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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영역 확장의 체계적 접근: 숙원 과제 해결의 출발점

시론

최근에 발간된 치과의사학회 자료는 치과전담부서가 정부 조직 내에서 거의 명맥만 유지된 채 운영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 치과전담부서는 이런 모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까? 필자는 초창기 치과대학에서 ‘의과 기초와 치과 임상’이라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수업을 들으면서 치과(齒科)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는 전공의 과정과 대학병원 근무를 거쳐 개업한 상황에서도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고령화시대 협회 이사로 구강정책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치과의 정체성에 기반한 영역 확장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치과계가 풀어야 할 숙원 과제 해결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치료방법 측면의 근원적인 접근: 치과의료산업 체계의 구축
의과(醫科)가 약물치료 위주의 내과(內科)계에 행위치료 위주의 외과(外科)계가 합쳐져 생명과학(life & science)이 되었다면, 치과(齒科)는 치과 재료 및 장비에 기반한 생체역학적 행위치료 위주의 (구강)외과계에 이들 치료를 돕기 위한 (구강)내과계가 합쳐져 예술과학(art & science)이 되었다. 물론 의과에도 예술과학적인 치료가 있고 치과에도 생명과학적인 치료가 있지만, 주된 치료 방법으로 볼 때 이렇게 말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치과는 의과의 외과계로 한정해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구강악안면(oral & maxillofacial)이라는 특화된 복합 부위와 그에 따른 치과 치료의 세분화가 필요하였기에, 의과의 개별 진료과목을 넘어 통합적 차원의 의과 위상에 상응(相應)하는 독립된 영역으로 정립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의과의 외과계 행위치료에 치과 재료 및 장비 기반의 보다 심미적인 행위치료(보존, 보철, 교정 등)가 덧붙여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치료방법 측면에서 치과 영역에는 근원적으로 치과 재료와 장비 등 치과의료산업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치과의 위상이 독립적 영역으로 정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치과의료산업 체제도 치과의 정체성에 기반한 치료방법의 원천적인 특성에 부합되게 독자적으로 구축되고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디지털시대를 맞아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는 치과 재료와 장비의 유기적인 융합을 통해 예술과학적인 치과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치과의료산업(치과분야 R&D 포함)을 신성장산업의 하나로 시급히 육성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치과의료산업 정책을 치과전담부서(구강정책과)가 거의 관여할 수 없는 보건산업정책국에서 다루고 있기에 안타깝게도 국가적 차원의 치과의료산업의 육성은 물론 국부 창출의 기회마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대상 측면의 포용적인 접근: 노인치의학 교육체계 확립
치과는 구강악안면 부위 진료와 관계된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 의과의 진료과목과는 달리 내원 환자의 전신(全身) 상태를 고려하면서도 치아 치료를 중심으로 구강악안면 영역을 성공적으로 진료해 왔다. 이러한 모습의 치과진료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내원진료모델이다. 그런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기존의 내원진료모델로는 담아낼 수 없는 뇌졸중, 치매 등 의존적 노인(dependent elderly)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의존성 노인의 잘 씹고 잘 삼키기 못하는 구강기능저하(oral hypofunction, 구강불결과 구강건조 포함)가 전신쇠약(frailty)과 흡인성 폐염(aspiration pneumonia)을 초래해 종말기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기존의 개개 치아 치료 형태의 내원진료모델이 아닌 종합적인 구강기능 평가를 통한 방문진료모델이 필요한 이유이다.

 

문제는 현재 학부교육이 고령화 이전 커리큘럼이기에 의존성 노인의 전신 상태에 따른 종합적인 구강기능 평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차버린 교육커리큘럼과 전공교수요원 및 전공의 확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대략 15년 정도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총 29개 대학 중 11개에서 노인치의학이 개설되어 재가(在家), 요양시설 및 요양병원 방문 진료를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일본노년치의학회와 일본치과의사협회가 함께 ‘구강기능저하(oral hypofunction)’라는 새로운 병명으로 보험까지 등재시킨 상황이다. 이에 비슷한 상황의 우리나라도 노인진료모델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전향적으로 포용하는 차원에서 노인치의학 교육체계 확립을 통한 치과 영역 확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치료지원 측면의 제도적 접근: 구강보건정책 체제의 확충
경제학에도 개별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다루는 미시경제학과 전체 경제 현상을 다루는 거시경제학이 있듯이, 치의학도 이제는 미시적 관점뿐만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다시 말해 작금의 여러 치과 문제들 즉 치과의료의 불평등이나 치과 미래의 불확실성 등을 개별 치과의사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치과전담부서를 부활시키기 위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치과분야는 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치과전담부서의 부활은 힘들 것이다’는 뉘앙스의 말씀을 들었다. 아니 치과는 의과와는 별개로 면허도, 대학도, 병원도 엄연히 독립된 직역임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고 적잖이 놀랬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협회 회무를 계속하면서 이것이 치과계가 바라보는 미시적 관점과 주무 부처가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치과분야 일’이란 노인무료의치사업이나 상수도수 불소화 사업과 같은 보편적 복지와 국민 편익을 위한 사업으로, 잘 아시다시피 노인무료틀니사업은 65세 노인의 의치 보험화로 흡수되었고, 상수도수 불소화 사업은 치아우식증 예방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탁월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가 어려워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치과분야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현 정부에서 시행 중인 요양시설의 치과계약의사제도와 커뮤니티케어 및 장애인치과주치의제도 등이 ‘치과분야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치과분야 일’이 12년 전 구강전담부서(구강보건과)가 없어지면서 다른 부서에서 흩어져 진행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참고로, 치과계약의사제는 노인정책국에서, 장애인치과주치의제는 장애인정책국에서, 커뮤니티케어는 커뮤니티케어 추진단에서 선정한 지자체에서 구강정책과와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음) 치과전담 정책부서나 치과계의 관심 밖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치과분야 일’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제도개혁 내지 새로운 제도 발굴 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치료지원 측면에서의 치과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치과의사인 우리들이 추진해야 할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졌다. 바로 치과의 숙원 과제인 치과의료산업 체계의 구축, ‘치과분야 일’의 통합적 수행을 위한 노인치의학의 학부 교육체계 확립과 함께 구강정책관(국)으로의 확대 개편 그리고 이들 과제와 연계하여 치과분야 R&D의 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한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