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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의사결정이란 무엇인가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로컬에서 진료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환자의 요구에 맞추는 것일 텐데요. 이게 저만의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닌가 봐요. 잘 모르지만 공유 의사결정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것을 통해 환자가 결정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러면 환자에게 책임을 전부 넘기는 것 같아 어딘지 잘못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익명


최근 진료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공유 의사결정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많은 선생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개념이 무엇인지 접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단어가 주는 인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공유” 의사결정이니, 환자와 함께 치료 과정에서 결정을 내리면 되겠구나 하는 것이죠. 맞는 말이긴 한데, “함께 결정을 내리는” 일을 어떻게 할지가 중요합니다.


일단 “함께”라고 하지만, 결국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한 명입니다. 이를테면, 명절 때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에 대해 의견 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요. 스마트폰의 발달로 이제는 점차 보기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요. 아버지는 뉴스를,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이때 함께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뉴스를 30분 보다가 드라마를 30분 본다거나, 텔레비전 화면을 반씩 나누어 뉴스와 드라마를 동시에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뉴스를 보던, 드라마를 보던 해야 하죠. 즉, 아버지나 어머니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는 겁니다.


의료적 상황에서의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인과 환자의 견해가 같다면 굳이 의사결정의 방식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한편, 치료 선택지가 여러 개 있는 상황에서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고 선택지를 뒤섞거나 절충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의료인과 환자의 견해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환자의 주관적인 선택을 배제하고 의료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을 후견주의 또는 가부장주의적 의사결정이라고 부릅니다. 이쪽은 의료인이 위에, 환자가 아래에 있는 전통적인 의료적 위계를 따라 의료인의 선택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요. 환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일차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현대 의료윤리의 관점에서 보아도, 의료인에게 학문적, 수행적 전문성을 제외하면 사회적,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보아도 과거의 가부장주의적 의사결정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반대편에는 환자의 선택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고, 의료인은 환자의 결정을 수행하기만 하는 소비자주의적 의사결정이 있습니다. 이쪽은 경제 논리를 따라, 지불 주체인 환자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비스 제공자인 의료인은 상품 판매자에게 부여되는 의무인 기만(deception)과 사기(fraud) 금지를 따를 것만을 요청받습니다. 환자 단체에서 이런 소비자주의적 의사결정을 주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만, 소비자주의적 의사결정의 전제는 의료영리화입니다. 의료인이 서비스 제공자로 자신을 다시 규정할 수 있을 때만 소비자주의적 의사결정은 제대로 작동합니다. 미국은 의료의 영리적 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고, 그 한계를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공공 서비스로 보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 덕에 환자는 세계 최고의 치료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만, 의료비가 폭증하고 회사에서 의료보험을 들어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 어려워진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요. 한국은 의료영리화와 공공 의료로 딱 끊어서 구분하기 어려운 특별한 제도를 지금까지 구축해 왔으며, 의료영리화를 선택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요. 따라서, 소비자주의적 의사결정을 따르는 것은 전제 상 오류입니다.


가부장주의와 소비자주의 둘 다 아니라는 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의료인이 결정을 내려선 안 됩니다. 환자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한 사람이 내려야 합니다. 이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공유 의사결정입니다.


공유 의사결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의료인이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충분히 설명한 다음, 의료인과 환자가 함께 선택지에 관해 상의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과정을 설명 대화(choice talk), 선택 대화(option talk), 결정 대화(decision talk)의 세 단계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설명하는 것은 이미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라는 윤리적·법적 원칙으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동의서를 가지고 환자의 이득과 위해를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동의 확인을 서명으로 받는 과정을 말하죠. 공유 의사결정은 여기에 과정을 더 추가합니다. 먼저 의료인이 환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고 환자가 추가적인 탐색을 할 시간을 부여합니다. 다음, 의료인과 환자가 다시 만나 선택지 중 어느 쪽이 좋을지 논의 또는 상담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환자와 의료인이 선택지를 놓고 함께 탐색하는 과정이 있기에 “공유” 의사결정이라고 부릅니다. 상담 과정에서 의료인은 자신이 환자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쪽에 아무래도 힘을 주어 설명하겠지요. 하지만 최종 결정은 환자가 내립니다. 이때, 책임은 의료인과 환자가 공유하게 됩니다. 의료인은 자신이 선호한 선택지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환자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이런 상담 시간을 가지려면, 정책으로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상담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의료인 쪽의 호의나 헌신으로만 추구하면 실효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따라서, 국민보험공단이 공유 의사결정의 상담 과정을 인정하여 선택 대화 또는 상담에 보험 수가가 부여될 때만 공유 의사결정은 우리나라에서 시행 가능한 제도가 됩니다.


신부전 환자에서 혈액 투석을 결정하는 경우 공유 의사결정을 활용, 결정 상담에 수가를 부여한 것이 지금까지 유일합니다.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여러 진료와 영역으로 이런 과정이 확장되려면 공유 의사결정을 위한 상담이 비용-효과가 있음, 다시 말해 상담을 통해 전체적으로 의료비가 절약됨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난한 길이 되겠지만 이 방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적 선택이므로, 점차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