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敎育者)의 교육은 도자기공의 그릇을 빚는 과정과 비슷하다. 좋은 그릇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좋은 흙, 건조할 바람, 유약, 가마의 불,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한 명의 치과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자질, 환경, 교육, 그리고 가르침을 전하는 교수뿐만 아니라 동기와 선후배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마치 그릇을 빚는 것과 같다.
우리는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이라고도 하며 노동력이 아닌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이끈다. 다양한 산업과 기술이 지능정보화를 통해서 융합되고 있다. 현대의 교육에는 어느 분야나 정보화를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사실, 어느 시대이든 정보는 생존과 삶에 중요하다. 구석기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정보화(informatization)와 정보(information)의 어원을 우선 살펴보자. ‘포르마(Forma)’는 라틴어로 형상과 형태의 의미를 포함하고, in은 ‘~안에’를 뜻한다. 어떤 것 안에다가 형상이나 형태를 집어넣는 것이 정보화인 것이다. 어떤 것의 ‘틀’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흩어져 있는 흙으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도자기공의 혼을 불어넣어 손으로 빚고 불을 조절해, 흙덩이를 질료(質料)로 바꾸어야 형상화된다.
형태(形態)란 사물의 생김새, 즉 모양이다. 형태는 전체를 하나로 통합한 대상을 일컫는다. 부분 부분을 모은 집합의 개념이 아니다. 그릇의 형태를 잘 잡아준다는 것은 부분 부분의 좋은 모양들의 합이 아니다. 좋은 형태의 그릇이란, 그릇을 만드는 목적에 맞게 전체적인 크기, 비율, 색상이 잘 어우러진 하나의 대상인 것이다. 형상(形相)은 모양 형(形)과 서로 상(相)이 합해진 단어이다. 서로 상은 바탕 상으로도 훈음을 달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플라톤(Plátōn, 424/423 - 348/347 BC) 역시 한 사물의 바탕이 되는 이상적인 것을 형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기원전 387년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을 설립하였고, 산술, 기하학, 천문학, 철학을 가르친 바 있다.
교수가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교육’이다. 포르마와 교육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플라톤은 『향연(Symposium)』에서 스승의 역할은 제자에게 ‘사랑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라 하였다. 제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삶은 아름다움 자체, 형상들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어야 인생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논하였다. 교육을 통해서 제자가 포르마의 총체인 이데아를 보게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안내하는 사람이 교육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élēs, 384-322 BC)는 플라톤의 제자로 형상의 개념을 구체화시켰다. 그는 형상이 지성적 형상과 시각적 형상이 있다고 보았다. 어떤 그릇을 빚어낸다고 할 때 우선 머릿속에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그리게 된다. 그릇에 대한 지성적인 형상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다. 시각적 형상이란, 눈 앞의 그릇을 똑같이 만들고자 할 때 눈에 보이는 시각적 형태를 가짐을 말한다. 이 두가지 모두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으로 보았다. 예비 치과의사 교육에 있어 형상화란, 이 사람이 어떤 치과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교육자의 생각과 어떻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비전(지성적 형상), 그리고 선배 치과의사들의 모습을 모방(시각적 형상)하는 과정이 버무려져서 이루어진다.
그릇의 크기는 흙이 가진 성질에 기본한다. 한 사람의 그릇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는 옛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그릇의 크기가 크다고 다 빛나는가? 오래 가는가? 쓰임에 맞게 잘 만들어지고 사용이 되어야 빛이 난다. 어느 시대이든 일맥상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도자기공은 그릇에 대한 애정으로 형상을 더 여물고 빛나게 해줄 의무가 있다. 그릇이 ‘그릇’이 되느냐, ‘예술품’이 되느냐는 후에 기회가 있다면 고찰해보고 글로 옮기도록 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