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 (목)

  • 구름많음동두천 26.4℃
  • 구름조금강릉 29.7℃
  • 박무서울 26.5℃
  • 맑음대전 28.4℃
  • 맑음대구 30.2℃
  • 구름많음울산 31.3℃
  • 구름많음광주 29.9℃
  • 구름많음부산 28.3℃
  • 구름많음고창 29.3℃
  • 맑음제주 28.2℃
  • 구름많음강화 24.9℃
  • 구름조금보은 27.6℃
  • 맑음금산 29.3℃
  • 구름많음강진군 28.8℃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29.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옛 배다리의 모습 인천을 아시나요?

김식만 원장 ‘인천의 어제와 오늘’ 블로그 인천역사 ‘한눈에’
6대가 모두 인천 거주 토박이···주말마다 인천 곳곳 사진 담아

 

배다리, 홍예문, 답동성당, 만국공원, 신포시장......

위 열거된 단어들을 들은 인천 사람이라면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오래되고 낡은 동네...... 이제 곧 멈춰버릴 것 같은 시간이 흐르는 공간...... 어느 소양 부족한 정치인이 ‘이부망천’이라 칭하며 떠올렸을 인천의 이미지는 아마 이곳이었으리라. 그러나 인천 사람들에게 이곳은 청춘의 빛나던 순간을 함께 한 ‘명동’이었으며, 삶에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 발길하게 되는 ‘헤리티지’이다.

40년째 용현동 물텀벙거리 인근에 개원하고 있는 김식만 원장(김식만치과의원)이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 ‘인천의 어제와 오늘’은 이러한 인천의 옛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사진과 기록물, 김 원장 나름의 연구와 분석이 곁들여진 인천 역사의 보고이다.

송림초, 인천중, 제물포고를 거쳐 서울치대(29회)를 나온 김식만 원장은 자신의 손주들까지 6대가 모두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인천 토박이. 개원도 익숙한 고향 동네에 하게 됐는데 인천에 대한 애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뒤늦게 발현돼 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자신의 병원 근처 운행되지 않는 철길로 남아있던 ‘주인선(인천 주안역과 인천역을 잇던 철도)’이 어느 날 사라지고 그 곳에 공원이 들어서자 김 원장은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느꼈다.


 

 

김식만 원장은 “낡고 보잘 것 없었던 철도길이 사라지자 마음이 휑했다. 더 늦기 전에 수인선(인천과 수원을 잇던 철도)의 흔적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카메라를 구입해 주말이면 인천의 이곳저곳을 담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 ‘인천의 어제와 오늘’에는 김 원장이 직접 찍은 사진 외에 주요 신문사 영인본, 해외 기록물 사이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찾아낸 인천의 모습이 그득하다. 개항 시절 ‘제물포’, 국내 최초의 활동사진관 ‘표관’, 신포시장의 옛 모습 등을 거쳐 인천 상륙작전을 하는 미군들과 전쟁의 공포에 절규하는 인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과거 인천의 중심이었던 배다리와 제1경인고속도로가 처음 개통됐을 때의 모습, 서울 사람들도 많은 추억을 갖고 있는 송도유원지의 옛 모습 등은 인천의 역사를 고대로 보여준다.
 

 

#융합·조화의 도시 인천 추억
 

김 원장은 “흔히들 인천에는 역사가 없다 하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인천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특히, 고려시대 가장 융성했다. 고려 때 왕비가 많이 나와 왕의 고향 ‘어향(御鄕)’이라 불렸으며, 고려 정부의 37년 피난 수도 강화도는 고려시대 유적의 보고이다. 또 개항,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도 빼 놓을 수 없는 도시가 인천”이라고 했다.

또 김 원장은 “지리적으로도 육지보다 섬의 면적이 더 큰 특징을 갖고 있고, 인천의 갯벌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생태계가 풍부하다. 그래서 인천의 수산물이 맛도 뛰어나고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양한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문화도 재미있다. 개항 시기에는 일본인들을 따라 영남, 부산의 인구가 많이 올라왔고, 이후에는 충청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다. 산업화 시기에는 호남 사람들, 6.25때는 황해도에서 피난민이 많이 내려와 정책했다. 이들이 인천 토박이들과 융합하며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60년대 현재의 인천 중구 배다리를 중심으로 1호선 라인을 따라 점차 제물포, 주안, 간석동으로 뻗어나갔다. 이후 9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연수동과 2000년대 서구와 논현동 일대, 그리고 현재 국제도시 송도에 이르기까지 그 확장성은 전국 최고라는 설명. 부평은 본류 인천과는 역사적으로 도호부가 다른 지역으로 사람들이 보다 자유분방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의견이다.    

김 원장은 “집값이 싸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억척스레 살아온 사람들의 이미지가 있어 그런지 인천의 이미지는 짜고, 어둡다. 인천 토박이로서 안타까운 부분”이라며 “인천은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갈등 없이 조화롭게 잘 어울려 사는 동네다. 특히, 내가 느낀 인천시치과의사회의 동료들은 어느 곳보다 단합이 잘됐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인천지부 총무이사와 감사를 역임했다. 그의 블로그에서는 임영균·최범용·오재덕 원장 등 초창기 인천지부 회장들부터 이교인·김건일·이근세 원장 등 비교적 최근 회장들을 볼 수 있다.

김식만 원장은 “내가 개원하고 있는 용현동도 서민들이 많은 지역이지만 경팍하지 않고 정겨운 이웃들이라 여기서 오래 일하며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며 “인천은 언제나 국제도시였고, 지금도 꾸준히 인구가 느는 유일한 광역시다. 과거의 모습부터 첨단도시 송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간이 되면 배를 타고 나가 덕적도, 굴업도, 무의도 일대의 비경도 즐길 수 있는, 아는 만큼 보이는 도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