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치과에서는 종종 금연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릅니다. 스케일링이나 치주치료를 하러 오신 경우는 물론이고, 임플란트 시술이 예정돼 있는 환자분들에게도 금연은 중요한 상담 키워드입니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담뱃값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이 기회에 금연을 결심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치과 환자분들의 금연에 대한 관심도는 예전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상첨화로 지난달 25일(2월 25일) 부터는 금연 치료와 금연 상담이 건강보험 지원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금연 캠페인(치과의사가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 금연 상담료가 작기 때문에 병원의 수익보다는 환자에게 재능기부를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흡연자들과 담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저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금연을 결심하는 흡연자들은 본인이 담배를 끊고 나서 금단증상을 못 견뎌서 다시 피게 될 것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예상하고 심지어 내심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분명 의지를 갖추고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하지만, 다른 금연자들이 실패했듯이 끔찍하고 파괴적인 금단증상 앞에서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 섞
율동 공원을 산책 한지는 3년이 되었다. 가끔 만나는 父子가 있다. 어머니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나이 50대 전 후로 그다지 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다. 그저 키가 좀 크고 얼굴은 걱정스러운 듯 하면서도 행복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러나 왠지 눈초리만은 정감이 갔다. 여느 평범한 우리 아버지와 같은 갈색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아들 때문이리라. 아들은 고등학교 갈 나이쯤 되었다. 그런데 왜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할까? 아들은 여느 아들처럼 피부가 곱고 귀여운 얼굴이다.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반듯하지가 않다. 걷는 것도 비틀거린다. 말을 할 때면 얼굴 양쪽이 불균형하게 일그러진다. 손도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다. 부자연스럽다. 아마 뇌성마비 초기 아니면 약간의 정신지체이리라. 아니면 자폐이거나. 가만히 있으면 너무나 귀엽다. 그러나 움직임을 보면 균형이 없는 것이 정상범주에서는 벗어난다. 내가 처음 그 부자를 보았을 때의 마음은 어떠했던가? 이런 아들을 가지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절망했을 것이 틀림없다며 섣부른 판단을 하고 그 아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에서 연극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기념으로 같이 무대에 섰던 친구들과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배터지게 먹었고 담임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저녁 값을 계산하자 동전이 서넛 남았다. 대장격인 녀석이 “줍는 사람이 임자!” 하고 동전을 허공으로 던진 바로 그 순간, 치과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백 원, 그게 뭐라고 땅에 구르던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탐욕의 ‘발’은 이성의 끈을 잡기 전 먼저 뻗어 나갔고, 그에 걸려 친구 현정이가 넘어졌다. 그런데 아뿔싸! 울음을 터트리며 일어난 친구의 왼쪽 앞니가 반쯤 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영구치라 하니, 평생을 친구가 저리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오금이 저려왔다. ‘경찰서를 가야하는건가.’ ‘피해보상금도 줘야할텐데 부모님이 날 가만두실까.’ 어린마음에 친구 옆에서 한참을 같이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여자아이 인생 책임져야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선생님들께 들으며 동전을 던진 친구와 함께 방과 후 한 달간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는 벌을 받았다. 반성문을 써서 부러진 치아가 다시 붙을 수 있다면 천장만장이라도 쓰고 싶었다. 며칠 후, 열과 성을 다해 쓴 반성문에 하늘이 감동하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국가 경제 성장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이자 청년으로서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 주위에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돈 걱정, 결혼 걱정, 노후 걱정 등등 걱정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현재 나는 단지 미래가 보장되는 치과대학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근에 치과계도 사정이 예전 같지 않고 많이 힘들어졌다고 해서 동기, 선·후배들과 진로걱정을 하긴 하지만 주위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배부른 놈이 신세 한탄하는 꼴인가 싶어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다. 치과대학 원내생을 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2년을 더 공부해야 치과의사 면허를 딸 수 있는 국가고시를 치를 수 있다. 치과의사 면허가 나오면 소위 말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치과의사도 이제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학벌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성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채용시
오랜만에 연구실을 정리하다 옛날 그것도 아주 오래된 대학시절 수첩을 발견했다.여자들의 청소가 그렇듯 한 가지 관심거리를 만나면 다른 일들을 옆으로 밀어 두고 그 일에 몰두 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청소가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 수첩하나가 35년 전 커트 머리에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던 청바지 소녀의 일상 속 여행으로 인도하였다. 수첩에는 주말 진료봉사, 책읽기, 과제물 그리고 다방에서 어느 누구를 기다리며 디제이 옵~~~빠가 읽어 주던 글귀…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이 꽤나 상세히 그리고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혼자 픽하고 웃어 본다. 어떤 일들은 아직도 기억에 있고, 어떤 글귀는 오글거리기 까지 한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속성으로 남아 있는 것은 새해가 되면 수첩을 준비하고 새해에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그리고 지난해 수첩에서 꼭 기억해야 할 날들을 옮겨 적고 그리고 지난 수첩은 보관하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해야 한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수첩에 한해 계획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첫날이나 처음에 의미를 두는 이런 습관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책을 사도 머리글과 서평을 읽어야 본문으로 들어 갈수 있다. 머리글은
항아리 안에 내용물이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봐야 알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항아리를 열어본다. 첫 번째 항아리를 열었다. 치과위생사가 됐다. ‘지역사회의 구강건강을 증진 시키자’라는 일념으로 졸업하고 취업했는데 사람들은 치과위생사를 모른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치과간호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다. 생각보다 빨리 느껴버린 정체성 그냥 간호과 갔어야 했나…할 때 환자분이 스케일링 받고 너무 잘 한다고 칭찬해줄 때, 헤벌쭉 웃는다. 그랬더니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라고 바로 말을 바꾼다. 환자분들 때문에 울고 웃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두 번째 항아리를 열었다. 초등학교 때 꿈이 선생님이었다. 잠시 잃어버렸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덴탈위키”라는 곳에서 강사과정을 수료 후 치과강사 길에 입문했다. 처음 의뢰 들어온 1시간 강의가 생각난다. 그 설렘, 떨림, 하지만 정작 강의는 달달달 떨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정신이 아찔했던 강의였다. 기차 타고 내려오는데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죄송하고, 수강생에게 이렇게 밖에 강의 못했던 자신이 실망스러워 눈물을 겨우 참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강의 잘했어? 엄마는 딸이 자랑스러워
세계 3대 문호에 셰익스피어, 톨스토이와 위고(Victor Hugo)를 꼽는다면 별 이론이 없을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대세로 굳어진 뮤지컬 장르에서는, 4대 뮤지컬의 하나인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등 위고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망명생활 중 60세에 출판한 소설 레미제라블은 두 세대가 넘는 세월에 방대한 철학과 사회비판을 담고 있어,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하여 한참 떠오르는 젊은 예술인들의 리더이던 29세 청년 위고의 노트르담은, 보다 열정적이며 드라마틱하다. 거리에서 춤추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아무런 죄도 없이 죽음을 당하고, 성당의 종치기 곱추 콰지모도가 따라 죽는다는 사회 최하층민의 ‘숙명’에 얽힌 비극이다. 그러나 위고의 집필 의도는 당시 파리시민들이 유서 깊은 고딕 건축물들을 마구 훼손하고 현대적인(?) 재건축에 몰두하던 부박(浮薄)한 풍조에 경종을 울려,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데 있었다고 한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이지만, 15세기 “대성당의 시대”와 “지리학적 발견” 같은 인류문화의 대 변혁기에 대한 통찰 등, 박식한 전인(全人)적 천재가 시민을 가르친다는 계몽적인 자세가 엿보이고, 이는 훗날 레미제
우리와 닮은 이집트, 아비도스를 향해 가는길…“아쌀라무 알레이쿰!”… 2011년 이집트 혁명이 있기 전, 카이로대학 그랜드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과 서방의 화해를 강조하는 역사적 연설에 앞서 ‘앗살람 알레이쿰’ 하고 인사하자 3000여명의 청중은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아랍어로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보통 인사말이다. 누군가 인사해온다면 그냥 똑같이 ‘알레이쿰 살람’ 하면 된다. 본래 뜻은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이고 화답은 “당신에게도 평화가” 이다. 사실 무슬림들 간에 사용하는 인사라고 하지만, 어느나라나 그렇듯… 여행자가 현지어로 인사하는 것에는 대게 환한 미소가 따르기 마련, 당신 무슬림이냐고 따져 묻거나 난 기독교인이라고 정색하지 않는다. 이제 이집트 여행이야기를 하려하지만… 앞서 이것은 얘기하고 싶다. 서방식 사고와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대체로 무지하며, 때로 무례하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종교나 정치가 아닌 문화와 풍속,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서양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한다면… 그의 몇 배 몇 십배 정도의 무지라고 해두고 싶다.여행이야기에 굳이 이 이야기를 보
요즘 좀 번화한 동네다 싶으면 90년대의 노래들이 길가에 넘쳐난다.‘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내~친구도 믿었기에~~ ♬♩♩~~♪~~’얼마 전 모 프로그램에서 90년대를 회상하며 유행했던 노래의 가수들과 함께 콘서트 비슷한 것을 했던지라….잘 알지도 못하던 요즘 세대들도 90년대의 음악에 흠뻑 취해들 있다. 나도 대세에 따라 차에서 항상 듣고 다니는 음악을 모조~리 90년대 음악으로?음, 좋은데? 꼭 90년대 나이트클럽에 있는 기분이랄까?기분이 좋으니까 흥에 겨워 먼 길도 신나는 노래 흥얼거리며 슝?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다. 꼭 어릴 적 그 때 같다. 그런데, 머릿속은 90년대를 달리고 있는데, 몸은 90년대를 달리기엔 너무 많이 와 있는 듯.이미 마흔을 넘은 나이에 날로 불어가는 살들과 점점 떨어지는 체력까지, 에구구.‘나 돌아갈래~~~~~~~’한때 신촌과 이대, 홍대 일대를 주름잡던 몸이었는데 어느덧...“홍대에서 보자~~”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도…. “뭔 홍대~~ 거기 갔다가 애들한테 치인다~~”에구구, 왜 이렇게 된 건지.친구들은 어릴 적 그립다며 클럽에 가자, 한번 찐~하게 뭉치자는 둥 얘기들을 하지만 고리타분하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휴대폰 문자가 오면 불안합니다. 십중팔구는 부고 알림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부모상을 주로 알려주더니, 요즘 들어서는 본인 상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낮에 오는 문자 중에서는 친구들 자식 결혼식 청첩도 이제 자주 보입니다. 원치는 않았지만, 아버지 세대는 물러가고 우리들의 세대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 중에서는 유쾌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이기 보다는 엄한 아버지 상이 요구되던,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우리는 스스로 컸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귀가하시기 전까지는 잠이 들어서도 안 되고, 아버지가 숟가락을 드시기 전까지는 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 속에서 아버지는 가장 든든하고 존경하는 대상이었습니다.아이 셋을 키우면서 여행도 같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학원도 데려다 주며 친한 척했지만, 이제 다 성장한 아이들은 퇴근한 나를 보고 데면데면 대합니다.내가 식탁에 앉기도 전에 먼저 식사를 하고 바쁘다며 일어섭니다. 긴한 일로 문자를 보냈지만, 수신확인만 하고 답장은 없습니다. 세월이 더 흐른 뒤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아빠로 기억될까요?족보를 펼쳐봅니다. 족보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보입니다.
바다거북은 바닷가에서 일정간격 떨어진 백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아 백사장의 지열로 알을 부화시킨다. 알에서 부화된 아기거북이는 바닷물과 가장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조 시간에 알에서 부화되어 바닷물을 향하여 사력을 다하여 돌진한다. 거북이로써는 일생 가장 빠른 달리기며, 단 한번 밖에 없는 달리기다. 이 순간이 포식자 갈매기들에게는 성찬의 시간이다. 갈매기의 날카로운 먹이 공격을 피해 달리는, 건강하고 우수한 아기거북이만 살아 남고, 대부분인 나머지는 갈매기 밥이 된다. 그리고 일단 바닷물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도 자기의 유전인자를 물려줄 어른거북이 될 때까지, 끊임없는 생존경쟁을 하여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바다거북 뿐 아니다. 명태 한 마리가 낳은 80000개의 명태 알이 수정되어 부화되어도 거북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부화 직후 다른 고기의 밥이 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적합한 자만이 생존하는)의 이 자연계에서 거북이나 명태 경우처럼 약한 개체는 성장과정에서 먹이 사슬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강자의 밥이 되어 자신의 유전인자를 후손에 남길 수 없다. 생물의 진화는 이와같이 먹이사슬을 통과한 강자들만의 생존과 번식으로 수억년 간, 대를 거듭하여 선별 유전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