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어떤 외국인은 IT산업이 우리 나라 국민성에 잘 맞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속설도 있다. 어려웠던 때를 쉽게 잊어버리고, 이웃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성격을 비유한 말이다. 가끔씩 내가 다니는 성당 주변을 청소할 기회가 있는데, 매번 놀라는 것은 쓰레기의 대부분이 아이들이 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이삼십 년 후의 우리나라 미래가 보인다. 공부만 잘하면 무얼 하나 경쟁심만 부추켜 ‘이웃이나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의식만 불어넣는데... 정치인들의 사고방식과 너무 흡사하다. 아니 우리 기성인들과 너무 닮았다. 모든 분야 중에서 교육, 아니 참교육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둑질을 하고 있지만, 자식들에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불타는 향학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경쟁심. 그러나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소용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있는지 냉정
문 : 현상액·정착액 처리는? inara@orgio.net 며칠전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후 현상액과 정착액을 무단으로 방류하다가 단속이 되었다는 TV 뉴스를 보았습니다. 폐기물 처리를 해야 할 것은 같은데, 어떻게 처리들 하시나요? 답 : 분리해 위탁업체에 의뢰 치협 자재위원회 자재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1. 수질환경보전법시행규칙 제5조 별표3에 의거 치과용 X-Ray는 폐수배출시설을 설치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하나, 동 규칙 제17조 별표6(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아니하는 자의 준수사항)제2호 라목에서는 “X-Ray 시설에서 위탁처리하는 현상액과 정착액 및 세척액은 각각 분리수거하여 보관하여야 하며 20L 합성수지용기에 윗부분과 양측면에 가로 10cm 세로 4cm 크기의 바탕에 현상액의 경우는 황색바탕에 검정글씨로 ‘현상폐수’정착액의 경우는 녹색바탕에 검정글씨로 ‘정착폐수’라 한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2. 따라서, 수질환경보전법 제10조 및 제11조에 의하면 치과의료기관은 폐수배출시설 신고 및 폐수방지시설을 안 해도 되므로 현상, 정착, 세척액을 각각 분리하여 위탁업체에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3. 위탁처리업체는 각 지부에서 거래하는 곳이 있으므로 소속지부 사무
정형화된 틀 깨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들 한다. 물론, 극한 상황에서 며칠 혹은 몇달간 생존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혼자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어울리고 뭉쳐져서 한 사회를 이루고, 또 그 가운데서 어떤 정형화된 규칙과 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고정관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물론 그 배경에는 사회적 통념, 오래된 문화적 전통 등이 강한 영향력을 미침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는 그러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한, 쉽게 말해서 유연하지 않은 경향을 가지고 있는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 한 예를 들면,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우리는 나이나 사회적 배경에 너무 많이 집착하지는 않는지? 누구를 만나면 우선 나이와 직업을 물어보고, 형 아우를 따지고 서열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게다가 남, 녀가 만난다면 한가지가 더 추가된다. “ 결혼은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30, 40 대는 너무 외롭다. 그들만의 문화나 즐길거리도 없다. 왜냐하면 그 나이또래 친구들은 모두가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고, 집을 장만하느라고 우정을
지난 월요일이었다. 자동차를 몰고 워커힐호텔 앞을 지나다가 못 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애완견 한 마리가 도로변에 깔려죽어 있었다. 집밖의 사정을 모르는 치와와 한 마리가 달리는 차량에 희생된 것이었다. 놀란 가슴으로 그곳을 벗어날 즈음에 또 한 마리의 애완견이 질주하는 차량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겁에 질려 꼬리를 잔뜩 내리고 어찌할 줄 몰라 두리번거리는 게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 연신 뒤를 돌아다보는 내게 동승자가 말했다. “버림받은 개들이에요. 요즘에는 저런 개가 많아요. 늙고 병들면 주인이 저렇게 버린답니다." 일전에 읽은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요즘에 버림받은 애완견이 그렇게 많다고. 처음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기르다가 늙고 병들고 귀찮아지면 버리고 이사하는 예가 허다하다고. 무정한 주인에게 버림받은 세상물정 모르는 애완견들이 도시를 떠돌다가 허기에 쓰러지고, 병들어 뒹굴고, 차에 치어 도시의 아스팔트를 장식하는 부조(浮彫)가 된다고…. 물론 처음부터 강아지를 생각해서 집 안에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엽고 앙증맞게 꼬리치는 모습에 취해서, 애완견이 주는 기쁨보다 지불해야되는 희생이 커지는 상황을 재보지도 않았을 것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군에 다녀온 분들은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말일게다. 군 수송부는 말 할 것도 없고 차량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붙어 있는 구호였다. 자동차 하나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던 시절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쉽던 때 항상 기동력을 갖추고 있기 위해선 이보다 더 절박한 말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기본 자세는 세월이 흘렀다 해서 바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운 좋게도 외국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짐을 챙기는 데, 준비물 중에 손전등을 꼭 준비하라는 안내서 내용이 생각나서 손전등을 찾아보았다. 신부들은 정한 임기가 끝나면 수시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기에 책 외에는 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도 손전등은 작고 아담해서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어디 두었는지 눈에 띄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거금을 들여 하나 구입을 했다. 그러고 하루가 지나서 구석에 깊이 숨어 있는 손전등을 발견했다. 돈을 낭비한 셈이다. 앞부분을 돌려서 불을 켜게 되어 있는 것인데 켜질 리가 없다. 사용해 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잊혀져 있었으니까. 뒷 부분을 돌려 열고 배터리를 갈아 끼워야 하겠는데 도무지 열리질 않는다
잘되는 치과(?) swdent@hitel.net 치의신보를 보고 치의신보 특집에 잘되는 치과의 기사를 읽고 한마디 느낀 점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아무리 요즈음 경영이 어렵다고 치과를 완전히 장사꾼처럼 취급하는 것도 문제이고 의사로서의 자존심도 추락하는 것 같아 한마디 올립니다. 원래 저는 치의신보 게시판에 올리려 했으나 공개되는 싸이트인지라 우리 동료들만 볼 수 있는 이 자리에 올립니다. 물론 한 달에 수입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치과의사의 공론지인 치의신보에 잘되는 치과이야기를 꼭 올려야 되는지 의심스럽군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우리 치과의사 선후배 동료분들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치료를 하고있다고 봅니다. 일부러 마취를 아프게 하거나 일부러 불친절하게 환자를 대하는 분은 아마도 없다고 봅니다. 저는 내년이면 개업 20년이 되는 40대 후반의 치과의사로서 치의신보에 꼭 그렇게 돈을 명시해가면서(일년에 4억?) 잘 되는 치과이야기를 써야되는지 치의신보 편집, 교정하시는 분께 묻고 싶습니다. 만일 일반국민이나 세무당국이 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치과가 년 4억 이상 수입을 올린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기사를 쓸 때는 거기에 따른 여파도 생각하고 쓰셔야 한다고 생각합
“요즘 휴대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아내의 은근한 압력에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동시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내의 청을 흘리면서도 정작 나는 휴대폰을 몸의 일부인양 애지중지하며 떼어놓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 자동차를 집에 두고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부터 아예 휴대폰을 집에 놓고 다니게 되었고, 아내에게 “그동안 불편했지?"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차와 휴대폰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선심(?)까지 쓸 수 있었다. 차와 휴대폰 대신에 지갑 속에 버스카드와 전화카드를 넣고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부터 내게 다가오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넉넉한 여유와 홀가분하다는 기분이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신경을 쓰기보다는 느긋하게 앉아 신문이라도 펼쳐볼 수 있는 여유와 주차할 곳을 찾아 빌딩 주위를 돌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즐길 수 있었고 급한 일(?)을 보는 중간에 불쑥 울려대는 전화벨에 당황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와 휴대폰, 둘 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소유하게 되었지만 문득 이것들이 나에게 채워진 족쇄가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아이러
현 시대는 아직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이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말을 빌릴 것까지 없이 모든 이들이 느끼고 공감하는 현상이다. 적어도 한국사회는 그렇다. 전에는 특정 종교에서 출발한 사상이나 정치철학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어느 것도 이 사회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에 무엇하나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는 천주교 신부이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 현상을 보면 무종교 무신론에 가까운 모습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음의 문화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느 특정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는 분들은 펄쩍 뛸지도 모른다. 우리 교 신자가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그러나 각 종교에서 발표한 신자 수를 다 합하면 우리나라 총 인구보다 더 많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서 논할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이라는 세상을 보자. 가나다순으로 해서 개신교의 예를 보자. 금주, 금연운동은 참 바람직하고 존중되어야 할 일이지만 세상은 그렇지를 않다. 일년에 한국에서 소비되는 술의 양이나 담배 소비량의 발표를 보면
진료비 차일피일 미루는데… kjtdds@hanmail.net 한 환자가 작년 10월에 보철을 setting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료비(2백여만원)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지금까지도 안주고 있네요. 처음에는 언제 주겠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그 다음에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려서 그걸 해결하고 준다고 했다가 어디에서 받을게 있는데 받으면 준다고 했다가 지금은 거기서 못받으니까 자기가 준다고 하면서도 안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매일매일 간호사가 전화하면서 체크하는데도 하루하루 미루고 있네요.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안 된다면 법적으로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요? 환자가 계속 거짓말하고 그러니까 괘씸해서라도 꼭 받아야겠습니다. 도움을 주세요. 오늘도 간호사가 전화했는데 오늘 오겠다는 말만하고 통화도중에 전화를 뚝 끊었다는군요. “내용증명 보내세요” smileline@thrunet.com 일단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을 하세요. 이는 환자와 의사와의 사이에 정당한 의료행위가 있었으나 환자가 진료비를 완불하지 않아서 의사로서 정중히 환자에게 의료비 지불을 요구했다는 자료가 됩니다. 그런 후에도 진료비가 납부되지 않으면 법원에 가셔서 소액재판을 청구하면 됩니다
jumin56@dentizen.com 저는 경남 남해군 공중보건치과의로 있는 김현민입니다. 현재 이곳 남해군에서도 장애인들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개원하신 원장님 그리고, 남해군 치과위생사로 구성된 ‘함께 하는 치아사랑회’를 만들어서 3년째 치료중입니다. 이곳은 지역 여건이 도시처럼 개방된 곳이 아니라 군 단위의 작은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다른 지역의 모범처럼 활발하지는 못한 실정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이 지역의 정서인지 아니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도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에 포천군의 공보의 선생님처럼 힘을 줄 수 있는 모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구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처럼 자신의 의지와 장애우에 대한 사랑으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혹 주변에 있는 물론 치과의사가 아니더라도 관심있고 뜻이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같이 참여하시게 하여 진정 사람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공유하도록 해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사람이 모여 단체를 만들면 더욱 힘이 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뜻있는 사람과 단체도 중요하겠지만, 보건소 등 공공기관과 함께 진료를
대학시절 동아리모임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 혈기왕성(방탕)한 시절인지라, 자기의 이야기만 주로 하고 중구난방식으로 떠들고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서로 열을 올려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한 후배의 광(?)적인- 혹은 얼토당토 않는 -주장은 모든 이의 기분을 음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때 어느 선배님의 한 말씀. “말(馬)에겐 물이나 먹여!" 갑자기 조용해지고, 몇 초 뒤에 터지는 통쾌한 웃음이란…. 왜냐하면 그 친구의 별명이 말(馬)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리하게 뇌리를 스쳐가는 상쾌함이란…. 맞는 말이었다. 말(馬)은 말(言)을 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馬)은 말의 본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정치판, 경제판, 그리고 의약분업에 얽힌 세태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말(馬) 같은 말(言)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인가. 며칠전 TV에서 치과상식을 소개하는데 임프란트 수술 중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야한(?) 화면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았다. 병·의원의 경영화, 다양한 형태의 병·의원 경영기법을 보노라면, 변화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