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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총대를 멨나요?

시론

새 학년을 앞둔 2월이면, 으레히 2학년 총대? 학생이 찾아와 면담을 요청한다. 새 학기 수업에 필요한 교재와 준비물, 전달 사항을 미리 확인하려는 것이다. 어떤 분들에겐 총대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필자의 출신 대학에서는 과대(과 대표의 줄임말)라고 했고, 학기별로 선출했으나, 필자가 근무하는 이곳 대학에서는 총대라 부르며, 임기는 해당 학년 전체 기간이다. 총대라는 말이 총 대표의 줄임말로 추측되지만, 개신교 각 교단의 총회의 대의원을 일컬을 때도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2학년 총대가 찾아왔고 1학기 예방치과학 강의 및 실습 수업 계획과 교재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총대에겐 긴장된 첫 만남이겠지만, 매년 새로운 총대를 만나는 필자에겐 또 다른 인연의 첫 만남인 것이다.

 

총대를 처음 만나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왜 총대를 멨는가? 이 말 뜻 그대로, 아무도 나서서 맡기를 꺼리는 공동의 일을 대표로 맡은 이유를 물은 것이다. 필자도 대학생 시절 2학년 1학기 과대를 맡은 적이 있지만, 지금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할려는 사람이 딱히 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창시절 반장 한번 못해본 아쉬움의 발로였다. 이 질문에 총대들은 매번 같은 답변이다. 자기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아무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대는 왜 자신이 한다고 했던 것일까?


필자가 속한 대학의 학년 총대를 뽑는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자원한 후보에 대한 투표를 통해 선출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이 매년, 모든 학년에서 반복되면서 우리 대학 고유의 선출 방식으로 자리잡은 방식이다.

 

학생들은 직전 학년 말에 다음 학년 총대 선출을 위해 강의실에 모인다. 직전 총대단의 주재 하에, 모든 학생들은 휴대폰 포함 모든 소지품을 반납하고 자리에 착석한다. 그 이후, 일체의 미동과 대화도 허용되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시간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차기 총대뿐이다. 오후에 시작된 침묵은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이 있지만,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귀가 후 다음 날에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선출방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선출된 총대를 처음 만나게 되면, 축하와 기대보다는 측은한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인지한 학교에서도 상당 금액의 장학금을 총대에게 지원하지만, 1년이라는 긴 임기동안 타 학우들의 학습 지원을 위해 할애해야 하는 수고와 개인시간, 학업 손실,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지켜본 학생들은 선뜻 나서서 자기희생을 각오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총대를 멜 누군가는 꼭 필요하다. 개인적인 제안은 타 대학처럼 1년 단위의 임기가 아니라, 한 학기 단위로 과대표를 뽑고,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출하는 방식이다. 부디 이러한 필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학년이 나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학생 자치뿐만 아니라, 필자가 속한 여러 조직에서도 움트고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는 교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대학이나 학회의 임원이나 보직을 선뜻 나서지 않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보직에 대한 명예와 권한은 축소되고, 책임과 의무는 더 커졌으며, 구성원들의 날선 감시와 요구는 높아진 상황이다. 섣불리 교수 개인이 조직과 구성원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동체엔 언제나 총대를 멘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람이 있다. 자신의 시간과 심신을 희생하여 우리의 일상을 당연하게 지켜주고 있는 그들에게 진정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총대를 메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