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6-06-1$$$ 김을식(作) "80년 서울치대 졸 현) 서울 kids dental clinic 근무
아내 생일 까맣게 잊고 꽂도 선물도 준비못한 나 가출을 해야하는가… 시집을 펼쳐본다. 추녀는 하나도 없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절세미녀들 뿐이다. “과연 시인의 연인들은 다 이렇게 영롱한 아름다움을 갖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드리고 싶다. 나는 이 여인들이 무슨 미녀 콘테스트에서 예선에 조차 뽑혔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다. 시인이란 그 머리가 꼿꼿해서 사회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인간들이다. 돈, 명예, 권력에도 머리 숙이는 일이 없는, 타협을 모르는 종족인 이들이 유독 여인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만은 타협도 아닌 아부에 가까운 표현들을 남발한다. 나는 감히 이러한 류의 글들을 아부의 문학이라 칭한다. 시인들의 골은 영양가 없는 생각들로 꽉 차있어, 정작 필요한 일과 행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한다. 이 버릇이 어디 연인에게는 예외일까 보냐. 그래서 반성문을 가름하는 아부의 문학은 탄생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정열이 시키는 대로의 길로 가는 진정한 의미의 연서도 없는 것은 아니다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기는 뭐하지만 여러분들도 익히 잘 아는 노 시인님 댁의 찬장이나 또 세기의 이야기꾼으로써 존경을 받는 그 어떤
김광현 ’84년 경희대 졸 현) 대전 서대전 예치과 원장
전문가가 대접받는 사회 홍성우 현) 전북 익산 홍치과 원장 아직도 치과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을 생각하며, 또한 그야말로 성적이 좋아야만 치대에 입학할 수 있는 현실을 생각하며, 그리고 치과의사인 내자신을 돌아보며, 그리고 치과의사가 되도록 힘써주신 치과의사가 직업이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본주의의 좋은 점은 노동의 댓가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중에서도 매력적인 노동이란 자기 취미에 맞을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치과는 참으로 좋은 직업처럼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좋은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20년전에는 사랑니 발치를 대학병원으로 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단순발치도 효자였지만 사랑니 발치는 정말로 효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사랑니 한두개만 뽑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십년의 세월동안 많이도 변해서, 보험으로 인해 치료비는 형편없이 줄어들고 치과의사수는 급속도로 늘어나서 희소가치가 현저히 줄어든 지금, 사랑니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보내어지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보철이 보험이 되네안되네 하는 와중에서 교정만큼은 여전히 치과의사를 매력적인 직업으로 만
·"81 단국치대 졸업 ·제21회 대한민국 사진대전 우수상 ·김주식치과의원 원장
40이 되고 인생을 알아가면서 아버지의 삶에 지혜가 있음을 알 것 같다 호수를 지나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 강둑 길로 접어 들었다. 물 안개사이로 햇볕은 아직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자동차 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살 곁을 스친다. 라디오에서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다. 강가 주위로 하늘, 나무, 풀, 새들, 바람,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며칠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신 분이셨다. 손자 손녀가 재롱을 부리면 가끔 웃으셨지만 우시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아들 딸이 성적이 좋지않아 어머니가 야단을 치시면 조용히 계시다 “지금 아직은 어려서 그렇지 철이 들면 잘할거야” 라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셨다. 그러나 자녀들이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머니 보다 더 속으로 화가 나셨나 보다. 술을 드시고 오셔서 “너희들은 나처럼 되지 말아라”라고 한마디 하셨다. 일상처럼 치과에 출근하여 진료를 하였다. 몇 일간 진료를 하지 못해 환자들이 붐볐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잊혀졌다. 청각장애가 있는 듯한 아저씨가 위생사와 진료에 대해 상담을 한다. 위생사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들으시는지 옆에 있는 초등학교 아들과
·"69 서울치대 졸업 ·2001 유태영 작품전 (롯데갤러리) ·유태영 치과의원 원장
아홉 살 난 딸내미가 내 등뒤에서 낑낑거린다.“엄마 시원해요?”내가 어렸을 때 친정 어머니는 매일 목욕을 하셨고 나는 그 때마다 어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러 목욕탕으로 호출되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서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의 넓은 등을 낑낑거리며 때수건으로 밀면서 “엄마 이제 시원해요?” 자꾸 물어보곤 했다. “이제 그만 닦으면 안 되요?” 하는 완곡한 표현이었겠지...어머니는 내가 등 밀어 드리는 것이 늘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노하우로 내가 등을 밀면 다들 시원해한다. 10~20년쯤 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면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돌려가며 등을 밀곤 했다.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 사람을 찍어서 나중에 저 사람과 등을 밀어야지... 하고 정해서 때를 엿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떡대같은 아주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찍혀서 내 등의 3배는 되어 보이는 그 넓은 등을 밑지는 심정으로 닦고 나서 내 차례에는 그 아주머니의 강력한 힘에 부풀어오르는 등의 아픔을 이를 악물고(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참았던 적도 있고... 그 때는 목욕하러 가면 등 미는 게 무슨 필수과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국민이 다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등 밀어달라
김영은(作) 2000년 신흥대 치과기공과 졸업 현재 : 신흥치과 치기공사
안개비, 철축쫓 어우러진 산행길서 싱그런 봄기운 만끽 금년 봄엔 유난히 비가 왔다. 이맘땐 황사현상으로 가슴이 갑갑했었다. 그럴때는 한낮에 도시가 컴컴해 질때도 있었는데 올해에는 세상이 밝고 깨끗하게 보여서 기분이 좋다. 한바탕 이라크 전쟁 때문에 전세계가 시끄럽더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종전이 되어 다행일 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하는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지니까 요즘엔 산다는 것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오늘은 산악회 정기 산행일이다. 항상 오를때마다 가슴 벅차다는 북한산 산행이다. 아침에는 빗줄기가 굵더니 북한산성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쯤 안개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비옷을 입지 않고 걸어도 옷이 젖지 않을 정도의 雲霧(운무)였다. 나무의 연초록 새잎, 철죽꽃, 봄바람과 안개가 어울려서 오히려 싱그러운 봄기운이 좋았다. 산악 마라톤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내 마라톤도 이젠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아직 산악 마라톤은 붐비지는 않았다 선수들은 가끔 한두명씩 산행객 사이를 힘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조그만 배낭에 흙 호주머니와 물통이 넣고서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데... 산비탈을 뛰어야 하는지? 꼭 시합을 해야 하는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오르다 보니 북한산의
유태영 ‘69 서울치대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