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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Relay Essay 제2506번째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도, 지워버렸으면 하는 부끄러운 기억도 있고, 가슴 저린 아련한 기억도 있을 수 있지요.

 

필자는 73년 경희치대를 졸업하고, 3년의 조교생활을 거친 뒤, 76년 3월 군의학교에 입교했습니다. 그곳에서 군 후보생 교육을 받고 치과 군의관 대위로 임관해 서부전선 최전방인 어느 육군 보병사단에 배치받고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사단은 한국전쟁 때 미군과 경쟁하면서도 평양에 최우선으로 입성해서 세계 전쟁 역사에도 기록된 최정예 사단으로 유명했습니다. 압록강 물을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친 전설적인 부대였고, 국군 창군 시 모태가 된 부대이기도 해서 역대 군 고위 지휘관들이 대부분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아무튼 몇 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자마자 대위 계급을 달고, 사단 사령부 의무대 치과 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다보니 급격히 변한 환경에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대학이라는 온실에서 자라던 화초였다고 할까요.

 

그럭저럭 군 생활에 적응할 즈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판문점 안 남측지역에 있는 미루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북측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이곳을 관할하는 유엔군 사령부측이 미루나무를 자르려 했고, 이에 북측 병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와 미루나무 절단을 방해했습니다. 쌍방 간에 옥신각신 시비가 벌어졌고, 와중에 북한군이 미루나무 절단에 쓰려던 도끼를 빼앗아서 미군 보니파스(Bonifas) 대위를 무참히 살해한 소위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해 양측이 교전 상황 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순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비상이 발령되면, 일반 부대는 보통 출동준비를 하고 경계태세로 들어가지만, 의무대는 병실에 환자가 있으므로 환자 후송 준비를 마치고 비상이 해제될 때까지 대기하며 며칠이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치과 치료실 구석에는 치과 군의관실이 있었는데, 탁자에는 군용모포가 펴져 있어 언제라도 카드게임이 가능했습니다. 탁자 바닥에는 ‘오고가는 현찰 속에 확립되는 훌라 군기’라는 익살스러운 글귀가 각인돼 있어서 보는 이들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훌라 멤버는 필자를 포함한 치과 군의관 두 명, 의무참모를 포함한 군의관 두 명, 육군3사출신 의정장교 K, 식검반의 ROTC 출신 수의장교 H 등이었는데, 우리는 이듬해 봄 인사이동 시기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전역 후, 조선치대에 몸담고 있을 80년대 중반 무렵, 필자는 서울 신광여고에서 치러진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조선치대 출신을 격려하러 갔다가, 마침 그곳에서 사복차림이지만 아직은 짧은 머리를 한 K를 만났습니다. 마침 저와 마찬가지로 모교 후배를 격려하러 온 것이지요. 당시 그는 군 위탁 장학생으로 선발돼 성대 약대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진급 후 육군본부 의무감실 의약담당관으로 있었습니다. 1977년 전방사단에서 헤어진 후 처음이니 정말로 반가운 해후였습니다. 그 후, 전방사단에 근무한 조선치대 출신들이 그곳의 의무참모가 필자의 안부를 묻더라는 소식을 간간히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2000년 3월, 필자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선치대를 떠나 경희치대에 부임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성적우수자 전형의 입시 면접관이 되어 속초여고에 재학 중인 여학생을 면접하게 됐습니다.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서 물었고, 그 여학생은 자신의 부친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설명하는데, 듣고 보니 필자가 알고 있는 K의 이력과 같았습니다. 내색하지 않고 살며시 그 여학생의 입학원서를 보니, 정말로 K의 딸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알고 보니 K는 의정 중령으로 전역 후, 속초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 어느 해인가 설악산 콘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면서, 마침내 필자는 K와 속초 바닷가 횟집에서 수십 년 만에 해후했습니다. 제가 면접했던 둘째 딸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돼 있었습니다. 큰딸은 필자가 몸담고 있던 경희대학교의 의대를 졸업해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K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진 경희대 한의학과 선배님이 계신데, 이 분은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딸들을 각각 의사와 약사로 키워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배 둘째 따님의 사돈댁 총각이 K의 큰 사위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 이구아수에서 열린 IADR학회에 참석하면서 이 선배님 댁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런 말을 전해듣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 후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선배와 K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사람의 인연이 이런 것인가요?

 

이후 K는 의무대에서 같이 근무하며 호형호제 할 만큼 가까이 지내던 한 중위의 소식을 매우 궁금해했고, 필자는 미국 뉴저지 주 어느 의과대학 병리학 교수의 사진과 이름 등이 그 중위와 일치하다는 걸 알게 돼 즉시 K에게 연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당시 치과반에서 같이 복무했던 동료와 아직도 소식을 주고받고 있으니, 오래전 서부전선 최전방 보병사단에서 시작된 인연의 끈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