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남자건 여자건 40대 진입을 코앞에 둔 지금이 심적으로 제일 심란하고 허무하다던데… 그러고 보니 6개월 남짓 남은 나의 30대! 난 나의 40대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찬란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23살부터 시작된 첫 사회생활. 병원생활과 편입, 대학원으로의 진학 등 나름 부지런한 20대를 보낸듯하다. ‘20대가 치열하지 않으면 30대는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닥치는 대로 열심히, 무언가에 대한 끈임 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20대에는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빠른 걸 좋아했었다. 여행을 간다 치면 당연히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이용했고, 출발 전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서 가장 빨리 목적지로 도착할 수 있는 방법, 주변의 맛 집이나 관광명소를 이미 컴퓨터상에서 여행 후 정작 그곳에 도착하면 인터넷의 정보와 동일한지를 비교하는 수준의 여행을 했었다. 운전은 또 어떤가. 빨간색의 정지신호를 기다리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곤 옆길로 돌아서 가곤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식집보다는 패스트푸드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을 자주 찾았고, 약속시간에 늦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실수는 두 번 반
어떤 글에서 김수영 시인이 “독서와 생활을 혼동하지 말라. 독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생활은 뚫고 나가는 것”이라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나는 최근 독서를 통해 최정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정환 씨는 1958년생의 척수장애인이었습니다(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살다가, 노력 끝에 1985년 다시 아버지를 찾았으나 또 한 번 거부를 당했고, 오히려 이 때문에 당시 생활보호대상자(지금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호적상의 아버지 때문에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것이지요. 그래서 최정환 씨는 노점을 통해 직접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다가 다리가 골절됩니다. 기존 척수장애와 교통사고로 인한 중증장애에 골절이 더해진 것이지요. 그래도 최정환 씨는 생계를 위해서는 노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속은 해가 갈수록 심해졌고, 어느 날 최정환 씨는 자신의 마지막 재산을 단속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을 찾으러 구청에 갔지만 항의는 무의미했고 돌아오는 것은 모멸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정환 씨는 분신을 택합니다. 1995년 3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한센병은 문둥병이라고 불리며 천형으로 여겨졌다. 한센병은 약물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지만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외양 탓에 한센인들은 차가운 사회적 시선과 차별속에서 외부와 고립된 정착촌을 형성하여 힘겨운 삶의 끈을 이어왔다. 구라봉사회는 1969년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의 치과의사와 치대생들이 이러한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있는 국립나병원에서 치과진료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구라봉사회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전국 각지의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 다니며, 의치와 구강질환 치료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한센인이 음식을 씹고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구라봉사회의 손길이 닿은 한센인이 2만6000여명, 만들어진 의치가 4000여개에 이르고 있다.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에서 맞는 나의 여름방학 첫날은 구라봉사회 하기진료 준비로 시작되었다. 구라봉사회의 활동은 치과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면서, 그 재능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나는 입학과 동시에 구라봉
3년 차 때 쯤으로 기억합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행복하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제가 치과위생사가 된 이유는 목표 없이 살아온 제 인생의 결과물 이었습니다.고 3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외동딸인 저는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치위생과가 무얼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취업률만 보고 입학했는데요, 그렇다 보니 대학생활이 너무 낯설고 재미없어 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대학생활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대로 치과위생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어렵지 않게 치과에 입사를 하게 되자 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자신과 제 일에 대해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좋은 대학에 편입하고 뭔가 다른 일을 해야 내 인생이 근사해지려나?성공하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직업이나 스펙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치과에 일하면서 방황하였는데요, 더 이상 목표 없이 살며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렇게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절실함으로 책에 매달렸습니다.책과 함께 제 인생에 대해 의논하며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노력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습니
요즘 우리 나라 맥주 맛에 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다양한 외국 맥주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우리나라 맥주의 맛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잘생긴 남자 공대 신입생이 공대 여대생과 눈이 맞았다가 여름방학동안 다른 과 여대생들을 접하고 나면 모든 과내커플이 깨지는 원리랑 비슷하다고 하면 과장일까요.맥주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상면발효의 에일(ale)과 하면발효의 라거(lager)라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맥주의 대부분은 라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상면발효의 에일은 19세기 하면발효방식의 라거가 탄생하기 전까지 생산되던 맥주들이며, 붉은 색을 띄는 종류가 많고 향긋함과 묵직함, 상대적으로 적은 탄산, 쓴맛과 부드러움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라거맥주의 장점은 무난하고 즐기기 쉬운 반면 개성이 적다는 것이고 에일 맥주는 그에 비해 더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쉬운 건 정말 맛있는 한국맥주를 만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시원함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 대세가 되다 보니 탄산의 양을 높이고 실제 맥주의 향이나 묵직한 바디감 같은 것들은 고려사항에서 제외된 지 오래인 것만 같
치과진료를 하며 10여 년 동안 글을 써오면서 내게 붙은 타이틀이 2개가 있다. 아동문학가와 추리작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동심에 가득 차야하는 아동문학가와 유혈이 낭자한 추리작가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내가 아슬아슬한 문학적 줄타기를 하면서 추리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는 셜록 홈즈 때문이다. 셜록 홈즈의 매력에 빠진 나는 홈즈 패스티시(다른 작품의 내용이나 스타일을 원작에 충실하게 모방하여 재창조한 작품을 말하는데 원작을 유머러스하게 변형시켜 모방하는 패러디와 비교가 된다.)작품을 지난 3년 동안 6편을 발표해왔다. 이 시리즈는 재미교포 사립탐정인 윌셔 홈즈가 국과수 자문위원 치과의사인 라 원장과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시리즈이다. 윌셔 홈즈는 셜록 홈즈의 추리 기법을 원용한다. 의뢰인의 입안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알아내는 라 원장은 윌셔 홈즈에 의해 라왓슨이란 이름이 붙여진다. 이 시리즈의 첫 단편 ‘노끈’은 KBS 라디오에서 ‘2012 여름 공포추리특선’으로 방송되었다. (지금도 KBS에서 다시 듣기로 무료청취가 가능하다. 바로 듣기 링크 - http://t.co/R1nadXWz ) 그런데 윌셔 홈
졸업을 앞 둔 마지막 학년으로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던 시간이 있었다. ‘지역사회치위생학Ⅱ’ 수업의 일환으로 금요일마다 관련 기관에 나가 지역사회주민들을 대상으로 구강보건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속한 조는 3주 동안 ‘원주 효 노인센터’를 가게 되었고 이곳은 약 30여명의 치매노인들이 등하교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기관으로 실습을 가기 전 자료 조사를 통해 현황분석을 하고 작성한 계획서를 발표 한 후 직접 기관에 투입했다.첫 실습 후 우리는 전략을 다시 세워야 했다. 어떤 것이든 항상 계획대로 되리란 법은 없지만 열심히 준비해 간 것에 비해 계획과 다른 실태로 교육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기관에 하루 종일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오후에 진행하는 기관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 하였는데 이 시간을 통해 새로운 교육 방법을 구성할 수 있었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보고 큰 도움을 받았다. 기존에 계획했던 매체사용을 자제하고 만담형식과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때문에 매 주 교육을 위해 조모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조원들과 회의를 통해 어떻게
지난호에 이어 계속가을가을은 벌써 왔는데 더위 먹은 후유증으로 내 감각체계가 그렇게 민감하지가 않다.늦은 매미가 잠시 울고 조용해 진 사이 공간이 한산하다.성깔 빠른 잎들은 벌써 헌신에 힘쓰고, 준비 중인 것들은 마른 냄새를 풍긴다. 긴 줄 알았는데 이젠 결실을 위한 충전이 필요한, 짧은 시간이 서둘러 필요하다.영원은 짧은 희열 후의 잔해들로 만들어진다.떨어짐(Fall)을 예견하는 건조한 냄새가 가을을 시작한다.팽창에서 유지 또는 축소로 몸집을 바꾼다.숲속에선 주고받는 것들만이 긴밀하게 살아가고 있다.가을엔 영적, 육적인 시-공간이 더 넓어진다.그리고 꼭 다음과 함께 가을의 전설은 흔적을 남긴다.가을을 탄다고요!세상의 모든 것들이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때쯤/심장이 메말라 낙엽처럼 가벼워 질 때쯤/황금들판이 시작되는 꼬옥 이맘때쯤/햇살이 빗겨 눈부신 오전 한가로운 때쯤/문득 반팔 사이로 새털같은 바람이 붙을 때쯤/있어도 옆엔 없고, 없어도 어딘가에 있는 그때쯤.가을은 여름에서부터 잉태되었다.낙엽은 계절이 한참 성숙되었음을 알린다.갈수록 짧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에 대한 상대성이론 때문이다.나무 사이가 점점 많이 보이는 것부터가 가을의 의미다.같은 시간 산책로가
지난호에 이어 계속여름특히 짧은 봄, 긴 여름으로 바뀌는 중엔 숨 가쁘게 꽉 차는 것이 여름, 숲이다.여름은 팽창이다.잎들도 진녹색으로 크기를 키우고 있다.숲이 잎으로 채워지자 길엔 그늘이 생겼다.바람이 없다면 숨은 잎들은 햇살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바람은 마에스트로, 잎들은 연주자들이다.분명한 질서 아래서 경쟁하는 숲엔, 새것과 먼저인 짙음이 다른 치밀함으로 위치한다.소나무의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이 자기들만의 영역을 철저하게 만들었다.흥건한 땀, 이 지독한 냄새가 숲에겐 미안하지만 땀이 난 만큼 생각은 시원하다.보약 먹은 사람처럼 비 온 다음 날 잎들이 탱탱, 탄탄, 생생, 싱싱해 보인다.여름 숲엔 인간을 좋아하는 벌레들로 꽉 차 있다.여름의 중간으로 가면서는 향보다도 소리가 숲을 만든다.소리들은 님을 향한 짝짓기의 신호탄이다.짝을 찾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숲에 가득하다.끈적이는 모든 것들이 새 생명을 만들어 낼 것만 같다.여름은 폭우처럼 급하게 흐른다.세찬 비가 바닥에 쌓인 작년 솔잎들을 바다로 보냈을 것이다. 여름엔 더위를 식힐 바람이 꼭 필요하다.깨끗하던 묘지에도 백거이나 관우의 묘처럼 잡풀들이 주인이다.수분섭취가 늘어나자 정상엔 아
삶은 계란 두 개, 제철 과일, 물 또는 인삼차를 동봉한다. 그리고 야산, 나지막한 산이라는 식탁에서 아침을 청한다. 그래서 나는 거부다. 식탁의 크기와 희귀성면에서. 주차장에서 정상까진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도착하지만 배낭을 메고 간다. 쑥스럽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진다. 소풍가듯 산책하는 아침! 바로 그린샤워 안식의 숲(Forest healing)에 안기는 것이다.삶 - 숲에서는숲에서는…어머니처럼 늘 받아주는 포근함이 있고, 전설처럼 바람이 많고, 성소에서처럼 사람들이 순해지고, 연인들처럼 작은 소리가 더 어울리고, 휴일처럼 숨쉬기가 더욱 편하고, 조미료 없는 음식처럼 소화가 잘되고, 휴가철처럼 게을러지고, 아버지 앞에서처럼 취기가 안 올라오고, 겨울처럼 빨리 해가 지고, 정글처럼 모기들의 천국이고, 신호등처럼 양보해야 질서가 생기고, 거울처럼 남보다 나를 더 가까이 보고, 천국처럼 수고해야만 배가 채워지고, 가족들처럼 너무 영리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훈련기간처럼 면회를 제한하고, 인생처럼 길을 숨기고, 창녀처럼 쉽게 잠자리를 내주고, 아이들처럼 잘 웃고, 공동구역처럼 경계가 덜 분명하고, 나이처럼 계절이 빨리 가고, 정든 식당처럼 무덤덤하게
“그린치과까지 가주세요. 흠 흠… 차에서 상큼한 향기가 풍겨나네요?”어제 아침 평상시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시간이 좀 늦어져 택시를 잡아 탔더니 말로는 ‘향기가 풍긴다’ 했지만 차안에 방향제를 얼마나 뿜어 놓았으면 어지러워 구토가 날 정도였다.“예, 차가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주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향수를 뿌렸습니다. 향기가 좋으시지요?”운전 기사는 그게 그리 자랑스러운지 아니면 간만에 손님을 태워서인지 연신 싱글 벙글이다.“네, 좋지요. 하지만 좀 강한 편이네요.” 사실 나는 얼굴에 로션도 냄새가 싫어 거의 바르지 않는다. 더구나 방향제 같은 그런 인공적인 향은 기관지에 자극을 받아 더욱 싫어한다. 자랑스런 방향제에 폐를 끼치기 싫어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달리는 중에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와 나는 결국 창문을 열어 상큼한 바깥 공기를 모셔 왔다.“이 차를 5년이나 몰았는데도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몇 년 더 몰아야 본전을 뽑는데….”운전 기사는 새로 사야 할 차 할부금이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싱글거리던 미소가 사라지고 다소 풀이 죽은 모습으로 혼자 말을 하였다.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