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치과의사의 편의를 위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치과에서 의과로 보낸 진료의뢰서가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의과에서는 요청대로 회신했다가 발생 가능한 부작용의 책임 소재를 따지며 민감한 모습이고, 반면 치과에서는 의과 측이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를 보인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일부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치과의사가 책임을 회피하고자 보낸 진료의뢰서에 그들의 의도대로 써주면 안 된다”는 내용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치과 진료의뢰서에 대응하기 위한 비공식 매뉴얼까지 공유하고 있다. 책임 소재에 대한 분쟁을 막기 위한 나름의 방책인 셈이다.
본지가 확보한 해당 매뉴얼을 살펴보면 “치과 진료 가능 여부 판단은 전적으로 담당 치과의사의 소관”이라는 내용을 토대로 치과 진료의뢰서에 대한 대응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회신에 발치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절대로 적어서는 안 된다”, “발치 시술에 걸림돌이 되는 내과적 문제가 없더라도 환자와 상황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시한다”, “치과 시술을 위해 항혈소판제 복용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의사가 내려서는 안 된다”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또 환자 사례에 따른 모범 답변도 예시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치과에서 의과로 보낸 진료의뢰서는 일부 내과나 가정의학과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다. 자칫 잘못 답변했다가 환자의 부작용 책임을 공동으로 질 수 있는 ‘폭탄’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내과 개원의는 “의사에게도 방어 진료는 중요하다”며 “치과의 진료의뢰서에 대한 회신은 의사가 마땅히 협조해야 할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치과의사의 부탁에 대한 답변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방어 진료 아닌 상생 진료 절실”
반면 치과 개원의들은 고위험 환자의 경우 진료하기에 앞서 담당 의사에게 의뢰서를 보내 환자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볼 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또 의과 측이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로 진료의뢰서를 회신할 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부작용 여부를 과도하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치과 진료가 늦어져 결국 환자 삶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훈 원장(이수백치과의원)은 “당뇨, 고혈압 등으로 약물 조절 중인 환자는 더욱 신중하게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특히 고령자의 경우 복용 중인 약을 모르는가 하면, 정서적 이유로 자신이 가진 병을 숨기는 경향이 있어 의과의 협조가 절실하다. 진료의뢰서를 통해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거나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우려는 거뒀으면 한다”고 말했다.
치과의사가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의과 측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정근 교수(아주대 구강악안면외과)는 “발치 등 관혈적 처치는 전적으로 치과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며 “혹시라도 발치 허락을 구한다는 뉘앙스로 의뢰서를 작성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법적으로도 치과의사에게 책임이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피력했다.
치과 약리학 전문가인 김영진 박사는 “골다공증 환자의 경우 파노라마나 콘빔CT로도 MRONJ(약제관련 턱뼈괴사) 등 부작용 위험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에 치과의사의 자존심을 걸고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역 간 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서준석 원장(서울S치과의원)은 “치협과 의협이 진료의뢰와 관련한 공식적인 매뉴얼을 만들어 회원에게 공지한다면, 일선 치과와 의과 개원의들이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또 치과의사의 내과적 지식을 강화하기 위해 치대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