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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기원’ 1921년 조선 VS 1925년 한성 ‘갑론을박’

치협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

 

치협 창립일을 정하는 데 있어 ‘최초의 전국단위 단체에 조선인 참여여부가 중요하다’는 의견과 ‘순수 조선인들로만 구성된 단체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립각을 이뤘다.


치협은 계속적인 관련 토론과 여론수렴을 통해 치협 창립일에 대한 치과계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치협 100주년의 기점을 찾는 ‘치협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 10월 30일 치협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상훈 협회장과 공청회 좌장을 맡은 장재완 부회장을 비롯해 김정균 치협 고문, 변웅래 강원지부 회장, 배광식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 김종열 연세치대 명예교수, 양정강 박사, 정재영 원장 등 치과계 원로, 오피니언리더들이 참석했다.  


공청회에서는 ▲현재 치협의 공식 창립일인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을 옹호하는 변영남 전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성신치과의원)과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을 치협 창립일로 해야 한다는 권 훈 치협 협회사편찬위원(미래아동치과의원)이 나서 각각의 주장을 펼쳤다. 또 역사학자인 양국주 서빙더네이션스(국제 NGO) 대표가 나서 의견을 보탰다.

 

 

이상훈 협회장은 “치과계 내부에서 치협 창립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충분한 치과계 의견 수렴을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치과계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이를 중심으로 치과계가 하나로 나아가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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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치과의사회 찬성

 

조선치과의사회 한국인도 참여…최초 전국단위 치과의사 단체 의미
식민지 시대 불구 “일본인이 만든 단체라 곤란” 논리는 부당
81년 대의원총회 결정 존중 돼야…일제 적폐 청산 관점 접근 안돼

 


우선 변영남 전 협회사편찬위원장은 ‘치협 창립기념일(1921년) 변경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발제를 통해 “아픈 역사도 역사다. 1921년을 치협 창립일로 결정한 1981년 제30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 결의는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은 꼭 지켜져야 한다. 논쟁이 길게 가지 않고 짧은 시일 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 전 위원장은 현재의 창립기념일을 유지해도 무방한 이유로 조선치과의사회가 한반도에 최초로 생긴 전국단위 치과의사 단체이자 함석태·김창규·한동찬·이희창 등 한국인 치과의사 4명이 참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1933년엔 한동찬이 평양치과의사회 회장에 한국인 최초로 당선됐으며, 1942년엔 함석태가 조선치과의사회 부회장에 보선, 1935년 9월 25일엔 한성치과의사회가 조선연합치과의사회에 가입하는 등 한국인들이 단체 내에서 홀대 받지 않고 일본인 치과의사들과 교류하며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1925년 창립된 한성치과의사회는 창립일에 대한 기록이 없고, 전국단위의 단체가 아니었다는 점을 짚었다.  


또 조선치과의사회가‘일본인이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일각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서울치대도 일본인 나기라 다츠미 박사가 1922년 세운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며, 해방 후 나기라 다츠미 박사가 일본으로 돌아가며 박명진 학장에게 남산에 있던 관사를 인계하고 간 것이 현 치협회관의 종잣돈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변 전 위원장은 “이 문제를 요즈음의 일제·적폐 청산의 관점으로 다루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치된 마음으로 대의원총회 결의를 존중하고 내년 100주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며 우리 치과의사 모두가 새 씨앗을 심고 쑥쑥 자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치과의사회 찬성

 

조선은 일본인이 만든 단체…한국인 치의들 억압 받았다
한성은 초대회장이 함석태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단체로 정통성
의협도 순수 한국의사들로 구성된 의사연구회를 기원으로 인정

 


권 훈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은 ‘한성치과의사회(1925)가 현재 치협의 전신이다’란 발제를 통해 조선인 치과의사들이 조선치과의사회 내에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권 위원은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에 몇 개월 앞서 함석태 선생의 치과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모의가 있었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함석태 선생이 절대 조선치과의사회의 창립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록으로는 1930년에야 조선치과의사회에 조선인 이사와 평의원이 등장하고, 함석태 선생은 1936년에서야 평의원으로 등장한다.


1925년 조선인 치과의사 7인이 모여 함석태 선생을 초대회장, 안종서 선생을 총무로 출발한 한성치과의사회가 치협의 뿌리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만든 치과의사단체에 조선인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실제 이들은 일본인 치과의사들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동아일보 1925년 3월 21일자에 실린 기사를 보면 경성치과의사회 소속 유일한 조선인 회원인 함석태 선생이 종로소학교로 아동 구강진찰을 갔다가 소학교 교장에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진찰을 거부당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서는 ‘이것이 아가리로는 소위 일선융화를 부르짖는 자들의 뻔 새’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한성치과의사회는 매년 독자적으로 구강위생강연회와 충치무료진료사업 등을 진행하며 명맥을 이어간다. 


권 위원은 “우리의 치과의사단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만든 최초의 단체로,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성치과의사회는 대한민국 최초의 치과의사 단체로 손색이 없다”며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치과의사협회도 모두 자국인이 초대회장을 한 단체를 최초의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의협도 1908년 순수 한국의사들이 결성한 의사연구회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 부분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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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치의가 만든 단체 치협 창립일로 기념 반대
81년 대의원총회에서 안일하게 결정한 것 아닌가?
전국 규모 아니었지만 대표성 있어 한성을 인정해야


이어진 청중질의에서도 역시 대립되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양정강 박사는 “1981년 총회에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에 대한 기록이 없는 부분에 대해선 일본제국주의 시기는 광기와 야만에 휩싸인 시기였고 개인은 동굴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일본사람이 주축이 돼서 만든 단체의 창립일을 우리의 창립일로 하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다.


변웅래 강원지부 회장도 “81년 대의원총회 결의사항을 협회 임원들이 따른다고 하는데에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기록을 보면 당시 총회에서의 논의가 제안 설명도 없이 허술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창립일을 1921년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장 권한으로 창립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을 의결한 것이다. 표결과정과 관련한 문서 등 증거자료를 협회에 요청한다. 충분한 토론 없이 단지 역사가 긴 날짜로 정하자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변 회장은 “1945년 12월 9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과 관련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1925년 4월 15일 이후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 정신을 계승한다는 합치사항이 있다. 이런 합치사항에 기반 해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나라자키 도오요오(조선치과의사회 초대 회장) 등 일본인들을 어떻게 우리 치협의 회장에 올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열 명예교수는 “의사단체, 한의사단체 등 유관단체의 창립기념일 연원 제정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의사들의 경우 대한제국당시 이미 한국인 출신 서양의사들이 많이 배출돼 있었고, 이들이 주축이 된 단체가 단순히 의료단체가 아니라 독립운동 등 상당한 역할을 해 자랑스러운 선배의 역사로 남아 있다”며 “회원들이 내가 속한 단체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초대 회장이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은 안 되지 않겠느냐. 같은 값이면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만든 단체가 전국적 규모는 아니었지만 대표성을 갖고 선배로 인정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81년 총회 결의사항 선배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정
“조선에서 활동했던 한국치의들 반민족 행위자냐?”
“다른 단체는 창립역사 늘리려하는데 왜 줄이려 하나”


김정균 치협 고문은 “치협의 창립기념일을 꼭 이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개념이 다를 수 있다. 더 이상 과거에 대한 논란은 소모적이다. 우리 조선인이 참석했으면 그것을 기원으로 봐야한다. 그때는 조선치과의사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재료도 구하질 못하던 때라 조선인들이 일본인과 같이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주 총회에서도 선배들이 이러한 여러 부분을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 원장은 “조선치과의사회가 조직된 후 여기에 들어가 활동한 조선인들은 과연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인지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성균관대와 중앙대도 다녔는데, 중앙대의 경우 처음 세워졌던 유치원을 기원으로 본다. 역사를 왜 줄이려 하느냐. 이 땅에 치과의사단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어떻게 조선인만으로 구성된 것을 시작으로 보느냐”며 “민족정신이 중요하다 한다면 뒤로 물러나겠지만, 그렇다면 일본이 만든 단체에 들어간 선배들은 모두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냐? 이는 우리가 정리하지 않으면 선배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치과의사의 역사는 가능하면 우리의 선배들이 앞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한번쯤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광식 협회사편찬위원장은 “81년 창립일 재정 과정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다 예단하는데, 그것은 선배들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다. 그 때 1921년을 창립일로 정하는 것에 대해선 결의를 하고 구체적 날짜만 협회에 위임했던 것”이라며 “역사의 연한을 따질 때 어느 역사나 올리지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성치과의사회는 1935년 조선연합치과의사회에 가입하는데 이는 한정된 지역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국치과의사회의 연원으로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81년 총회 당시 선배님들은 일제 치하에서 고생한 분들이다. 이들이 역사를 올리려 얼마나 고민했을지 돌아보고,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식 사진에 한국인들이 나오지 않았다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여기서 얼마나 활동했는지 찾아보는 노력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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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의견

 

얼마나 끈질기게 조직을 이끌었는지가 관건

 

치협 창립일 논쟁에 대해 양국주 서빙더네이션스 대표는 “단체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조직을 이끌어갔는지가 단체의 정통성을 논하는 데 중요한 고려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표는 자신의 주력 연구 분야였던 YMCA, YWCA, 간호협회 등의 창립역사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 단체의 발전 과정에서도 중앙회과 지부 간의 대립, 서양인들을 중심으로 했던 초창기 모임과 이후 회의 발전과정에서 대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으로 해방 전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로 많은 활동을 했지만, 해방 후에는 친일 행각으로 그의 동상에 분뇨가 뿌려지는 등 다양한 해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양국주 대표는 “함석태 선생은 조선치과의사회와 경성치과의사회, 한성치과의사회에서 모두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지역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서울지부는 한성치과의사회를 따르는 것이 무방해 보이나 조선이라는 전체 단위를 생각하면 조선치과의사회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치협은 함석태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다. 그의 독립운동 기록에 대한 연구 등 치과의사단체를 이끌어 온 분들의 리더십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연구해 보는 것이 단체의 기원을 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