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미소를 만드는 치과의 창 밖에는 겨울이 한창입니다. 모과나무에 가득 매어 달린 풍요의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혹독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1월이 되자 누구보다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한 미소를 만드는 치과에 서설처럼 첫눈이 내렸습니다. 겨울과 눈 그리고 season’ greeting. 날카로운 계절 속에 사랑과 축복의 상징을 배치한 목적을 누군가는 모순과 균열을 열망하여 이룬 자만의 극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춥고 강퍅한 계절을 맞는 우리 모두가 열심히 혹한을 견디도록 허락된 선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괜찬타…. 괜찬타…괜찬타….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라고 노래한 시인 서정주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옵니다. 세상사 시름을 모두 덮으며 내리는 눈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그것은 그저 사는 일이 고단함을 뒤꼍으로 물리겠다는 회피의 의미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삶에게도 괜찮다고 손 내밀 수 있는 신실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날리는 눈발 속에서 묵묵히 치과 통로의 눈을 쓸어 길을 내는 우리 치과 식구들의 어떤 마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치과
무엇보다도 대마도라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 가련한 여인 덕혜옹주이다. 덕혜옹주라는 한 여인을 통해 조선이라는 한 나라가 망하는 과정이 비유되기 때문이다. 1912년 폐위당한 환갑의 고종황제에게서 네 번째로 딸아이가 태어났다. 대한제국을 잃은 황제가 황궁이란 이름의 감옥에 갇혀 손녀 같은 딸의 재롱을 보며 일본에 대한 저항심과 괴로움을 달래면서 데라우찌 총독의 무례함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황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 이준열사를 보내고, 연해주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하고, 의병을 독려하고, 의친왕을 상해로 보내 독립운동에 가담시키려 했고, 또 한 가지 일본의 황가 혼혈정책을 막으려 궁내 시종의 조카와 비밀리에 옹주를 약혼시켰었다. 마약을 탄 커피를 토해버릴 정도로 명석했던 황제도 결국 옹주 7살 때 독살당해 덕혜옹주는 보호자를 잃고 말았다.12살 때 동경여자학습원으로 강제 유학하게 된 이후 18세 때 23세의 대마도주 소 타케유키 백작과의 정략결혼으로 내선일체의 상징물로 선전되기에 이른다. 혼인 6개월 후 인사차 시댁인 대마도를 방문했다. 이때 강제 징용되어 현지에서 노역을 당하던 2000명의 한인들이 한푼씩 모아 망국의 옹주를 맞이하기 위하여 “덕혜옹주
나는 정년 퇴임 후 언젠가 내 제자들과 함께 외국여행을 한번 하고 싶었다. 몇 년을 벼르다 작년 대마도여행의 느낌이 너무 많아 대마도를 선택하게 됐다. 지금은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는 망각된 섬이지만 그 역사의 길을 더듬어 가면 시국에 비추어 애국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교육 현장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전진기지였던 대마도에는 세이잔지라는 사찰이 있다. 조선의 통신사였던 김성일이 풍신수길을 만나러 갈 때 거처했던 곳으로 그 마당에는 그의 추모비가 있다. 그 옆에는 중으로 위장하여 조선 8도의 도로를 그려 풍신수길에게 바치고 임진란때 종군한 세작 겐소의 묘비가 있다. 왜일까? 대마도 도주에게서 선물로 받은 조총 2정을 조정에 바치고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 황윤길에 대한 흔적은 없다. 임란이후 국교가 재개되어 260년 동안 조용했던 시기에 500명에 달하는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데 많은 경비를 쓰며 초호화 접대행사를 벌렸던 것은 국서교환과 일종의 유학의 가르침등 배움의 축제였는데 양국으로부터 이득을 챙기기 위해 문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이것을 주선한 것이 바로 대마도주였다. 1840년까지는 대마도인이 먹고 산 조선 쌀이 74%나 되었다. 조선 없이는 생
정신없었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치주과 수련의가 된지 2년이 넘어 어느새 마지막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쁘게 하루하루 지내던 3년차 어느 날 인문학 토론을 준비하며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학생들부터 인턴, 수련의까지 모두 많은 공부와 업무 또는 관계 등 바쁜 일상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몇 가지 글들이 나에게 힘이 되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이 글을 통해 나누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 주는가? 라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가? 하는 질문으로 이 두 가지 질문이 사람들의 행복의 열쇠라고 말합니다.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인정하지만 바쁘게 살다보면 잊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나의 가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학력이 아닌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는가로 측정되어야 하며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최고경제 2기 동기회(회장 최광철)는 지난달 10월 27일 단풍철을 맞이해 41명의 회원들이 O-Train, V-Train 코스로 다녀온 바 있다.우선 O-Train 코스는 (중부내륙 순환열차) 강원도(영월, 민둥산, 고한, 추전, 태백, 철암)와 경상도(승부, 양원, 분천, 춘양, 봉화, 영주, 풍기)와 충청도(단양, 제천)를 기차타고 둥근 원처럼 한바퀴 도는 One이란 뜻의 첫 자 O를 딴 것이다. 또 V-Train 코스(백두대간 협곡열차)는 봉화, 춘양, 분천, 양원, 승부, 철암까지의 기차여행으로 심산 계곡만 달린다고 하여 Valley의 첫 자 V를 딴 것이다.우리는 당일 07:30에 압구정동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약 3시간정도 걸려서 경북, 봉화, 분천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O-Train기차타고 오색단풍이 찬란한 깊은 계곡으로 맑고 깨끗한 강물을 보면서 여러개의 터널을 통하여 35분만에 철암역에 도착하여 버스타고 황지와 검룡소 그리고 영월 한반도 지형을 둘러보고 상경했다. V-Train 기차는 좀 느려서 60분가량 걸린다.이 코스는 처음부터 서울역 또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한바퀴 돌고 상경하는 코스도 있고, 버스와 기차의 여행,
“필리핀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 ‘보파’로 지금까지 약 350명이 사망하고 400명 가까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필리핀 방재 당국은 남부 콤포스텔라 밸리 및 뉴바타안 등 모두 8개 주에서 희생자 시신들이 추가로 수습됐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2012년 12월 작년 겨울, 한국에서 첫 눈의 기쁨을 진료실 창문 넘어로 만끽하고 있을 무렵, 해외뉴스 소개에서는 필리핀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 보파에 의한 피해소식을 보도하였지만, 하얀 눈을 바라보는 저에게는 남의 일이였습니다.2013년 하계의료 봉사단 모집 공고를 단장님께 전해 듣고 봉사 지역이 작년 겨울 태풍 피해 지역인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임을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생각해보면 2007년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지원서에 ‘의료봉사’희망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고 있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들어 올린 무조건 반사와 같았습니다.박주미 단장님 및 김정기, 양연미 부단장님과 15명의 의료봉사 단원은 여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의료봉사의 목적, 의료봉사 지역 선정에 대한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뜨거운 봉사열기와 의욕을
“가을날 노오랗게 물들은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님께서 부르시면…”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노오랗게 물들은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는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을 향해 아내와 같이 걷고 있었다. 치과의사인 둘째아들 영범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가 좋아하던 패티김의 마지막 은퇴공연 티켓을 예매하여 효자 덕분에 관람하게 된 것이다. 그 넓은 실내체육관은 입구에서 나누어준 촛불같은 형광막대기를 들고 입장한 50~70대 나이먹은 팬들로 가득 찼고 그 열기는 감동적이었다.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고 합창활동을 해왔던 아내와 나는 큰 감동을 받았으며 우리의 젊은 시절부터 좋아하고 따라 불렀던 주옥같은 가사와 선율로 인하여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다는 우리의 젊은 날을 회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난 그녀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변치않고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신과 팬들에게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는 모습이 항상 좋았다. 예쁘고 귀여운 여자는 아니었지만 늘씬한 키에 서늘한 눈매, 묘한 동양적인 마스크를 한 매력적인 여자였다. 특별히 노래 부를 때에 그 감성적인 섬세한 표정에서부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2013년 11월 18일 오전 7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장으로 치러진 고 이의웅 교수님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교수님을 잃은 애통함과 저마다의 교수님과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며 소리죽여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수련을 마친 뒤 27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회한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제 인생 특히 치과의사로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멘토이셨습니다. 영결예배에서 교수님을 ‘강한 듯 여린 분, 이의웅 학장님’이라 표현하였듯이 교수님은 학문적 열정이 강하며 끈기있고 추진력이 강한 리더이셨습니다. 악안면 영역의 종양 뿐 아니라 악교정 수술영역에서도 뛰어나셨고 대한악안면성형재건학회 회장,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회장, 동 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시며 한국 구강외과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셨지요. 베트남 참전을 비롯한 군복무후 줄곧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젊음을 바쳐 후학을 길러내셨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제 6대 치대병원장, 제7대 치대학장을 4년 연임하시면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과 병원을 반석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언젠가 학장으로 계실 때 제게 치과대학과 병원을 구석구석 자
응답하라 1996! 1996년 여름학기로 들었던 국어작문, 일명 ‘국작’. 과제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랑’을 의인화해서 썼던 글이 강사님의 호평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날 출석하지 않았다는…. 2013년 11월 “사랑니 발치치과니까 환자분들이랑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으시지요? 바쁘시겠지만 글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물으시는 기자님에게 차마 “바쁘진 않지만, 아직 에피소드라고는 없는데요.”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사랑니’를 의인화해서 자신을 핍박하고 동강내고 제거하려는 못된 치과의사의 스펙타클하고 환타스틱하고 서스펜스한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능력 부족임을 깨달았습니다. 2004년 연건동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6층 구강악안면외과 외래 2년차의 하루. 차팅해야 할 차트를 몇 개씩 겹쳐서 들고 다니면서, 다른 2년차와 누가 더 빨리 발치하나 내기를 하고, 드레싱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수 십명의 환자를 봅니다. 2013년 역삼동 강남역 뒷골목 사랑이 아프니 치과의원 원장의 하루. 출근 후 블로그 방문자 체크로 시작해서 블로그에 뭐 쓸 거 없는지 머리를 쥐어짜다가, 지식In 답변을 달고 있는 인터넷 홍보대행사 직원 같은 하루…. 중간중간
“흐아아암~피곤해~출근보다 더 빨라”평소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아침시간. 부산에서 근무 중인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품을 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진주보건대학 치위생과 동문회에서 봉사팀을 창단하여 봉사활동으로 치과계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자진참여하겠다고 했던 우리였다. 막상 당일이 되니 괜히 간다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며 교수님과 만나 함께 꼬부랑 할머니가 나올 것만 같은 꼬불꼬불 꼬부랑길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남 마산 어느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해강복지재단’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따뜻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스마일재단 직원분들과 홍예표 이사장님, 나성식 상임이사님, 신영순 이사님이 계셨다. 간단한 소개를 나누고 오늘 나누어야할 우리의 역할을 할당받은 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장애인친구들이 모여 있는 강당으로 올라갔다. 넓은 강당 안에는 한 손에는 칫솔을 들고 있는 친구들이 동그랗게 모여 여러 조를 이루고 앉아있었다. 우리는 한사람씩 조에 투입되었다. 나성식 상임이사님의 듣기 쉬운 구강건강관리에 관한 설명이 있은 뒤 우리는 친구들에게 칫솔을 잡는 법부터 잇솔질을 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