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 인술(仁術). 한국 최초 여성 치과의사로 알려진 최금봉 여사는 의료진이 부족하던 시절 동경에서 배워 온 의학지식을 가지고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위해 봉사했다. 말년에 그가 남긴 말은 아직도 후학들 사이에 회자된다. “걸음을 걸을 수 있는 한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
최금봉 여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춘들이 있다. 찬바람이 외투 속을 파고드는 11월 초엽, 경희대학교 기독교 치과봉사 동아리 CDSA(회장 채승우)는 서울 구립 신내노인종합복지관에서 나눔의 손길을 내밀었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인술을 전한다는 사명으로 50년 동안 활동해 온 CDSA. 이날 복지관을 꽉 채운 CDSA 회원 50여 명은 구강검진, 충치치료, 방사선 촬영 등 당일 치료가 가능한 대부분의 치과치료를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제공했다.
이들이 신내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배움을 베풀고 어려운 이들의 구강건강을 지키고자 경희대 측에서 먼저 복지관에 연락해 봉사의 뜻을 밝힌 것이다.
# “환자 향한 진심, 열정을 배운다”
이채유 학생(예과 2학년)은 “아직 배움이 깊지 않아 선배들을 돕고 환자를 안내하는 역할뿐이지만 직접 진료에 참여하지 않아도 선배의 뒷모습에서, 또 환자의 밝은 미소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치과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30분 동안 열성적으로 설명을 하던 김대영 학생(본과 3학년)은 봉사를 하며 아쉬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봉사활동을 해온 지난 5년 간 더 많은 걸 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한 현실 사이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끼죠. 동아리 출신 선배님들과 교수님, 학교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시지만, 외부에서 하는 진료라 아무래도 병원만큼은 재료나 장비가 풍족하지 않아요.”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 자리를 급하게 뜬 그가 환자에게 개인 연락처를 전달했다. 웅성거리는 진료실 너머로 “혹시 아프시거나 궁금하신 점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라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이 건너왔다.
# 치아 넘어 사람을 먼저 만나는 봉사
학생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가 닿는다. 김국환 씨(79)는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왔는데 사실 나보다 이가 좋지 않은 내 아내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고, “아침 일찍 퇴계원 집에서 나섰다”는 박영국 씨(74)는 “사실 조카가 논현동에서 치과를 하지만 2년째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인연을 맺은 환자들이 바뀐 봉사 장소를 수소문해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복지관에서 치과진료봉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도연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이 무척 만족하고 계시고, 오히려 치과보다 일부러 이곳을 찾으시는 분들도 많다”고 밝혔다.
CDSA는 치과진료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손길이 닿을 수 있게 봉사영역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채승우 CDSA 회장(본과 2학년)은 “무료 치과진료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우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열심히 발로 뛰며 노력하겠다”며 “복지관, 전국 농협, 지자체 등 불러만 주시면 바로 뛰어가겠다”고 말했다. 파랗게 돋아나는 청춘, 예비 치과의사들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