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825번째 다른 조직 속 같은 업무 즐겨찾기 육군에서 장병 정신교육과 공보업무, 문화예술업무를 담당했던 정훈장교로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과 동고동락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대위 전역후 부산대학교병원, 그중에서도 군에서 계속해왔던 홍보분야 업무를 전담하는 홍보팀으로 입사하여 또 다른 ‘홍보인생’을 살고 있다. 취업대란이라는 어려운 시절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전역했으나 ‘스스로 가장 잘한다고 믿어왔던 일’, ‘계속 하고 싶었던 일’을 찾게 된 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언론매체를 상대로 수화기를 들고, 보도자료를 작성하며 부산대학교병원의 다양한 활동상을 알리고자 노력중이다. 군에서의 공보업무는 부정적인 사고는 대중들에게 거짓 없이 사실 위주의 내용만을 공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긍정적인 내용은 널리 알림으로써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 및 친지들의 걱정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병원조직은 어떠한가? 병원에서의 홍보업무는 많은 고객들이 병원을 믿고 찾아와 진료 받고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 개인의 술기(術技)능력은 물론 진료과의 성과 및 수술
Relay Essay제1824번째 서른, 직장 생활 4년차의 ‘데자뷰’ 세상에는 크게 나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하는 사람이 있고 양쪽 다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충 처음에 말한 두 가지로 꼽힌다. 나는 그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냐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학창 시절에 놀기만 했기 때문인지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원래 나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내서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운 것을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치과위생사로 사무직에서 임상으로 옮긴지 이제 4년째 되어간다. 나이는 서른, 6년차 치과위생사가 되었다. 처음 병원에 입사했을 때는 나이는 많고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훌륭한 원장님들과 사람 좋고 배울 점 많은 선배님들 만나 일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져갔다. 그렇게 이제 병원에서 중간연차가 되어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졌다. 지난해 초 내가 근무하
Relay Essay제1823번째 짧지만 소중한 경험 벌써 3년 과정이 다 끝나고 ‘임상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임상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특성화 실습을 마련해 주신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기업, 방송국, 건강보험공단 등등 여러 곳이 있어서 선택하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정책연구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엔 이 곳으로 겨우겨우 결정을 했다. 지하철 타는 방법도 모르던 나였기에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듣고 처음에 겁부터 났었지만, 실습 첫날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성수동에 있는 대한치과의사 협회 앞에 도착했을 때 별거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같이 실습하는 유나와 정책부서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김철신 정책이사님과 치위생학과 출신이시고 정책부서 연구원이신 한선영 선생님, 학술국과 정책부서를 겸하시는 나현정 선생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시며 이 곳에서 하시는 일들을 설명해주셨다. 주요사업 중 하나에 치과의료 정책분야의 연구용역 수탁 및 발주가 있는데 가끔 학교에서 진행하는 무심코 지나쳤던 구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Relay Essay제1822번째첫 발 내 딛는 젊은 치의들의 고충 공중보건치과의사로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치면서 공중보건치과의사 같은 젊은 치과의사들의 삶에 대해서 느낀 것을 짧은 글로 말해보려고 합니다.지금 치과계는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문제들로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치과계에 발을 내 딛
Relay Essay제1821번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것 나는 어렸을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춤추고 노래 하는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나는 그저 우리집에서만 명가수였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어린 아이였다. 학교란 곳에 들어가고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나는 줄곧 치과의사가 되어야지… 어린아이가 무턱대고 갖고 싶은게 생기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제 가수가 아닌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두 번의 수능시험을 보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깝게 두 번이나 낙방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냥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흔히 말하는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남아있기에 한 번 더 대학원 진학을 시도했고, 너무도 감사하게도 세 번의 좌절은 겪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입학 후 4년간의 시간을 잘 버텨내었고, 나는 모
Relay Essay제1820번째 박쥐(하) <2113호에 이어 계속> 출근을 해 진료를 하는데 자꾸만 출근길에서 만난 박쥐의 모습이 생각 나, 진료가 잘 되지 않는다. 선한 눈망울이며, 격렬하게 저항하며 크게 벌린 붉은 입이며, 온갖 힘을 다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검은 날개며,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휘젓는 앞발과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는 뒷다리의 힘겨운 모습 등등이 계속 나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다. 스잔한 마음을 달래는데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행여나하는 마음에 아침 박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대체 박쥐란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알고픈 욕망이 솔솔 일어나 백과사전을 펼쳐 봤다. 아니, 박쥐의 종류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큰 박쥐 종류로 쟈바 큰 박쥐, 인도 큰 박쥐(Pteropus giganteus), 오가사와 큰 박쥐(P. Pselaphan) 등등이 있고, 작은 박쥐 종류로 관 박쥐(Rhinolophidae), 애기 박쥐(Vespertilionidae), 큰 귀 박쥐(Molossidae), 긴 가락 박쥐(Miniopterus schreibersi), 집 박쥐(Fuliginosus), 토끼털 뿔 박쥐, 큰 발 윗수염 박쥐
Relay Essay제1819번째 박쥐 (상)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찬바람이 옷 속으로 되알차게 스며든다.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오늘이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예보대로 제법 찬 기운이 낯볼을 비빈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지하 1층 주차장에 차를 둘 걸 하고 후회를 하면서 아파트 중앙광장을 지난다. 이 시간이 유아원과 유치원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인가 보다. 노란 차 두어 대가 중앙광장에 서서 자기네 아이들을 태우려고 붕붕붕 매연을 뿜고 있다.두툼한 옷으로 무장한 꼬마 아이들이 자기차를 찾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소란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생기발랄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속으로 무심히 미소를 띠우며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지하 2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던 난 소스라치게 놀라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박쥐 한마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배를 깔고 다가오는 나를 보고 붉은 입을 짝 벌리고 대거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저러지? 아이고, 불쌍해라.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가까이 오는 나를 위협하는 건가? 하여간 자세한 뜻은 모르나 지금의 상태가 매우 힘들
Relay Essay제1818번째 내 어깨 위의 천사 내 어깨 위의 천사에게 나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요.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내가 그런 능력이 될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를 응원해줬던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사서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딱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도한 걱정 탓에 뭔 걱정할 일이라도 생기면 잠도 잘 못자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을 해대니 나 자신이 힘들기도 하고 덩달아 얼굴표정도 방글방글하지 못하고 근심이 가득하게 되니 주위사람들에게도 긍정에너지를 주지는 못할망정 빼앗기까지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그 미안함에 걱정이 더 커지곤 한다. 퐁퐁 샘솟는 웃음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야 할 나이 어린 원내생이자 집에서는 늦둥이 딸인데 이것 참….이런 걱정병 때문에 내 처음 내딪는 발은 두근함을 넘어서서 무슨 지진이라도 난 데 서 있는 사람 마냥 와들와들 떨고 있을 때가 많다. 치과의사 국시를 준비하며 걱정을 하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나는 특히나 더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준비했던 것 같다. 국시공부를 하면서 이때까지 배웠던 것이 예전에 처음 배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또 한번 더 읽
Relay Essay제1817번째 그땐 그랬지 3월 초.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출근할 때 두꺼운 외투며, 목도리며, 장갑이며 돌돌 싸매고 밖을 나서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장갑조차 좀 답답함을 느낄 정도며, 한낮의 햇살이 비추면 일광욕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제법 따뜻하다. 난 원래 겨울을 좋아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초겨울 저녁의 분위기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초겨울 저녁에 가로등 켜진 동네 길목을 바라보며 알싸하게 다가오는 찬바람의 느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했던가? 칼바람 부는 겨울이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젠 좀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이번 겨울은 “추운 거 나도 알아요. 그런데 추워도 너~~무 추워!” 문득 다가오는 봄을 생각하니 어릴 적 멋모르고 산과 들을 선머슴마냥 뛰어 놀던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변두리나 시골을 가도 예전과는 다르게 자연을 벗 삼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나기 참 어렵지만 30년 전만 해도 서울 도심지 말고 지방 변두리에는 논과 밭을 흔
Relay Essay제1816번째 아버지의 자전거(하) 집안에 손자 손녀들이 태어날때마다 아버지는 감나무며 대추나무, 배나무 묘목을 대야장터에서 사다가 손자손녀의 이름을 붙여가며 심곤하셨다. 일종의 기념식수를 하셨던 셈이다. 추운 겨울날이면 학교를 다녀온 막내아들을 보시고는 아랫목 요를 들추시면서 춥다며 어여 들어오라고 아랫목을 내주시곤 하셨던 아버지다. 요를 들어 올려 속으로 들어갈라 치면 밥공기 뚜껑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벗겨진다. 아버지가 막내아들 뜨신 밥 먹으라며 넣어 두신 게다. 정겨운 기억이다. 아버지에 관한 가슴 시린 기억도 있다. 고 3때 원서를 쓰는데, 진학상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학부모상담이 있던 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버지가 오시기도 전에 원서를 써가지고 지원할 대학에 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오신 아버지는 이미 막내아들이 원서를 써가지고 갔다는 담임선생님의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원서를 접수하고 집에 돌아왔을때도 아버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얼마나 서운하시고 맥이 풀리셨을까? 철이 들어서 그때 일을 떠올리곤 할 때면… 아버지의 한참이나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Relay Essay제1815번째 아버지의 자전거(상)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 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