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833번째 서른 즈음을 보내며 여자들은 서른 즈음이 되면 혹독한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거의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십중팔구 그렇다. 이제 내 나이도 ‘서른’이 되었다. ‘내가 꿈꾸던 서른의 모습이 이런 거 였나’ 이따금씩 자문도 해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서른이 되고, 곧 결혼과 함께 ‘독립’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요즈음 유난히 ‘가족’에 대한 생각이 잦아진다. 아버지는 가정에 대한 애착이 강하시다. 또한 외향적인 성격으로 어디서든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들은 전국 방방곡곡 안다녀본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매해 1월 1일, 내 짧은 기억 단편 속에서 1월 1일은 참으로 가정적인 날이다. 20년 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우리 가족은 경포대가 보이는 한 호텔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았다. 아버지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는 지, 가족결속력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 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족 중 한명이라도 여행과 같은 ‘가족 모임’에 빠지면 매우 섭섭해 하시는 부모님 덕에 자식들은 서른이 다된 나이에도, 사춘기가 막 끝나 여드름이 아직 아물지 않은 더벅머리 남동
Relay Essay제1832번째 정자문화와 가사문학그리고 전통정원 제15차 대여치 담양 역사문화탐방 길가에 반가운 개나리가 피고 강가의 버드나무에 여린 초록의 잎이 올라오는 봄날에 전라남도 담양에 다녀왔다. ‘담양’하면 바로 ‘대나무’가 떠오르는 곳이지만 담양은 조선시대 가사문학과 함께 정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다. 잘 생긴 산들로 감싸진 비옥한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한 유교 사회의 이상적인 지역이 될 수 있었던 담양은 이러한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유학자들은 관념적인 성리학을 탐구하고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정자가 많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담양에서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죽록원이었다. 담양에 와서 대나무를 빼 놓고 갈 수는 없다. 죽록원은 2003년에 새로 조성한 대나무 숲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담양의 대나무’를 외웠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나무의 향수를 충족시켜주는 곳이다. 오르고 내리는 언덕에 빽빽이 들어 찬 대나무 숲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나무 숲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친구들과 전통 대나무 공예전수자의 작품도 구경하고 오랜만에 즐겁고 여유로운 산책을 하였다. 자연은
Relay Essay제1831번째 아버지에게 배우는 눈높이 소통 요즘의 나는 아버지의 환갑 준비로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친척어른들을 모시고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이지만 대식구라 모이는 인원이 50~60명 정도 되는데다 집안의 막내인 아버지가 형님, 누님들에게 불편을 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확고한 일념을 보이신 덕분에 이것저것 따질 것이 많다보니 장소를 정하기부터 쉽지 않은 탓이다. 아버지가 제시한 조건은 이러했다.1. 손님들이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2. 시간 제약을 받으며 쫓기듯 식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3. 조카 손주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 ‘주차장이 넓은 곳을 알아보면 되겠다. 시간은 예약을 할 때 넉넉하게 잡으면 될 것 같고, 아이들은 뭐든 잘 먹잖아! 간단한데?’ 인터넷으로 평이 좋은 뷔페와 한정식 집을 알아본 뒤 전주에 계신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대우빌딩에 있는 뷔페는 룸이 있어 좋다하고, 전북대 사거리에 있는 한정식 집도 음식 맛이 괜찮다고 하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잔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점심인데 시내에 있는 뷔페나 한정식 집
Relay Essay제1830번째 전역증 한장 내가 군에서 본 일이다.웬 군의관 하나가 의무대장실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전역증 한 장을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전역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대장의 입을 쳐다본다. 대장은 군의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참모총장 직인을 확인하고는 “진짜다” 하고 내어준다. 그는 ‘진짜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전역증을 받아서 깔깔이 깊이 집어 넣고 경례를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인사 참모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전역증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전역해도 된다는 전역증입니까?” 하고 묻는다.인사 참모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전역증을 위조했나?” 군의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지 말입니다.”“그러면 군에 말뚝이라도 박겠다는 건가?”“무슨 말씀이십니까? 3년을 오매불망 이 날만 기다렸습니다. 어서 도로 주시지 말입니다.”군의관은 손을 내밀었다. 인사 참모는 웃으면서 “진짜다” 하고 던져 주었다.그는 얼른 집어서 깔깔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
Relay Essay 제1829번째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에 가다-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 展 아직도 이른 봄 오랜 만에 덕수궁을 찾았다. 궁내 길섶엔 노란 산수유 꽃만이 활짝 피었고 다음은 개나리 진달래 순서가 아닌가. 남녘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상춘객으로 법석인데 이곳 덕수궁엔 이제야 꽃망울이 도톰하게 되어 화사한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궁 안의 현대미술관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이란 제호 아래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 전을 한다기에 주말을 이용해 찾았다. 나에겐 프라하의 추억이란 제호만 봐도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1990년 6월 ‘프라하의 봄’이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체코가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을 만들어 낸 국민에 온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TV 앞에 가슴 조이며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맨손으로 소련 전차 앞에 몸을 던진 용감한 젊은이들에 자유세계가 박수를 보냈던 그 감격의 순간을 어찌 잊으랴. 우리나라도 여행 자유화를 맞아 세계 각국으로 관광을 자유롭게 다니게 된후 처음으로 동구라파 여행 상품이 나와 맨 먼저 여행사에 신청을 해 1996년에 체코의 프라하를 방문, 감격의 ‘바츨라프’
Relay Essay제1828번째 주부 20년차의 Home cooking 실천하기 보통 여자 치과의사의 일상이 누구나 비슷하지는 않겠지만, 하루에 한끼 정도는 사랑하는 가족의 식단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누구나 공통된 일과일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결혼 20년차의 주부가 되어 있다. 그래도 매일 가까이에서 환자를 만나고,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아침은 굶기가 일쑤이거나, 가볍게 입 냄새 풍기지 않는 음식들을 준비하고, 점심을 치과병원 가족과 항상 사먹으며, 저녁은 다이어트를 핑계로 절식과 폭식을 번갈아 하다 보니, 건강은 점점 안좋고, 피부는 이제 노화를 피할 수가 없다. 주위에 살림도 잘하고, 병원 일도 잘하고, 가장 힘들다는 자녀교육도 성공한 선후배 동료 여자 치과의사들을 만나면 한참은 기가 죽는 그런 나이다. 요즘은 넘쳐나는 정보와 상업적 매체 방송들이 즐비하다. 특히 아침 TV 방송에는 항상 맛있는 제철 음식이며, 유명한 맛집 소개가 즐비하고 건강에 좋은 습관, 운동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정보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화목과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Home cooking을 시도해보도
Relay Essay제1827번째 그래도 지켜져야 한다 엊그제 치의신보를 읽다가 “첫 발 내 딛는 젊은 치의들의 고충” 이라는 수필을 읽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한창 수련을 마치는 제자들이나 군대를 마치는 제자들이 사회 일선에 나아가는 시기이다. 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취업자리를 찾느라 개원자리를 찾느라 마음고생을 해야 할까. 머리 좋기로는 요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똑똑한 우리의 후배들이 막상 사회일선에 나와서 겪어야 하는 좌절이 상대적으로 좋은 시대를 살아온 기성치과인으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을 하면서 가끔씩 칼럼을 통해 의료인의 윤리와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당장 취업자리를 찾아야 하고 힘들게 클리닉을 유지해야 하는 젊은 치과의사들에 얼마나 멀게 느껴질까 자문해 본다. 며칠 전, 오래전에 졸업한 제자 부부가 찾아왔다. 10년 가까운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얼마 전에 개원을 했다고 한다.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하는 꿈만 가지고 왔지만 우리나라의 개원현실이 녹녹할 리가 없다. 그래도 정성을 가지고 원칙대로만 하면 언젠가는 환자가 알아주겠죠 하는 말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그렇다. 아무리
Relay Essay제1826번째 변화와 신념 600여년전 고려말에 조선의 세번째 왕이 된 이방원과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가 만나서 술 한잔을 마시며 나눈 시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먼저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새로이 시작되는 왕조에 동참할 것을 은근히 권유하자, 정몽주가 “이몸이 죽어죽어 일백번 고쳐죽어…”하며 자신은 고려의 왕조에 변함없는 충성을 다 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던 것이지요. 역사적 사실의 선악은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지금 그것을 가리려는 뜻은 없습니다. 단지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두 시조의 내용은 각각 ‘변화’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변화와 신념은 묘한 관계입니다.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마치 신념이 없는 듯하고, 신념있게 행동하다 보면 변화된 상황을 놓쳐 판단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둘은 상반되지만 아주 중요한 개념이라 서로 놓치지도 말아야 하며 또한 치우치지도 말아야 합니다.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갑니다. 다행인 것은 그 변화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변화들
Relay Essay제1825번째 다른 조직 속 같은 업무 즐겨찾기 육군에서 장병 정신교육과 공보업무, 문화예술업무를 담당했던 정훈장교로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과 동고동락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대위 전역후 부산대학교병원, 그중에서도 군에서 계속해왔던 홍보분야 업무를 전담하는 홍보팀으로 입사하여 또 다른 ‘홍보인생’을 살고 있다. 취업대란이라는 어려운 시절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전역했으나 ‘스스로 가장 잘한다고 믿어왔던 일’, ‘계속 하고 싶었던 일’을 찾게 된 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언론매체를 상대로 수화기를 들고, 보도자료를 작성하며 부산대학교병원의 다양한 활동상을 알리고자 노력중이다. 군에서의 공보업무는 부정적인 사고는 대중들에게 거짓 없이 사실 위주의 내용만을 공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긍정적인 내용은 널리 알림으로써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 및 친지들의 걱정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병원조직은 어떠한가? 병원에서의 홍보업무는 많은 고객들이 병원을 믿고 찾아와 진료 받고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 개인의 술기(術技)능력은 물론 진료과의 성과 및 수술
Relay Essay제1824번째 서른, 직장 생활 4년차의 ‘데자뷰’ 세상에는 크게 나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하는 사람이 있고 양쪽 다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충 처음에 말한 두 가지로 꼽힌다. 나는 그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냐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학창 시절에 놀기만 했기 때문인지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원래 나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내서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운 것을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치과위생사로 사무직에서 임상으로 옮긴지 이제 4년째 되어간다. 나이는 서른, 6년차 치과위생사가 되었다. 처음 병원에 입사했을 때는 나이는 많고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훌륭한 원장님들과 사람 좋고 배울 점 많은 선배님들 만나 일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져갔다. 그렇게 이제 병원에서 중간연차가 되어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졌다. 지난해 초 내가 근무하
Relay Essay제1823번째 짧지만 소중한 경험 벌써 3년 과정이 다 끝나고 ‘임상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임상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특성화 실습을 마련해 주신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기업, 방송국, 건강보험공단 등등 여러 곳이 있어서 선택하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정책연구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엔 이 곳으로 겨우겨우 결정을 했다. 지하철 타는 방법도 모르던 나였기에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듣고 처음에 겁부터 났었지만, 실습 첫날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성수동에 있는 대한치과의사 협회 앞에 도착했을 때 별거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같이 실습하는 유나와 정책부서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김철신 정책이사님과 치위생학과 출신이시고 정책부서 연구원이신 한선영 선생님, 학술국과 정책부서를 겸하시는 나현정 선생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시며 이 곳에서 하시는 일들을 설명해주셨다. 주요사업 중 하나에 치과의료 정책분야의 연구용역 수탁 및 발주가 있는데 가끔 학교에서 진행하는 무심코 지나쳤던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