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일에 얽매여헤어나지 못하는게 아닐까3일정도 친구들과 눈 딱 감고 놀아보고 싶다 K형! 어느새 가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바리코트 깃도 세우고 길 위에 떨어진 낙엽도 몇 잎 주워 옷에도 붙여 보고 얼굴 가득 우수도 찍어 바르고 온몸에는 파스텔 톤의 코스모스로 꽃단장도 해보는 허무와 허전과 쓸쓸함이 낭만과 더불어 뒤섞여 있는 그런 계절입니다. K형! 눈이 시리도록 파란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람 사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하고 회의에 빠졌습니다. 순간 간단한 답하나가 둔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결국 산다는 것이 고작 벌고 먹고 쓰고 싸는(배설)일의 단세포적인 그런 일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먹는 일을 쓰는 일에서 따로 떼어 놓은 것은 먹는 일이 생존과 직결되기에 특별우대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해 버는 일과 그것을 쓰면서 즐기는 일 사이의 비율은 어느 정도가 합당할까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워졌습니다. 그동안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열심히만 살아온 것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즐겁고 유쾌한 일이 무엇인가도 궁금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버는 일이 너무 버거워
박명애 -84년 경희치대 졸 -현)중랑구 성누가치과의원 원장
박명애 作 - 84년 경희치대 졸 - 현) 중랑구 성누가치과의원 원장
사시사철 주문메뉴는프림 뺀 냉커피이고특별한 경우 아니면 꼭 참석 다방 개근상7년 전 필자가 이 곳 숯뱅이 마을(대전시 서구 탄방동)에 개업할 때만 해도, 우리 집(치과) 주변에는 치과가 둘 뿐이었다. 대전에서 가장 큰 두 신작로 중에서 계룡로라는 큰 길가이기는 하지만 뒤 쪽으로는 약간의 전자상가와 몇몇 음식점들, 그리고 지은 지 오래 된 작은 주공아파트단지가 있고, 앞 쪽 길 건너로는 술집들과 여관촌 밖에 없어서 잘되는(?) 치과가 들어서기에는 조건이 아주 좋지 않았다. 고향이 대전이 아니라서 지리에 어두웠고, 그저 대로변에 잘 보이는 위치라는 것만을 기준으로 떡하니 개업을 해버리고는 처음 나간 대학 동문회에서 많이도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선배들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어찌 그리 엄한데다 자리를 잡았냐고…. 그래서, 주변에는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이 귀해서 대부분의 점심식사는 2~3명의 직원들과 함께 했었다. 그러던 몇 년 후, 길 건너에 백화점의 왕인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약간(아주 조금) 활성화되고 점심밥 같이 먹을 동네 동료들이 드디어 생기게 됐다. 주변에 치과의원이 5개가 더 늘었고, 서청회(대전지역 서울치대 청년동문회의 약
세상을 살아가며내 앞길이 어떠한지얼마나 가야할지 알 수 있다면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지금의 나는 가난한 치과의사 . 이제 막 개업하고 친구, 선배, 교수님 등등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매일매일 최근의 어려운 경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이 때 시작한 우리에 대한 걱정을 듣고, 소심한(?) 성격에 불투명한 앞날이 걱정스러워 가끔은 버겁게 하루를 지내고 있다. 복잡한 머릿속도 정돈할 겸 이것저것 치우다 우연히 발견한 나만의 작은 여행 기록들.나는 지금 잠시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 그 때 그곳으로 가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승범이네를 나서며 기분이 좋았다. 한방에 묵었던 친구가 아침 일찍 하이랜드 투어를 떠나는 바람에 한 줄 더 얻어 온 김밥으로 신바람이 두 배가 됐다. 고즈넉한 로얄 보타닉 가든에 들러 흙냄새, 바람소리, 꽃향기도 좋았고 다시 찾은 로얄 마일의 독특한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었다. 홀리루드 궁전을 나서며 길게 한숨을 내쉬어 보았다. 이제 저 곳에 올라야지... 걷기를 죽기만큼 싫어하는 내게 조금은 무리인 듯한 곳이었지만 저 언덕 위에 가슴 탁 트이는 절경이 있다는데야 별다른 굼기가 없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한
박명애 -84년 경희치대 졸 -현)중랑구 성누가치과의원 원장
매복된 사랑니를 빼면서 갖혀있는 자들의 고통과 연민·사랑을 키워간다… 사랑니의 출옥 가둔 자는 갇힌 자의 마음속에 오래 오래 갇혀있다 붉은 창살 속에서 몸부림치던 이십 년사방에서 목을 조르고 팽창한 경동맥 위로퉁퉁 부은 얼굴누르면 누를수록 솟아 오르고 싶은 욕망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기다릴 때반가운 얼굴이 되어 돌아온다갖혀 있고 묶여 있는 이 몸둥아리내일 올지도 모를 님을 생각하며오늘도 소망으로 하루를 끌어 안는다. 아침에 들어오는 창살 위에 걸린 햇살흰 이마 위에 부딪는다.목이 꺾이고 몸이 찢기고두 다리가 저리도록흔들고픈젊음의 춤 많은 환자들이 사랑니로 고생하면서 치과에 내원한다. 환자에 따라 사랑니에 대한 애착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어떤이는 사랑니를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고, 어떤이는 멸종시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랑니의 치료도 치과의사에 따라 견해가 사뭇 다르다. 환자가 어리둥절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사랑니에 대해서도 어느 치과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느 치과에서는 빼는 것이 좋다고 했다면서 우리 치과에 와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나의 사랑니에 대한 철학을 알
박명애 作 ·84년 경희치대 졸·현)중랑구 성누가치과의원 원장 제1214호부터 ‘여백’란은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이오스 갤러리에서 열린 박명애 원장의 ‘다섯개의 창’ 사진전에 소개된 작품을 선택, 수회에 걸쳐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무언가 꽉 짜여진 틀완벽히 들어찬 것그런것들은 병적으로 싫어… 이 안 희·87년 전남치대 졸·현) 이안희치과의원 원장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창을 통해 눈부실 정도의 파아란 하늘에 깔끔하게 떠있는 하얀 구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 정말 예쁘다” 라는 탄성을 지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백”을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요.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잠시 들어 가다보니, 대부분의 저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여백이 관련돼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들고 무슨 대단한 답이나 열쇠라도 발견한 기분이 됐습니다. 우선 저는 여백이 많이 있는 그림을 좋아 합니다. 제가 만일 화가가 됐다면, 아마도 제 캔버스의 3분의 2이상은 늘 그저 여백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에 넣을 그럴듯한 그림을 구상하느라 머리를 쥐어 짰을 겁니다. 빡빡하게 들어차 있는 그림보다는 헐렁하게 들어차서 가다가 시선이 한 두군데 쯤에서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좋습니다. 하얗게 남겨진 부분이 많아 보는 이가 부득이 상상으로 채워 내야하는 그런 그림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한마디의 글을 올리더라도 앞뒤로 엔터키를 사정없이 쳐서 여백을 주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스케줄
지금도 기억이 생생예과 2학년 첫 수업시간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어언 세월, 우리나이 50대 후반, 치과계에 30년 그리고 입학과 더불어 40년, 이제는 히끗히끗 머리가 약간씩 빠지고 슬쩍 나온 배에 둥굴둥굴한 턱, 거의 외모 평준화된 모습들이지만 어디서라도 만나면 왜그리 반갑고 사랑스럽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여학생이라고 뭐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6년간을 한 교실에 묶어둔 가족 같은 유대감을 주는 것도 같고요, 개업가 전장에서의 동지애 그건 것도 있을거 같아요…. 우리 여학생들은 “여자가 시집이나 잘가서 편히 살 것이지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고!”하는 소리를 기본으로 들어야 하는 풍토에서 눈치 공부하던 불쌍하다면 정말 불쌍한 세대입니다. 그저 대우 받는다면 시험기간 노트 빌려 달랄 때 정도 미팅이나 한다치면 완전 찬밥신세, 음료수 판매나 시키고 정말 너무들 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나면 한없이 반갑기만 해요. 적어도 학부 시절에는 제가 가장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왜냐구요? 저는 목숨 걸고 치의예과에 전과를 해 온 사람이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저야 청운의 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 등교한 예과 2학
까다로운 환자에게 지쳐풀어지지않던 심장근육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작년 11월초 아내가 구입한 난초가 아파트 베란다에 놓여져 있었다난초는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내가 돌볼 것도 아니면서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하지만 소식도 없이 꽃을 피워 향기를 조용히 날릴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아주 가끔씩 느슨한 눈빛으로 홀로 앉아 있는 난초를 바라보았다. 올 여름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늦은 출근길을 서두르다가 무심코 바라 본 난초는 이미 정갈하고 소담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순간 향기로운 구름 한 점이 솜사탕처럼 입술을 달콤하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까다로운 환자에게 지쳐 풀어지지 않던 심장근육이 부드러워 졌으며 동시에 내 코를 즐겁게 해주는 난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조심스럽게 난초를 돌보았을 아내의 어깨를 스트레스를 풀 겸 세게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을 하려는데 아내는 난초에 감동한 똥그란 내 눈을 보며 자꾸만 웃는 것이었다. “여보, 난초가 조화라는 것을 몰랐어요”순간 나는 이게 정말 무슨 조화인지 몰라 멍해졌으며 머릿속에 곱게 저장됐던 난초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