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이나 연구, 프로젝트에서 치과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고된 4개 항목 중 이미 3개를 의과로 배정 후 나머지 1개를 놓고 치의학, 한의학, 약학을 경쟁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정부투자 보건의료 연구개발비 현황’에서는 치의학의 초라한 단면이 명확히 드러난다. 2018년 기준, 정부의 전체 보건의료 R&D 투자 규모가 1조 6844억원에 달했지만, 치의학 R&D 투자 규모는 348억원(2.1%)에 그쳤다.
반면 의약품 개발에는 치의학의 10배 이상인 4075억원이 투자됐다. 의생명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도 수천억원이 집행됐고, 한의학은 치의학의 2배인 773억원을 투자받았다. 의·치·한·약 중 치의학 투자가 가장 낮은 셈이다.
실제 치과 패싱은 여러 기관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교육부가 지난 3월 11일 전공의와 지역의료인의 효과적인 교육·훈련을 위해 임상교육훈련센터를 모든 국립대병원에 단계적으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치과병원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학문후속세대 육성에도 ‘먹구름’
더 큰 문제는 이런 기조가 치의학 미래를 담보하는 학문후속세대 육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고한 ‘2021년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의 경우 선발된 31명에게 각각 연간 1억원씩 최대 4년간 지원하지만, 이마저도 의사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울 모 치대 교수는 “한국 치과 임상이 많이 발전해 세계적인 수준이 됐는데,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임상 밑부분을 지탱하는 기초학문 분야가 발전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기초분야 학생 2~3명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학교에 있는 자투리 돈까지 끌어모으고, 학장도 재원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중인데, 의사만 지원 가능하다는 이런 공고를 볼 때면 허탈하고 자괴감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해당 사업을 공고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와 관련 “치과의사를 선발대상에 넣어달라는 청원이 계속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에 해당 제안을 전달했으며,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과 확대 시기 등은 밝히지 않았다.
#범국가적 치의학 연구기관 필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대표적 기초연구사업인 ‘기초의과학분야 선도연구센터(MRC·Medical Research Center)’에서도 치의학 소외 현상은 뚜렷하다.
한국연구재단이 공개한 ‘21년 MRC 지원계획 수립 절차’에 따르면, 올해 발주하는 신규과제 4개 중 의과학(기초·응용의학)이 3개를 차지했다. 치의학과 한의학, 약학은 기타 분야로 묶여 단 1개의 과제만이 주어졌다.
해당 사업 관계자는 “의학 분야 파이가 워낙에 큰 데다 요구사항이나 수요가 많아 의과 쪽에 많은 과제를 배정했다”며 “추후 예산이 확대되면 치의학 등 기타 분야 요구사항도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며 날 선 반응도 나온다. 일부 연구자는 “애초에 4개 중 3개를 의과에 주고 나온 게 아니냐”며 “이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필요성에 대한 제언도 잇따랐다. A치대 학장은 “치과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국내 치의학 수준이 세계 정상권으로 발돋움하는 이 시기에, 연구할 비용이 부족하다는 건 치의학과 관련 산업 발전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추후 치과 분야가 국내 수출에 기여하고, 차세대 먹거리로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범국가적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며 “만약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설립된다면 치의학 발전을 앞당기는 것뿐 아니라 관계 분야까지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