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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생각하다

시론

몇 년 전에 우연히 마광수 교수의 시집 ‘시선’을 읽다가 그분 시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출판된 서적을 찾아보니 굉장히 많아서 예전에 읽었던 몇 권의 소설외의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소장하게 되었다. 대개 마광수 교수에 관하여 논란이 된 소설 ‘즐거운 사라’나 수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쓴 연세대 국문학 교수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나마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언론을 통해 외설작가로 낙인이 찍혀 많은 작품들이 덩달아 매도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가 만난 사람들 상당수가 마광수 하면 외설작가로 인식하고 터부시 하는 것 같았다. 그분의 책 한 권이라도 읽어봤냐고 물으면 대개가 TV를 통해서 전해들은 게 전부란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독특한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문인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인식되어 있으니까... 페미주의, 반페미주의, 새디즘, 마조히즘 등을 별개로 하고 그분의 글들이 나로서는 무척 재미가 있고 읽기가 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책을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묘한 매력에 끌리게 되었다.

 

그 당시(80~90년대쯤)의 엄격했던 도덕적 잣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편견을 버리고 실체를 연구하고 싶은 나만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분이 생전에 저술한 79권(필자가 아는 한 시집 열권을 포함하여)의 책을 모두 구해서 무작정 읽었다. 그분의 저서 중 첫 작품인 시집 ‘광마집’만 구하지 못해 전자책을 구입한 후 일일이 원문 그대로 타이핑해서 나만의 광마집을 개인 소장용으로 제본해 간직하고 있다. 마광수 교수는 우리나라 최연소 국문학 교수가 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하고 화가셨다. 그래서인지 부분적으로 시풍은 시인 윤동주와 맥을 같이하는 느낌(주관적 판단)이 들었다. 원래는 화가의 길을 가고 싶었는데 가난한 형편 때문에 연세대에 입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국문학을 전공하셨다 한다.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을 겪은 후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사시며 평생 고독과의 싸움을 하며 많은 저서를 남기셨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컴맹이라 대부분 수기로 작품 활동을 하셨다고 했는데 일일이 원고지에 직접 쓰거나, 타자기에 의존하거나 독수리타법으로 글을 쓰느라 강의시간 외에는 거의 집필에만 평생을 쏟으신 것 같다. 그의 저서를 읽다 보니 많은 부분이 중복된 것도 있고 외설스러워 민망한 부분도 꽤 있었다. 하지만 ‘시학’을 읽으며 독학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후에 필자를 지도해주신 선생님께서 유명 시인의 시를 필사하는 것도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셨다.

 

살아생전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모습도 종종 봤지만 몸이 허약한 체질이신데다 필화사건으로 평생 마음고생을 많이 하셔서인지 그분의 재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듯해서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분의 생전 모습은 갸름한 볼에 발음이 어눌한 느낌이 들었는데 형편이 넉넉지 못해 돌팔이에게 치과 치료를 받다가 치주염이 악화되어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그분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필자가 치과의사이다 보니 눈에 확 들어왔다. 요즘시대에 틀니나 임플란트가 보험치료가 돼서 경제적 부담이 많이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개원하고 있는 이곳은 시골이라 아직도 치과돌팔이가 많다. 사회를 좀 먹는 돌팔이들이 약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파고들어 값싼 치료로 환자들을 현혹하며 구강질환을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돌팔이들이 임플란트 시술까지도 하고 그런 자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니 치과의사로서 새삼 경각심이 느껴진다. 돌팔이 치료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분의 떠나기 몇 년 전에 출간한 선별 모음시집 ‘시선’에 수록된 ‘자살자를 위하여’란 시를 읽으며 염세적인 성향으로 그런 선택을 하셨나 하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에 반해 40년 전, 그분이 20대 쓴 첫 시집 광마집에 그 시가 수록된 것을 보면 많이 다른 게 느껴진다. 필사한 그의 첫 시집 ‘광마집’은 1951년생인 그분이 십대에서 이십대에 걸쳐서 쓴 시들인데 정신적으로 꽤 성숙된 느낌을 준다. 사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광마의 생각을 엿보는 게 색다르게 와 닿는다. 초기 작품에는 외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는데 연이어 나온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그 당시의 풍조에 상당히 실망하셨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소설 ‘즐거운 사라’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선 출판금지 되었지만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사라라는 여주인공의 이름도 사랑의 ‘ㅇ’을 뺀 순수 한글 이름이다.) 요즘 들어 도덕이 무너지고 욕설이나 비속어가 유행어가 된 세태에 마광수 교수의 자연스럽지 않은 표현들이 뒤섞여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이 안 되지만 여하튼 우리에게 많은 흔적을 남기셨다. 훗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외설시비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문학과 예술에 기여를 하신 분으로 기억되길 빌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분을 생각하다

-마광수를 생각하며-

 

세상 삐딱하게 바라보기

관능적 배설

지적 유희에서의 탈피

자신 있게 드러내 놓기

내적 금기의 금기

 

품고만 있었던 광마

괴팍스런 세계

예술과 외설의 경계

감춤과 들춤의 부조화

내던진 현실에서의 자유

 

찾으려니 저 멀리에

무심한 세월

우수에 젖은 무게

점점이 쌓인 흔적들

저세상이 있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