만, 그런 순간에 조차도 인간적인 욕망, 유혹, 혹은 욕심 때문에 쉽게 자신을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삶이란 즐거움을 만드는사람에게는 행복한 것이다즐거움이란 자신이 만들어… 오늘 무척이나 비가 많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바람도 거세게 분다. 오랜만에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음에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길이 있다. 그 길의 종착역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지만 그 종착역의 삶에서 교차되는 만감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자기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평가를 어떤 방향에서 해석하는가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비관적인 방향의 생각을 가질 것인가! 낙관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가질 것인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의 방향은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운명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들을 즐겨라.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에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지, 웃으며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는지,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웃을 수 있는 마음
잠자리채 같은 걸로 하나 잡아서드럼통 같은 기계에 넣는다불쌍한 꼬꼬는 고깃덩어리 모양이… 공보의 1년차 시절부터 이따금씩 해먹던 음식중 하나가 닭이다. 닭 한 마리를 사와서 찜통에 물을 적당량 붓고 푹푹 삶아서 먹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닭냄새를 좀 줄이기 위해 마늘 몇개하고 생강을 약간 넣는다. 뱃속에 쌀을 넣은 적도 있지만 귀찮아서 거의 그냥 삶아먹었다.물론 이것도 내가 할줄 알았던게 아니라 같이 있던 분한테 배운 요리(?) 중의 하나이다. 닭이 다 익기 전에 먼저 똥집을 꺼내서 먹고, 좀 더 기다렸다가 닭을 꺼내서 먹고 그리고 남은 물에다가 밥을 말아먹을 수도 있지만,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를 만들어서 넣어 끓여먹기도 하고 아니면 만두를 빚어서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이건 요리법이 워낙 간단해서 공보의 3년간 생각날 때 마다 해 먹은 음식이다.같이 있던 분이 제대한 뒤에 새로 오신 분은 역시 내가 처음 왔을 때와 마찬 가지로 밥도 제대로 못하는 분이었지만, 내가 그동안 쌓은 무공을 전수받아 몇달 지나서 내가 몸살로 앓아 누웠을때 닭을 사와서 해주곤 했다. 2년차가 되서 보건지소를 옮기고 나서 또 닭을 사려고 정육점에 갔다.
남녀노소·체력 강한 사람약한사람 누구나 즐길 수 있는레저스포츠로 꼽히고 있다 89년 만덕산 등산길에서 길을 잃은 등산팀이 있었다. 험준하지는 않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산이었고 등산로를 잃어 버렸으니 팀을 이끄는 등반대장 이하 전 산악회 회원들을 우왕좌왕....단 한번도 실수 없는 등반대장은 자연스러운 너스레로 회원들을 안정시키고는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더니 무엇인가를 찾는 눈치다. 날더러 앞에 보이는 절벽(20여m 정도)을 넘어 무엇이든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보라고 한다. 멀리보이는 봉우리 그것을 지도위에 표기하고 나침반으로 방위를 제고 거리를 측정 후 걷기 시작한지 50분 정도 정상에 도착했다. 그것도 그날에 운이었는지는 모르나 하산을 하려하니 안개가 자욱하다. 서둘러 하산을 하려 했으나 도무지 10보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또 배낭을 내려놓고 지도를 펼친 뒤 나를 따르라는 등반대장을 따라 내려오기 30분여 앞에 가던 등반대장이 “십분만 쉽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하는 생각에 가까이가 물어보니 바로 모퉁이만 돌면 등산로가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지도, 나침반, 목표물만
평생 시름으로 안고 갈구순구개열 환자의 한숨을 기쁨과 웃음으로 날려버린 추석연휴를 반납하고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대한구순구개열학회(회장 남동석)가 LG의 후원을 받아 펼치고 있는 진료 봉사(이집트, 파키스탄, 모로코, 케냐 등 중동 아프리카지역)의 일환인 고려대학교 모로코 수술팀에 참관하게 됐다. 인천을 출발해 근 30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진료지에 도착했다.모로코에서는 작년 카사블랑카에 이어 2차로 중부내륙의 마라케시에서 임재석 교수(고려대), 이종호 교수(서울치대), 장현석 교수(고려대)이하 총 14명으로 팀이 구성되어 예진을 포함하여 5일간에 걸쳐 30여명의 환자를 수술했다. 같은 치과의사이면서도 남편(임재석 교수)의 수술 장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옵저버로서 남편의 수술 방에 들어가 1살 전후의 핏덩어리 같은 환자의 엄청나게 좁은 평수의 갈라졌던 입술이나 입 천정을 말끔하게 수복시키는 것을 보니 절로 경탄, 존경심과 함께 엄청난 집중으로 인해 얼마나 피곤할까에 생각이 미치니 앞으로 남편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자비 부담한 나의 경비(수술 팀은 후원금)는 남편이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선후배 동문이 한마음 돼일궈낸 기념비적인 연주는 한국치과인 모두의 자랑~ 지난 9월 2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하나의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음악회가 열렸다. Dental Orchestra의 30주년 기념 음악회였는데, 이번 음악회에서는 국내 정상급의 지휘자인 강석희 수원시향 지휘자의 지휘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박승민 성신여대 교수의 협연이 어우러져 더욱 음악회를 빛냈으며, 이날 이례적으로 예술의 전당의 객석을 거의 채운 2000여명의 관객이 참석하였다.음악회는 Egmont로 시작되었다. 기다란 도입 tutti가 끝이자마자 기대, 흥분 그리고 불안 가운데에서 우리 모두는 불안에서 순간 해방되었고. 안정된 관과 현의 과욕 없는 조화는 애국, 순교, 사랑, 헌신, 이 모두가 실종된 우리에게 베토밴의 영웅을 성공적으로 소묘하였다. 단단한 기초를 바탕으로 한 박승민 교수의 라흐마니노프 2번 concerto는 그 특유의 힘차고 장대한 연주로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은 몸서리쳤다. 그날 저녁 우리는 라호마니노프를 새롭게 만난 것이다. 서울치대 본과 2학년의 조주영 양의 2악장에서 clarinet은 tsundra의 한떨기 장미였다. 이 같은 자리에 Dent
맹인·뇌성마비 선수 등시종일관 흥겹게 대국하는모습이 눈시울을 적셨고 지난 9월 12일 인천실내체육관에서 제7회 미추홀배 전국아마바둑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작은 촛불 하나가 큰불을 일으키 듯이 7년전 IMF시절 국내아마기전들이 거의 없어지고 경제대란으로 나라가 부도날 당시 아마바둑 동호인들이 인천에서 바둑대회를 하면 너무 좋겠다는 권유와 당시 경인지역치과의사 기우회인 아원기우회회원(당시 회장 유수인)들의 전국 아마바둑대회 개최의 뜻이 모아져 미추홀배 전국아마바둑 최강전이라는 명칭으로 150여명의 선수들이 인천의 한 기원과 태권도장을 빌려 10여명의 치과원장들의 후원금과 대학 선행 봉사로 전국의 아마바둑 고수들과 성공적으로 치룬 것이 계기가 되었다. 6년전부터는 전국의 장애인바둑 애기가들에게도 바둑대회를 만들고 행사장도 학교강당에서 마련했고, 3년전부터는 인천실내체육관을 사용하여 장애인과 일반아마바둑인들의 바둑대축제가 알차게 열렸다. 올해에도 인천의 여성바둑인들을 위한 바둑대회를 함께 주최하며 참가선수와 봉사자 등 1000여명이 참가하는 인천의 대축제가 되었다. 특히 올해는 인천광역시치과의사회(회장 김건일)와 ICN 인천방송이 인천바둑협회(회장 김
곁에 손 닿는 곳에 있을땐정말 고마움과 가치를 모르다가없어진 뒤의 그 허전함이란… 비가 오는 거릴 좋아하죠. 그래서 눈물도 많아요.빨간 장미보단 하얀 카라를. 또 담배 연길 무척 싫어하죠.처음처럼 전활 자주해줘요. 그녀가 토라질 땐 수화기에 대고 그 노랠 가끔 불러줘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을 테니.I couldn"t say I love you. It hurts me deep in my heart.이제 당신에게 그녈 보내요.정말 원하는 건 왜 항상 갖질 못하는지 소중한건 떠나는지.I couldn"t say I love you. It hurts me deep in my heart.그녈 울린다면 나 용서 않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할 수 있는 한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해요.그녀 집 앞에서 멀지 않은 곳 걷기 좋은 곳 있죠. 가끔 커필 들고 그녀와 산책하곤 했죠. 그것마저 이제 당신 몫인걸요.I couldn"t say I love you. It hurts me deep in my heart.이제 당신에게 그녈 보내요. 같은 남자라면 내 마음 이해해주겠죠.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맘.I couldn"t say I love you. It hurts me 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