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커튼을 접으면 백악산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자하문 가까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보현봉도 보일 정도였다.빌딩이 들어서면서 시야가 좁아져 청와대와 백악산만 보인다.풍설(風雪)이 가고 화창하다가 녹음이 짙어지는 백악산은 소년시절부터 오르고 싶던 산이다. 백악산 자락인 삼청동과 청운동에서 살던 때도 막혀서 오르지 못했던 산이다.청명(淸明)한 가을 날 2014년 9월 20년, 드디어 백악에 올랐다.백악산 접근 시작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왜 그렇게 좋았는지.중학교 1955~1957때, 반 친구들과 혜화동 교정을 나와 창경궁 - 원남동궁남동으로 바꿔야. - 비원 앞 - 안국동 - 광화문 - 경복궁 영추문 - 효자동 전차종점당시는 원효로 - 서울역 - 광화문 - 효자동, 현 청와대 입구까지 지상 전차가 다녔다 - 경무대옆현 청와대 - 자하문 - 세검정 골짜기까지 원정하였다. 우리들은 집이 전부 돈암동과 안암동이어서 세검정 골짜기까지 내려가는 일은 드물었다. 왜냐하면 귀가하는 길이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우리는 전차표나 버스표 살돈으로 능금과 자두를 먹으러 자하문으로 갔다. 자하문 고개에 막 올라 오른 쪽으로 조금만 가면 자연스러운 비탈에 과수원이 전개되었다.능금과 자두
지난 11월 초, 휴대폰 판매 대리점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른바 ‘아이폰 6 대란’, ‘아식스 대란’ 이다. 이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하 단통법) 시행 1달여 만에 통신사 대리 업체들이 ‘보조금’이 아닌 ‘페이백’이라는 일종의 편법을 이용한 아이폰 6의 저가 공급 때문이었는데, 결국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하였고 계약자들의 계약이 취소되는 촌극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은 바로 말 많고 탈 많은 ‘단통법’ 때문인데, 정부가 가지는 진의 파악은 음모론의 범주일 수 있으므로 차치하더라도 이 법령의 시행에는 유통구조의 개선이 표면적 주목적이 되고 있음은 분명히 파악된다. 바로 할인율이 중구난방인 상황에서 정가 - 정당한 가격일지, 정직한 가격일지, 정말 그 가격이 맞아? 인지 그 의미가 불분명한 - 에 대한 욕구, 나 혼자만 ‘호갱’(호구고객)이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찝찝함이 반영된 법률이 아닐까 한다.최근 인상된 담뱃값처럼 정부에서 올리면 올리는 데로 이의제기를 하지도 못하는 정가 - 이때의 정가는 정해주는 대로의 가격이 아닐까 - 가 있는 반면 대부분의 상품 가격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배웁니다.검정 사인펜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을매일같이 채널을 켜면, 오늘의 비극이 들려온다.그것은 누군가 ‘죽었거나’, 혹은 누가 ‘살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오늘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폭탄테러로 4명이 숨지고…”에서짧게 채널을 돌리고“그런데 박명수 씨는 무슨생각으로 치킨집을 차렸던…”에서폭소한다.-75세 할머니. 자택에서 숨진 채 4일 만에 발견- 이라는 뉴스에서손가락을 돌려 다른 창을 넘기고-여배우 A양. 시상식에서 섹시미 화끈- 이라는 뉴스에서손가락을 눌러 클릭한다.언제나 새로운 채널. 새로운 창으로 마우스의 한 클릭과, 스마트 폰의 한 손짓으로 변하는 세상.그 짧은 순간에비극이 희극이 되고희극은 비극이 된다.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비극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서민들이 불을 지르고, 함성을 지르고 울음을 터트리는 동안오직 경찰들만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때,배우들은 오직 멋쩍은 웃음과, 드레스와, 스크린쿼터로온갖 카메라와 함성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이런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무엇이 비극이며, 무엇이 희극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한 클릭과 손짓으로 변화하는 세상과, 그 사람들 속에서아이들은 더 이상극이 비극인
늘 저만치 성큼성큼 앞서가는 바람에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따라가지 않으면 뒤를 놓치고는 했다. 따라가려고 따라가려고 해도 어린 걸음으로는 좇아갈 수가 없어, 반쯤 울상이 되어 그 등만 좇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빠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 무리였다. 앞서가는 아빠와 좇아가는 엄마와 언니와 나.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내 키가 아빠만큼이나 커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아빠 옆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남자 보폭인지라, 여전히 내 발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등만 바라보며 뒤따르는 일은 없었다.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바라본 길은, 아니 아빠의 세계는 뒤따르며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엄마도 언니도 보지 못한 새로운 길, 새로 생긴 가게며, 새로 피어난 꽃들을 가장 먼저 보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럴때면 들떠서 재잘거리기에 바빴고, 때로는 뒤따라오는 엄마에게 달려가 앞에 어떤 새로운 가게가 생겼는지, 얼마나 화사한 꽃들이 피어있는지 얘기 해주고는 했다.물론,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적도 있었다. 두 갈래길, 세 갈래길, 또는 모르는 길이 나올 때면 엄
스웨덴 칼란데르스카 병원 수술실에서 페르 잉그바르 브로네마르크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신을 보는 듯 했습니다. 저는 숨이 막히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수술 장면을 보고 저술하신 ‘Tissue integrated prostheses’ 책을 읽으면서 성경책을 보는 듯 했습니다. 무치악 임플란트 특수 시술법을 배우려고 1972년부터 1985년까지 13년간 세계를 돌아 다녔어도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Osseointegrated implant 시술법과 보철과정은 저에게는 예수님의 기적과 같이 보였습니다.1970년까지만 해도 모든 학자들은 이물질의 생체 골유착을 부정하던 시기였습니다. 스스로 implantologist라고 하던 치과의사들은 자연치아의 인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섬유유착의 이론을 주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우리는 섬유조직 유착의 미로를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당대의 실상을 뛰어넘는 임상적 성공의 세계를 여셨습니다. 주의 깊은 수술방식으로 titanium이 뼈에 붙는 내용을 관측해낸 결과는 치의학의 기초 임상 모든 부분에 혁명을 일으키셨습니다.1985년 북한치과의사들이 찾아와 교육을 받고 남한보다
‘요즘 치과의사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심각한 경쟁 속에서 도덕심과 자존심의 추락도 감수하는 치과의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듣고 있자면 우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나는 어떤 치과의사가 되어야 할까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지난 겨울 치의신보 지면을 통해 보았던 수련과정에 있는 선생님의 글입니다. 이 글은 저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떤 치과의사가 되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시작한 주제넘은 강의를 할 때마다 고민하는 치과의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까 고민하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1990년에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수많은 선후배 동료 치과의사들이 글과 말을 통해 제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에 어느새 이십년을 넘게 해온 개원의 경험에서 정리된 생각들을 조금 더하여 고민하는 후배님들에게 전해드려 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지나온 한 해를 뒤돌아보며 제가 해온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할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청주시치과의사회 송년회 인사말에서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일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환
요즘 시중에는 꿈에 대한 서적이나 자기계발서가 다양하게 나와 있다. 나는 삶이 게을러지거나 무료하고 무언가 자극이 필요할 때 나를 다독이고 채찍질 해줄 수 있는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읽어보곤 한다. 자기계발서들을 읽을 때는 “그래~ 이거야~” 하면서 나를 다잡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게을러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반복적인 일상에 나를 깨워줄 만한 것도 이만한 것이 없다. 많은 책들 중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연금술사이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연금술사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끌리지 않는 책 제목에 과학관련 도서인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친구가 읽어보고 재밌다는 한마디에 바로 이 책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연금술사에는 산티아고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양치기인 산티아고는 매일 자신이 피라미드에 가서 보물을 찾게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을 계기로 산티아고는 연금술사가 말한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도 가고 이집트도 가게 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비가 있지만 결국은 자아를 이루고 보물도 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 산티아고는 꿈을 꾸고 있고 하루하루 꿈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면 동물들도 냄새로 영역 표시를 하고 다른 동물의 침입을 경계한다. 남지나해의 대부분은 이미 중국이 영역표시를 더욱 확대 해둔 상태다. 그리고 외교적 다툼을 하고 있다. 지금 G-2에 오른 중국은 G-1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기위해서는 태평양을 뚫고 지나가야하는데 미국과 일본에 의해 그 길이 막혀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더불어 이를 막으려 하는데 정서상 한국과 일본은 공조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요즘 미국은 한국을 못 마땅해 하고 있다. 한국은 지형학적인 문제로 한손은 미국을 다른 한손으로는 중국을 잡고 고민하고 있다. 옛날 강태공이 낚시를 한 것은 고기잡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런 국가적인 문제에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한번쯤 해 보아야 할 시기 인 것 같다. 올해는 일본이 1895년 대한제국의 국권찬탈에 방해되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의 해이다. 작년 홋카이도에서 개최된 아시아 임플란트학회때 삿보로 맥주공장 대형홀에서 기념만찬을 갖게 됐다. 구 공장 벽에는 1905년에 준공되었다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 그 해라면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을사조약이 맺어진 해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우리는 막걸리도 마시기 어려웠던
한 달 후면 드디어 2015호를 탄 그대들이 이 행성에 도착하겠군요. 레이더에 그대들의 존재가 잡히기 시작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번잡 무미하던 이곳의 일상에 이내 잔잔한 흥분이 일기 시작하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친구들과 뛰놀던 동네, 떠날 때 염려와 격려의 손을 흔들어주던 부모님 얼굴, 또 우주선 안에서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 부대끼며 미운 정 고운 정 들어버린 동료들… 아마 지금쯤이면 한 달 후엔 그들과도 헤어진다는 시큰함이 마음에 부딪혀 올 겁니다. 생각보다 파동이 커요. 뭐랄까 전우애 같은 거니까요. 커피 한잔 마시다 문득 서로 눈이 마주치며 센치해 지는 순간들 하나하나 부디 기억하시길. 그 커피 향이 뜬금없이 불어 와서는 알 수 없는 힘을 주곤 합니다.호기심과 걱정들로 착륙 전 마지막 테스트 준비에 집중하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저항하느라 쏟는 마음의 에너지 때문에 배가되곤 하죠.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채로 품고 견디어냅시다. 담백하고 우아하게. 대신 긴 시간 전적인 몰두로 지쳤을 그대들을 위로 할 작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뭐, 곡강연에 비한다면야 한참 초라하지만, 어느덧 연례행사가 되
2014년이 다 지나간다. 오래 기다렸던 치과의사로서의 1년. 난 어떠했나? 그토록 꿈꾸던 행복이 왔는가. 아니면 아직도 행복을 기다리고 있는가. 과연 많은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도움이 된 적은 있었는가. 그 어느 질문에도 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인턴으로서 1년을 바쁘게 보내고,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레지던트로의 과정을 포기하였다. 더 이상 행복을 기약하기 싫었다. 대학교를 졸업 하면… 취업을 하면… 치전원 시험에 합격을 하면… 치과의사가 되면… 수많은 가정 속에서 나의 행복은 항상 미루어졌다. 치과의사로서 학문의 깊이를 높이는 과정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나의 삶의 방식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나의 자기소개서의 가장 첫줄을 차지해 온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자”라는 나의 좌우명은 항상 실천 없는 구호에 불과하였다. 지난 34년이란 시간은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었다. 자리가 잡히면 언젠가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 왔는데 34년동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이대로 계속 걸어가도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닌 앞에 주어진 길로만 계속 간다면, 또다시 3년 이후로 행복을
1. 올 봄이었던가. 낮에 한창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웬일인가 하여 진료 중간에 잠깐 짬을 내어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다짜고짜 “여보, 여자 치과의사라는데… 혹시 이름이 OOO인 분이 치과의사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요?”순간 책장을 흘낏 올려다보니 마침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명부’ 최신판이 보이기에 시간 날 때 확인해 주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특정 지역에 병원을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이기에 찾는 데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이리저리 뒤적거려서 결국은 그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는 무의식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아내 옛 고교 동창의 지인의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그 지인의 오빠가 결혼을 하였는데 상대여자(올케)가 W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라고 해서 부모님이 너무 흡족해 하셨다고 한다. 사실 지인네는 상당한 재력을 지닌 집안이었기에 치과의사 며느리만 들이면 당장이라도 좋은 자리에다 병원 하나쯤은 너끈히 차려줄 태세였다. 하지만 그 며느리는 결혼하고 나서도 치과를 차린다고 하기는 커녕 남의 치과에 취직할 생각조차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집안 친지들이 이상하게 생각다 못해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