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소토 선생님은 치과의사입니다. 선생님은 생쥐인데요. 자기와 몸집이 비슷한 두더지나 다람쥐는 치과 의자에 앉히고 치료해주었고 조금 더 큰 동물은 사다리위에 올라가서 치료를 해줍니다. 하지만 고양이나 다른 사나운 동물은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여우가 턱에 붕대를 매고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통증을 호소하자 드소토 선생님과 그의 부인은 위험하겠지만 치료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여우의 상태를 확인한 선생님은 썩은 어금니를 빼고 새 이를 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마취를 하고 도르래로 여우의 이를 뽑고 나서는 솜뭉치를 물려주면서 내일 새 이를 해 줄 테니 병원에 오라고 했습니다. 여우는 집에 가면서 ‘치료가 끝나면 생쥐들을 잡아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과 부인은 저녁이 되어 병원 문을 닫고 금을 녹여 이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던 선생님과 부인은 내일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한 후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여우는 기분 좋은 모습으로 병원에 나타났습니다. 선생님과 부인은 무거운 금니를 여우에게 끼워주었습니다. 여우는 금니를 만족해 하면서도 속으로는 선생님을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공중보건치과의사.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남자 치과의사에게는 군의관과 함께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자리 잡고 나서부터는 남자 신입생은 대부분 군필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공중보건치과의사 수도 줄고 있는 추세이고, 공중보건치과의사 제도나 역할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물론 나의 경험이 공중보건치과의사 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을 통해 공중보건치과의사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갓 졸업한 신규 치과의사들에게 3년간의 공보의 생활은 개인적으로는 첫 사회생활이자,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본인 주관으로 환자를 보게 되는 첫 직장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경남 시골의 치과진료실과 구강보건실이 있는 보건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첫 2년간은 구강보건실로 발령을 받아 구강보건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구강보건실로 출장을 나가 어린이집 아이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아 홈메우기 및 간단한 충치치료를 하고, 학교 방학기간에는 마을을 돌며 출장을 다니면서 어르신들 구
어릴 때를 떠올리면 20년이 더 지났음에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완전한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처음 연필을 잡고 글을 쓸 때 왼손으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린 나의 손등을 때리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다. 그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지만 부모님은 끝내 내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고, 글씨 쓰는 것을 오른손으로 바꾼 이후에 내가 왼손잡이라서 겪는 불편함은 사소한 수준이었다. 밥 먹는 것, 양치질 하는 것, 가위질 등은 왼손으로 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등학교 수험생활을 마치고 진학할 과를 선택할 때 나는 내가 손재주가 있고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치과대학 생활에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서를 썼다. 다행히도 합격할 수 있었다. 신입생이 된 나는 평소에 기타를 치고 싶었기 때문에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왼손잡이라서 해야 하는 고민과 다시 만났다. 기타라는 악기는 오른손 기타와 왼손 기타로 나뉘어 있었고,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오른손 기타로 정했다. 악기를 구하기 쉽고 종류가 훨씬 다양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기타를 치면서 한계는 금방 찾아 왔고 2년간 여러 노력을
아놀드 쇤베르크, 20세기 음악의 선두주자로 무조음악의 지평을 연 작곡가이다. 새로운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추종자도 있었는데, 작곡가 알반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이 대표적이다. 쇤베르크는 결코 순탄한 생애를 살지 못했다. 나치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프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의 작곡과 마스터 클래스 교수직을 잃었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다시 교수직을 얻긴 했지만 그리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주요작품으로 현악6중주곡 ‘정화된 밤’, 연가곡 ‘달에 홀린 피에로’, 오페라 ‘모세와 아론’ 등이 있다.쇤베르크는 숫자 ‘13’의 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탓에 주변에서 수많은 놀림을 받아 강박증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13일에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모든 악보의 13페이지는 12B로 대체되었고, 지인이 오페라 ‘모세와 아론’의 제목의 알파벳 개수가 13이 된다는 말을 하자 ‘Moses und Aaron’에서 ‘Moses und Aron’으로 수정한다. 그는 76세의 나이로 13일의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7+6=13을 항상 두려워해서 늘 버릇처럼 76세에 죽을 것이라 입버릇처럼
지난해 10월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사를 위해 대마도를 비롯한 하얼빈 등을 여행했다. 특별히 중국에서는 안중근의사의 행적을 더듬으며 사서하는 부자 양반집 아들의 고행을 따라하게됐다.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조선의 원흉이자 동양평화를 파괴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코레야 우라(대한국 만세)”를 외친 곳이다. 내가 아는 것은 교과서적 내용 이것 뿐이었다.거사현장을 보려면 장춘에서 기차를 타야 하얼빈의 제일 플랫트폼에 도착할 수 있다.현장에는 바닥에 저격 장소 표시로 삼각형이, 피격자의 위치에는 4각형의 표시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문 예정지는 대련시 형무국, 관동주법원, 여순감옥, 공동묘지, 731부대 방문 등이었지만 많은 일정 가운데 이곳 방문은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다.현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가슴은 설레이기 시작했다. 4시간의 기차여행에서 내려 긴 지하도를 지나 현장에 접근하려는 순간 중국 공안원의 강력한 제지로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로 시도를 했으나 중국 외사과의 허가 없이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최근 일본의 거센 항의로 한국인의 출입을 각별히 단속한다는 것이다. 결국 역 구내이지만 또 하나
누구나 공유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숙제로 일기를 썼던 경험.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일기는 밀리기 마련이었다. 일기는 그 시절 가장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 다들 일기에서 손을 놓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어렸을 적 일기를 보며 재미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제서야 일기를 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읽어보면 분명 재밌을거야’란 생각으로 꾸준히 일기를 썼다. 목적이 생기고 나니 일기쓰는 것이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일기가 조금씩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오기가 있어서 지나간 날이라도 최대한 빠트리지 않으려고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땐 그날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나 영수증,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참고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기를 훑어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밀린 일기는 일기다운 일기가 아니었다. 밀렸던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만 적혀있었고 거기에는 내 생각이나 감정이, 과장 좀 보태면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사실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컴퓨터로 일기를 쓰기
“원장님 응사 보세요?”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요즘 대세라네요. 한번 보니 빠져드는데,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옛 기억을 떠올리는 매력이 있다.IMPRESSION의 역사도 20년을 넘었는데, 응답하라 IMPRESSION!에피소드가 많지만, 그중 우도출사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15~6년 전 초겨울 고문이신 임철중 전 치협 의장님과, 장수일 회장님 등 10여 회원이 함께 우도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소섬바라기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지금은 번화해 졌지만 당시는 소박한 시골 풍경이었습니다.소섬바라기에서 놀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항구 쪽의 식당으로 갔는데 이미 어두워져서인지 (당시 우도의 밤은 칠흑 같았음), 일행의 차 불빛이 비춰지자 좀 전까지 켜져 있던 식당 불빛을 꺼 버리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되어 그중 안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니 한 팀이 식사를 하고 있어, 식사를 부탁하니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주인장과의 입씨름 중, 식사 중이었던 우도경비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미식가이신 두 선배님께서 결정해 주셨는데, 내 생애 처음으로 다금바리를 맛보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입에서 녹는 식감과 뽀얏게 우러난 지리
11월초 미국 New Orleans에서 열린 American Dental Association(ADA)의 Annual meeting에 한국 치과대학 학생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Dentsply는 매년 전세계에서 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치의학 학술대회를 후원하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의 대표에게는 ADA학회에 참가하여 포스터를 발표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팀은 작년 국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덕분에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치과학회 중 가장 큰 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Dentsply와 ADA가 후원하는 SCADA(The Student Clinician Research Program of the ADA) program은 1959년 처음 생겼으며, 올해로 54년의 전통을 자랑할 만큼 오래된 행사이다. 우리 팀의 연구를 전 세계의 모든 치과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각 국의 치과대학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는 매우 뜻 깊은, once in a life time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를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ADA는 New Orleans Convention Center에서 201
“교장선생님. 겨우 1년 반만에 제 아들을 이렇게 신사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영국 런던 근교에 있는 칼디코트 초등학교 교장에게 큰 아들 졸업식 날 내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뭘요. ‘폴(Paul)’은 우리 학교 들어올 때 이미 신사였었는 걸요.”교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양쪽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하였다.십여년 전 어렸을 때부터 나의 큰 아들은 이렇듯 멋진 아이였다.그 아이가 커서 대학에 들어가고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 왔다. 이번 월요일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오늘이 그러니까 토요일이니 온지 벌써 닷새째다. 하지만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나에게 도착했다고 한 번 전화를 한 후 그 다음부터는 깜깜 무소식이다. 물론 바쁜 일정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재영 한인 과학자 협회에서 추천을 받아 청년과학자 포럼에 참가 중이라는 사실을 내가 잘 안다.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가 주최하여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 청년 과학도들에게 왕복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하고 고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으로 4박 5일동안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므로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집에도 못 들리고 공항에서 직접 코엑스 컨벤션센터로 직행할
인턴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일하게 되었던 구강내과, 그 다음으로 구강외과를 거쳐 인턴생활의 오아시스라고 하는 종합 진료실에 오게 되었다.종합 진료실에는 인턴의 자리인 안쪽 방사선촬영실에 ‘생각의 함정’, ‘닥터스 씽킹’이라는 두 권의 책이 있다. 다른 과에서 여러 인턴동기들과 함께 일하다가, 혼자서 일하게 된 이곳에서 초반 며칠간의 묵언수행을 뒤로 하고, 틈틈이 생각의 함정이라는 책을 꺼내어 읽었다. 가끔 생각이 많아질 때면 머리가 아플 정도인 나에게 생각의 함정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은 대체로 내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진 선택들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럴 때 마다 돌발적인 상황에서 감정이나 감각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최대한 변수를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이 책을 읽으며 천재라고 불리는 에디슨을 비롯해, 케네디, 호치민 등의 지도자들도 범했던 인지함정의 오류에 대한 일화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인지함정에 빠
11월초 미국 New Orleans에서 열린 American Dental Association(ADA)의 Annual meeting에 한국 치과대학 학생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Dentsply는 매년 전세계에서 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치의학 학술대회를 후원하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의 대표에게는 ADA학회에 참가하여 포스터를 발표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팀은 작년 국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덕분에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치과학회 중 가장 큰 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Dentsply와 ADA가 후원하는 SCADA(The Student Clinician Research Program of the ADA) program은 1959년 처음 생겼으며, 올해로 54년의 전통을 자랑할 만큼 오래된 행사이다. 우리 팀의 연구를 전 세계의 모든 치과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각 국의 치과대학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는 매우 뜻 깊은, once in a life time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를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ADA는 New Orleans Convention Center에서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