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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통과의례

임철중 칼럼

칼럼 ‘송년음악회’에서 ‘Memento mori!’를 화두로 삼았다(2018). 알 수 없는 종말에 한 살 더 다가가는 두려움을 잊자는 망년회(忘年會)가 아니라,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반성하고 보내는 송년(送年)회로 하자는 이야기였다. 인생의 여정에서 “잊는 것(forget)보다 보내는 의식(bid the year out)”이 더 능동적이고 건강한 통과의례(Rite of Passage)가 아닐까?

 

2003년 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를 만들고 버거운 회장직을 10년간 역임하면서,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 연주회 참석이 송년의식 제1호가 되었다. 고금동서를 통하여 성인 성자가 붙은 유일한 악성(樂聖) 베토벤의 예술적인 성취와 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인간 의지의 승리에 대한 그의 확신과 열정에 우리는 고개를 숙인다. 관현악곡에 인간의 목소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운명 교향곡에서 육성에 가까운 오보에 연주로, 다시 합창환상곡에서는 합창으로 실험했지만, 16년의 숙성기간을 거쳐 드디어 합창 교향곡으로 결실한 것이다.

 

제1에서 3악장까지 보통 교향곡보다 긴 45분쯤에 더하여, 다소 무질서(?)한 4악장 전주 부를 인내해야 비로소 베이스로 시작하는 혼성 4중창과 합창에 이르는, 이미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의 작곡 설계가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마치 “서로 껴안아라! 만인이여,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는 쉴러의 시어(詩語)와 자신의 영혼을 쥐어 짜낸 선율을 받아들일 만큼, 예열과 몰입이 되어있는지 관객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대전 시향의 ‘합창’ 연주는, 아트홀 무대 뒤편에 6층의 계단을 조립하고 한 줄에 스물 남짓, 지방 3개 도시가 연합하여 대략 130명 규모의 합창단이 출연한다.

 

합창은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거인의 목젖 떨림처럼 듣는 이의 심장까지 쿵쿵 울려준다. 지난 한 해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씻어주고(赦; Absolve) 오는 새해를 꿋꿋하게 살아낼 기(氣: Life force)를 불어넣어 주는 어떤 절대자 앞에 선 듯, 온몸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 빠뜨릴 수 없고 행복한 통과의례다.

 

지난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으로 전 세계가 축제 준비로 달아올랐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Covid-19의 팬데믹! 그 많던 행사계획이 줄줄이 축소·취소되고, 당연히 연말 ‘합창’ 공연 또한 증발해버렸다.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live no, exist yes)하는 소용돌이 속에, 연말연시의 통과의례마저 엄벙땡 넘어갔다. 마치 창살도 달력도 없는 감옥에 갇혀,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대하소설을 대충대충 읽은 것처럼.

KBS 교향악단 제773회 정기연주회가 정명훈의 ‘합창’을 올린다는 뉴스에 선뜻 러브 콜을 보낸 이유였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라서 서울 시내 교통편도 복잡한데다가 어렵게 구한 초대권마저 깜빡 빠뜨리고 상경하여, 핸드폰에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사정사정 끝에 공연 15분 전 볼펜으로 적은 임시 입장권을 받아낸 해프닝도 있었다.

 

한해를 거른 탓도 있겠지만, 역시 KBS는 국제무대에도 손색없는 악단이요, 연주 전 몰입하는 모습마저 마에스트로 다운 정명훈은, 우리의 자랑이요 상임직을 버린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커튼콜 장면마저 부드러웠다. 옥에 티라면 3악장에서 플롯이 약간 튀는 듯한(bossing) 느낌과, 서울의 공기 탓인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밭은 기침소리 정도일까?

 

코로나 여파로 백 명 정도인 합창단은 모두가 복면가왕들(Masked Singers!)이었다.
연습과정부터 얼마나 숨이 차고 힘들었을까? 긍정적으로 들으니까 오히려 필터를 통한 화음이 더 부드럽고, 악단 연주도 약음기를 장착한 듯 조금씩 숨을 죽여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코로나 통금 탓에 단 한 곡만 올린(70분) 미안함 때문인지 정명훈은 앙코르를 받아주었다. 천국의 딸(Tochter aus Elysium) 부분 합창의 되풀이였지만, 관객 모두가 열광하고 만족한 표정이었다. ‘폭격 속의 연주’처럼 연극이나 연주회 참석이야말로, 관객으로서 ‘일상의 회복’에 앞장서는 일이 아닐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