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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들

특별기고

 “가카새끼 짬뽕”이라는 글을 현역 부장판사가 썼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는데, 그가 아파트 층간 소음(層間騷音)에 열 받아 주차 중인 위층 집 자동차 열쇠구멍에 이물질을 넣었다는 뉴스에 재차 놀랐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에 공감하며, 우리보다 별로 나아보이지 않는 일본이 세계 어디를 가나 대접받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인간의 됨됨이는 고등교육 여부와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뜻이다. 지난 22년간 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은, 대한민국의 소송건수가 인구대비 일본의 16배가 넘고, 최종심까지 가는 비율도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관청에 계속 민원을 넣어 119 구급대원을 포함한 소방서원이나 아파트 경비원을 괴롭히는 일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법률을 초월하여 타협과 조정으로 국민화합을 이루어달라고 표를 찍어준 정당·정치인마저 사법부에 제소를 일삼는 ‘소송공화국’, 이것이 바로 학력과 대학진학률이 세계 제일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난 1월 말 인터넷신문 ‘Dentin’의 고정칼럼 ‘거꾸로 보는 세상’에 ‘직접민주주의와 당선무효소송’ 이라는 글을 썼다. 평생 반대해온 회장직선제의 폐해가 ‘소송’의 형태로 나타난 데에 대한 참담함과 좋은 결말을 기대하는 심경과 재발방지에 관한 조언을 한데 묶었다. 사흘 후 판결결과는 무효소송단의 승소였다. 재판부의 판단근거는, 치협 선관위가 선거인명부가 확정된 후 선거를 13일 앞두고 온라인 선거방식을‘ 문자투표’로 변경하여, 예측하지 못한 사정으로 (휴대전화번호를 수정 않은 회원들이) 투표권을 제한받는다는 것이었다.

고의적인 태업이나 부정선거가 아니고 무지 내지 미숙(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에 의한 절차상의 하자와 그 결과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 판결근거를 뒤집기는 어렵지만, 많은 재판에서 ‘대승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작은 문구 하나가 판결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양측은 항상 자신이 옳다는 주장만 하므로 재판부가 소송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까닭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로부터 소송 많이 하는 집안과는 혼인을 꺼렸고, 사법부도 판결보다는 조정과 화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쟁송으로 척(隻)을 지면 3대를 간다는 말처럼, 때로는 판결이 국민의 화합을 크게 해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명명백백하고 공정한 협회운영을 위하여, 그리고 투표하지 못한 회원들(700명? 소장을 못 보아 물음표처리)을 대리하여 남들이 꺼리는 소송을 제기한 분들의 용기와 승소에 박수를 보내며, 책임자인 전임 집행부와 그 선관위는 이미 해체되어 어색한 피고였던 김철수 선출직 회장단이, 항소를 포기하고 싹싹하게 물러선 결정에도 찬사를 보낸다. 선거와는 무관하게 무색무취한 마경화 상근 보험부회장을 직무대행으로 선출한 순발력 있는 임시이사회도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만 바꾼 소송단의 ‘직무대행 직무정지’제소는 정말로 뜻밖이다.

그 이유는 첫째, 정관상 협회이사는 대의원총회 의결사항이나, 관례상 선출직 회장단에 위임하는 것이므로, 재론의 여지없이 임시이사회의 적법성은 유효하다.

둘째, 국정농단이 극에 달했던 2015년 박 대통령이 임명한 황교안 총리가, 탄핵 결과 대통령이 파면되자 직무대행을 맡아 대선까지 치렀지만,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었다. 끝으로 소송단의 발언에서 언중유골을 찾아보자. 소송 단은 그동안 김철수 측에 ‘원만한’ 해결을 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하는데, 어쩐지 모종의 특별한 요구조건을 암시하는 느낌이다. 현 선관위가 재선거를 치를 역량이 없고 진상규명 의지가 부족하니 즉각 사퇴하라는 말은 극히 주관적인 실언이다. 임시총회는 정기총회와는 달리 명시된 단일안만 다룬다.

예컨대 ‘선거무효판결에 따른 재선거 실시에 관한 건’ 정도다. 굳이 원한다면 정관의 소집 요구 항목을 따르면 된다. 소송단의 할일은 재판 종료까지다. 배운 사람답게 의기(義氣)의 초심을 버리지 말고, 특히 협회 업무마비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직무정지’ 제소를 조속히 취하하기 바란다. 모든 법률비용과 추진 중인 현안들의 업무차질은, 결국 협회 및 전 회원의 천문학적인 피해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