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자신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나는 치과의사 주 5일 근무제를… 우리는 일주일 중 제7일을 성경에서 나오는 안식일 개념에 따라 휴일로 정해 쉬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5일 일하고 2일을 쉬는 주 5일 근무제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 개정되는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2004년 7월 1일부터 2011년까지는 단계적으로 거의 모든 사업장이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왜 성서의 법칙과 오랜 관습을 깨뜨리고 하루가 아닌 이틀을 쉬는 대변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문명의 발달에 의한 삶의 여유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인간의 관심이 삶을 즐기는 쪽으로 바꾸어지게 되면서, 다음 한 주의 노동을 위한 휴식으로서의 휴일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쉬면서 충분히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는 행복추구로서의 휴일의 개념으로 바뀌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과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병의원의 토요일 휴무는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물론 토요일 병의원이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얼마
내 병원 개원 2달째 나름대로 시스템이 갖춰져가고 마침 30대로 접어들고 있다 여름. 확실한 여름이다. 날씨로 보나, 날짜로 보나. 하지만 하루종일 시원한 치과에서 일하다보니 뉴스에서 연일 덥다고는 하는데 실감을 못하고 산다. 학창시절, 더위에 지쳐 배부른 오후 강의시간이면 쏟아지는 잠을 주체못해 꾸벅거렸고 방학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곤 했었는데 하루중 대부분을 보내는 내 직장이 은행만큼이나 시원하다는 것은 얼마나 복받은 것인지….내 병원. 개원 2달째 아직 발뻗고 자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시스템이 갖춰져가고, 함께 일하는 스탭들이 익숙해져가고, 내가 생각해 왔던대로 치과가 꼴을 갖춰가면서 마침 30대로 접어들고 있다. 언제였지? 몇년 전 재미로 들른 사주카페에서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나이 30에 아이를 낳으면 아들일거구 사업을 시작하면 대성할거라는….아들도 낳았으니 치과도.. 룰루랄라. 그래서 덥썩 개원을 한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고 개원을 하고 참 대학원까지. “나이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대학시절 그렇게 악쓰며 부르던 노래. 요즘은 인터넷상에서 일기를 쓰고있다. 그냥 컴퓨터에 저장만
내 고향과도 같은 강진에서 황금과 같은 세월을 보냈고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았음을… 강진!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나의문화유적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일컬었던 한국의 최남단의 땅.광주에서 대학을 나온 동창들이 서울이나 외국으로 나간 경우가 보통이었거늘, 난 반대로 남편을 따라 생면부지인 시골로 내려간 것이 금년에 17년쯤 됐다.LA처럼 전 세계의 인종이 모여 사는 곳도 아니요 서울처럼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까마득한 세월을 이 강진에서 보내는 것을 아직껏 후회해본 적이 없다. 세상이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도 느린 소처럼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남도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남아 있어 좋다. 치료가 끝나면 홍시나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갖다 주는 형제와 같은 환자들을 대할 수 있어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다.이곳에서 고등학교를 6번씩이나 졸업할 정도로 긴 세월을 무난히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고향이기도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어머니의 품속같은 평온함마저 주는 강진의 아름다움인데,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면하기 어렵다. 한국이 3면이 바다
개원한지 20년 넘어버린 지금진정으로 나를 위한 글이라는깨달음을 가지게 된다… 오래전부터 치과에 施惠(시혜)라는 석전 황욱 선생님의 글이 있었다.아마 80년초 쯤인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황욱 선생님의 아드님이 아는 분의 소개로 치과에 오신 적이 있었다. 참 파란 만장한 삶을 사신 분이셨는데 치아가 많이 좋지 않으셨다.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고 치료비는 절반정도 받은 것으로 기억이 난다.이분이 아버님이신 황욱 선생님에게 특별히 치과의사에게 적당한 글을 부탁해 施惠라는 글을 선물로 받게 됐다. 참고로 석전 황욱 선생님을 잠시 소개하면 189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한학과 禮(예) 樂(악) 書(서)등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을 갖추신 분으로 1953년부터 은거해 필력을 연마하셨고 또 말년에는 수전증을 극복하기 위해 손바닥 전체로 붓을 잡는 악필법으로 1975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신 분이다. 작품으로는 불국사 종각 현판과 화엄사 일주문 현판이 있으시다.80년 대 젊은 시절에는 그냥 유명한 선생님 작품이 한점 치과에 걸려 있다는 것 뿐 별다른 의미를 갖지를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덧 개원한지 20년도 훌쩍 넘어버린 지금 그 글이 진정으로 나를
혼자 걷다 뛰다를 계속했다혼자서 하려니 더 힘들다이를 악물어 보지만 다리가… 전주 공설운동장 정문을 통과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나는 해냈다!!!! 소위 인간의 한계라고 하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2003년 4월 13일 전구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이 감격은 마라톤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그런거 였다. 아침 여섯시쯤 일어나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풀고 전날 사다놓은 인절미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에 밥이나 해장국 등을 먹으면 달리는 도중 계속 신트림이 나와 괴롭다. 차를 몰고 군산 경기장으로 갔다. 길 양편에 꽃박스로 치장을 해놨는데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날씨는 맑았지만 약간 더워서 걱정이 됐다. 기다리는 동안 굉장히 초조했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모두가 베테랑 같아서 더 초조했다. 나 혼자 낙오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잠시 후 준비 운동을 하고 출발을 알리는 대포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먹어도 발걸음이 자꾸 빨라졌다. 25km 지점을 통과하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만 뛰고 싶은데 지금까지 온 거리가 아까웠다. 내가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불안해
배움의 실천으로 늘 쾌활하며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앉을때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해… 붉은 장미가 초록잎사이로 화사한 얼굴을 내미는 향그러운 오월이 되면, 백화점과 쇼핑몰에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주위의 친구나 동기들을 보면 어버이날 즈음이 분주한데, 나는 스승의 날에 더욱 바빠진다. 부모님은 네분이 계시지만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 싶은 나의 선생님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요즘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카네이션을 한아름 안겨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을 맡으셨던 분은, 몇해 전 퇴직을 하시고 부산근교에서 자연을 벗삼아 지내고 계신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같은 동네 같은 곳에 사신다.최근 옛집을 헐어 아담한 집을 새로 지으셨다. 일년에 한 두번 시간을 내어 그 작고 정겨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마을이름이 새겨진 입석에서 선생님의 잔잔한 미소와 나즈막한 음성을 느낀다. 바쁜데 뭐하러 예까지 왔냐고,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하시며 반갑게 맞아
음악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각자의 음악을 표현하려 노력하는그런 모습들이 더 아름답다 지난 5월 16일 벌써 세번째 정기공연이 열렸다. 개원을 하면서 시작한 음악서클이 어느덧 세월의 껍질이 7겹이 돼간다.내가 하는 음악모임의 이름은 ‘Kitsches"라고 하는데, 각 멤버들의 직업은 개원중인 치과의사와 이비인후과 원장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그룹이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말중에 “프로라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진정한 삶에 의미에 대한 그만큼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말이지만, 우리가 음악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조금은 모자라지만 각자의 음악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모습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요즘주위의 돌아가는 세상모습과 정치인들을 보면서 본인 자신들의 입장이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대처하는 모습들에서 한숨이 나올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도 공감하듯이 우리나라사람 대다수가 직업사슬의 최고상위 단계가 정치인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의 자격이 기존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의원자격을 우선순위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신분자체가 프로정신을 가져야할 입장이
애들따라 인라인도 배워보며아직은 젊다 자위해보지만역시 허전하다…더 늦기전에 어릴적에 빨강머리 앤을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그리고 좀 더 세심한 아이었다면 앤이 길버트와 화해하는 ‘길모퉁이"를 기억할테고.빨강머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앤을 이해 못하는 남자들 전용의 무딘 신경을 가진 길버트는 단지 관심을 끌고자 한 ‘홍당무"란 한마디가 몇해를 그녀와 적대관계로 지내게 할 줄은 꿈도 못 꿨으리라. 그리고 몇 해 후, 그 아이들이 성인이 돼가는 어느날 비로소 마음을 여는 길모퉁이가 묘사된다.그 책을 읽었던 초등학교 3학년 쯤엔 그 길모퉁이를 난 단지 집에서 좀 떨어진 골목길 어귀려니 했었다. 그런데. . . . 혹시 아시는지.빨강머리 앤이 500페이지 정도 분량의 10권짜리 책이라는 걸.루시모드 몽고메리가 30살인 1904년 봄에 쓰기 시작해 65세인 1939년까지 자그마치 35년에 걸쳐 쓴 책인데 17개 언어로 옮겨져 그토록 전세계에 팔려 나가고 영화·연극·뮤지컬·발레 로도 공연된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2002년 1월 1일에 겨우 완역돼 발간됐다는 걸. 그래서 우리들이 어린시절에
가끔이라도 눈물 지으며감동이란걸 느끼게 해주는세월의 고마움에…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내몸과 내동생 낳아주시고 사랑과 수고로 길러주시네!" 초등학교때 고무줄 선수였던 나. 어둑어둑 해져가는 운동장에서 넘어가는 해를 안타까워하며 수도 없이 부르며 넘었던 고무줄 노래다. 의미도 모르면서 목청높여 불렀다. 먼지뽀얀 얼굴에 땀으로 줄그어가며. 50줄 시작에 또 봄을 맞았다. 어느새 내게도 와버린 세월의 무게. 뭘로 보여줄까? 한심하고 슬픈거부터.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본 거울속의 잔주름 가득한 얼굴과 흰머리. 왕년에 가뿐하게 달렸던 42.195km, 반도 못뛰어 헥헥댐. 기본만 했는데 땀으로 범벅된 도복(검도를 하고 있는데, 1시간 운동에서 겨우 10분). 9시 뉴스 다못보고 TV앞에서 꾸벅꾸벅 좀(내가 이럴줄은...) 환자가 15명만 넘어가면 아파오는 고개나 부얘지는 눈. 아이들에게 원성듣는 점점 커지는 말소리. 세상사 무심. 사소함에 목숨걸고 짜증내고 자주 삐짐. 여기저기 삐져나오는 나이살(?)들. 노안이 뭔지 몰랐던 시절(별로 오래 전이 아닌데 옛날 같다)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으며 밝은 세상을 본다는 남편을 비웃었고, 화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