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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斷想들

Relay Essay 제2469번째

1. 중국집에서
짬뽕 하나와 짜장 한 그릇을 시켰는데 짬뽕 두 그릇이 나왔다. 동석자가 짬뽕을 싫어하는지라 짜장 한 그릇을 추가로 시켰다. 종업원이 안절부절 미안해하면서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하는데 개의치 말라 하였다. 짬뽕 면을 절반 정도만 먹고 해물 등 내용물을 건져 먹었다.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이 고맙다고 복 받으시라 하였다. 주인은 한 그릇 더 팔아 이윤을 남겼고(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나는 복 받으라는 소리 들었으니 서로 득본 셈이다. 배부르다.


2. 성당에서
600명 들어가는 규모이니 방역수칙에 의해 60명이 참여할 수 있는데 30명이 채 안 되는 신자들이  미사 드리러 오셨다. 복잡거리는 것보단 고요함과 적막감이 마음을 충만케 하는 뭔가가 있어  좀 더 미사에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은 편안했지만, 이 코로나19가 언제나 잠잠해 지련지. 성가를 부를 수 없어 미사의 장엄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홀연 피아노 반주가 울리고 젊은 남성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긴장하여 귀 기울이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답고 청아해 난 감동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사가 끝났어도 난 그 여운을 좀 더 간직하고자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전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직을 고려하라고. 나의 진료를 통해 내가 어제 받았던 그런 감동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을까?  단 한번이라도.


3. 아픈 이와 통화하다
큰 병중에서 고생하다 이제 회복하고 있는 지인하고 통화를 하였다.
내가 어떤 위로의 말을 드려도 그 분에게는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아픔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니까요. 다인 병실이 너무 힘들어 막바지에는 무리해서 1인 병실을 이용했는데 병실 이용료만 하루에 45만 원이라면서 건강할 때 좋은 호텔 한번 가보지 못하고 병들어 비싼 1인실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며 낙담해 한다.


우리는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최고로 행복한 하루라는 걸 알면서도 왜 느끼지 못할까. 난 앞으로도 잘 모르면서 살겠지?


4. 내 얼굴은 뭘 발라도
겨울 칼바람에 내 피부가 텄다고 아내가 화장품을 하나 주었다.
본인도 친구가 선물 준 것인데 비싼 거라 하였다.


냄새 맡아보니 은은한 향이 좋고 피부에 발라보니 착 스며드는 게 그만이다. 역시 비싼 게 좋은 것이구나.
이 주간 열심히 발랐더니 거친 피부가 좀 진정된 듯하다. 딸이 집에 와서 내 화장품을 보더니 웬 클렌징 폼이 여기 있네 하면서 아빠 이걸 얼굴에 발라요? 하였다.


아뿔싸, 내가 그동안 열심히 발랐던 값진 외산 화장품은 로션도 아니고 에센스도 아니고 피부의 이물질을 닦아내는 비누 같은 것이었네. 클렌징 폼을 발라도 거친 게 진정되는 60년이나 된 나의 막 피부에 경의를 표한다.


5. 자유가 필요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3미터에서 6미터라 한다.
너무 촘촘하면 양분을 두고 서로 다퉈 생육에 지장이 있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외로워 잘 크지 않는단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 필요할 만큼의 거리. 서로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서로 집착하지 않고 자유를 줄 수 있는 거리, 그 거리와 간격은 얼마일까?


6. 단골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시면
치과치료 받으러 오실 때 나이 드신 부부들은 대게 함께 오신다. 두  분이 다  치료 받지  않으시더라도 같이 오신다. 그러다 몇 개월, 몇 년 뜸하다 우울한 표정으로 한 분만 오시면 대게는 배우자가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 식사는 안 하시고 막걸리만 드신다고 치과만 오시면 할아버지를 구박했던 순애 할머니가  며칠 전 오셔서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눈물바람 하셨다. 구박이 구박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이셨겠지. 풍채도 멋지시고 목소리도 너무 좋으셨던 철영 할아버지는 치과만 오시면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다고 걱정을 하셨다. 할머니가  어제 오셔서 철영 할아버지가 6개월 전 뇌종양이 발견되어 투병 중 돌아가셨다고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 걱정하시다 자기 몸 아픈 걸 놓치셨나 보다. 환자 분이 오랫동안 치료 받으러 오시다 돌아가셨단 소식을 접하면 가족을 잃은 슬픔은 아니지만 몹시나 허전한 마음이 든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기도하면서 빌었다.


7.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밝히다.
죽어서 자신의 신체가 훼손되는 게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영혼이 떠난 육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생존에 필요한 분에게 아낌없이 주자는 생각으로 장기와 뼈 등 모든 것을 기증하기로 했다. 당연히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도 하였다.


마지막 숨을 쉬면서 인생이 짧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았어도, 많은 재산이 없어도 아름다운 추억, 좋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행복한 마무리를 한다면 잘 살아온 삶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