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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말고 첫환자 이야기

Relay Essay 제2434번째

사람들은 ‘첫’이라는 수식어를 참 좋아한다. 그만큼 의미도 크고 기억에 가장 많이 남기 때문이다. 첫사랑, 첫눈, 첫술, 첫출근, 첫월급... 처음이라는 색다름의 아찔함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여서 그럴까, ‘첫‘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에 따르는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첫’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로 첫사랑 말고 첫환자 이야기이다.

 

작년 초에 화이트코트 세러모니를 통해 흰색 가운과 함께 예비치과의사 선서식을 마치고 새로운 배움터, 병원에 등원을 하였다. 그간 이론을 통해 배웠던 내용들을 실제로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새로웠던 점, 신기했던 점도 많았고 앞으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설렘과 함께 걱정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원내생 진료실에서의 진료의 기회가 드디어 우리에게 주어졌다. 치과대학 생활을 하면서 하루 빨리 환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막상 영예의 첫환자를 선택하는데 어려웠다.

 

여기서 나의 인간관계는 시험대에 올라섰다. 마침 얼마 전에 필자의 소개팅 주선으로 연애에 골인한 친구가 생각이 나서 부담없이 연락을 하여 초진 그리고 스케일링을 예약해줬다. 간단한 전화설문으로 확인한 구강 위생 상태는 양호하였고 나의 첫환자로 낙점되었다. 설레는 첫환자의 첫 내원, 나는 어설픈 솜씨로 에이프런을 덮어주고 환자분께 어색한 존댓말로 주소(Chief Complaint)를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나요?”

 

그리고 돌아온 답변, “무슨 소리야, 네가 오라며”
“아... 구강검진 그리고 스케일링 받고 싶으시다고요?”
이렇게 나의 첫환자 초진이 시작되었다.

 

교수님께 환자의 주소 그리고 인적사항을 보고 드리고 구강검진 지시를 받고 2번의 체어 눕기 버튼 누르기 실패 끝에 불안한 친구의 얼굴과 함께 나의 첫환자는 구강검진 대상이 되었다. 교수님이 병원에서 진료를 하시면서 하셨던 말투들을 따라하면서 환자 분의 편안함을 확인하고 미러와 함께 환자의 구강 상태를 검진하였다. 세상에! 교수님은 그렇게 쉽게 환자분을 보셨는데 나는 왜 모든 것이 새로울까. 막연한 두려움이 올라섰고 시진과 함께 토마스가 얼마나 훌륭한 환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절한 토마스는 우리 치과대학 실습실의 마네킹이다. 독일에서 왔고 항상 웃고 있는 선한 인상의 소유자다. 토마스는 내 첫환자랑 많이 달랐다. 먼저, 토마스의 입은 상당히 컸다.

 

실습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입술은 없고 입이 정말 커서 덴탈 미러로 리트렉션이 많이 필요 없었는데 내 첫 환자는 볼을 당길 때 그리고 미러로 잘못 눌렀을 때 환자의 신음소리와 함께 나는 중한 죄를 지은듯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둘째, 토마스는 혀가 없다. 토마스와 함께 할 때는 혀가 이렇게 크고 역동적인 존재인 줄 몰랐다. 세 번째로 토마스는 4시간 누워있어도 아무런 불평, 불만이 없었다. 이미 짐작을 했겠지만 그렇다 초진 그리고 스케일링을 4시간 동안 진행하였다. 레진과 에나멜을 구분하는 것부터 어색한 자세와 파지법까지 좌충우돌 첫 환자 구강검진 및 스케일링을 교수님 그리고 선배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하였다.

 

초진 구강검진 이후에 레진 필링, 인레이, 큐렛, 크라운 치료, 발치 등 술식마다 첫 술식을 경험하면서 아찔했던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책에서는 이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술식들, 교수님은 너무나도 쉽게 하는 술식들,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쉬운 술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당황스러운 순간들에서 교수님의 지도하에 침착하게 위기를 넘기면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느꼈다. 위기들을 넘기면서 같은 술식을 다음 기회에는 한층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면서 반대로 앞으로 비슷한 진료를 진행하면서 익숙함에 속은 나머지 자만심도 생길 때, 처음으로 해본 날 식은 땀을 흘린 그 날을 기억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바로 치과의사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새로운 환자를 만나고, 같은 술식이라 하더라도 환자에게 맞는 술식을 진행하는 것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로운 환자의 모습과 웃음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결코 쉬운 환자, 쉬운 술식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더 나은 진료를 위해서 노력하면 더 좋은 진료는 있기에 환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치과의사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이자 행운이다.

 

원내생 진료실에서 교수님의 지도 밑에서 오로지 준비된 술식에 몰두 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로 감사하고 다행이다. 이런 특혜 밑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교수님 그리고 학교의 지도와 보호 아래서 하고 싶고 그 혜택을 환자 그리고 향후 치과 후배들에게 되돌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항상 우리 원내생의 진료를 위해서 진료에 있어서는 냉정하게, 가슴은 따뜻하게 옆에서 지지하고 지도해주시는 교수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시인 장석주의 구절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첫 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첫 환자의 설렘과 긴장감을 잃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