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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개원 원장의 Burn Out과 Time Off

박병기 칼럼

1993년 3월에 가입한 토행독(토요일의 행복한 독서)에서 이번 주에 존피스, 맥스 프렌젤 공동저자의 Time Off (이토록 멋진 휴식)를 진행한다. 토행독에서는 3개월 단위로 12권 전후 책을 선정한다. 책이 선정되면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진행하고 싶은 책을 정한다. 매달 3째주 토요일 진료를 하지 않기에 편하게 독서진행을 할 수 있어 Time Off (이토록 멋진 휴식)를 선택하였다. 책을 선택하면 1달 전부터 진행을 준비한다.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일과 휴식의 전환을 잘 이룬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잘 쉬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칼같이 퇴근해 휴식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된 일을 잊을 만큼 휴식을 즐긴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보면 워라밸의 본질은 ‘시간’의 균형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work,노동)과 ‘하고 싶은 것’(life,놀이) 사이의 균형(balance)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도 한 통계조사에 의하면 무려 70퍼센트 이상의 직장인이 번 아웃(Burn Out)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Burn Out의 3가지 핵심 증상은 에너지 고갈과 피로감,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한 부정적인 신경증 및 냉소주의, 업무 효율 감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일하지 않는 휴식’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좋은 에너지로 채우는 의식적 휴식’이다.

 

19세기 산업 혁명에 가속도가 붙을 즈음에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직업윤리’가 우리 문화와 심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박혔다. “신이 세상을 미완성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완성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며 노동과 도덕성을 결부시켜 노동은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신이 남겨놓은 미완을 완성시키기 위해 인간은 하겠다고 말 한 바를 해내고, 하루치의 공정한 분량만큼 일하며, 일을 존중하고, 동료를 존중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남이 쓸데없이 일하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 병목이 되지 않게 노동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만들어진 국민교육 헌장의 첫 문장에도 나타난다. ‘우리는 민족중흥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맡겨진 일을 충심으로 하라.

 

타임 오프(TIME-OFF)는 이 책의 원제이면서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사전적으로는 “일이 없는 한가한 시간, (활동의) 일시적 중단, 휴식” 등의 의미가 있지만, 타임 오프(TIME-OFF)란 본질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단지 며칠 휴가를 내거나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일을 넘어서서, 시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삶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는 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작은 순간을 소소한 기쁨으로 채우는 일도 포함된다.

 

1993년 4월 공보의를 마치고 광주 외곽인 광산구에 개업을 하고 진료를 하던 1994년 3월 동생친구 아버님께서 상악 의치를 하기위해 내원 하셨다. 지인 아버님이라 하나라도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Attachment 의치를 하여 드렸다. 처음 시도하는 Attachment 의치라서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환자분께서 많이 불편해 하셨다. 환자분은 광주 중심가에서 자영업을 하시기에 진료가 시작하기 전, 아니면 퇴근을 준비 할 때 치과에 내원하셨다. 그런지 2개월 어느 순간부터는 치과에 출근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다. 퇴근 시간까지 그분이 오시지 않으면 내일 오실 수 있다는 사실에 퇴근이 고통이었다. 그쯤 베일러 대학 조준영 교수의 치주 연수를 받았다. 국내 연수를 마치고 베일러 대학 2주 미국연수 신청하고 2주간 치과 문을 닫고 미국에 갔다. 1주일은 베일러 대학에서 치주연수를 하고 나머지 일주일은 라스베가스, 그랜드 케년, 하와이 관광을 했다. 연수를 마치고 첫 출근을 한 날 그 환자분께서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2주간의 Time Off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지대치 보철을 제거하고 C Clasp를 위한 보철을 만들고 C Clasp의치를 해드렸다. 그 뒤 어르신은 치과에 출근하지 않으셨다.

 

1997년 치과이전을 고민했던 시기이다. 가까이 개업해 있는 선배가 치과 이전 계획을 세우면서 치과 인수 의양을 물었다. 내가 개업하고 있는 곳보다 중심가에 위치하였기에 OK하였다. 선배 치과를 인수하기위해서는 개업한지 4년 된 치과를 인수시켜야 했다. 치과를 인수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치과 인수와 관련한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에 한국 리더십센터에서 하는 3박4일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워크숍’을 추천받아 다녀왔다. 토요일 일요일 포함 6일 간 진료실에서 탈출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6일간 남은 30년 치과원장으로서 나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교육과정에서 사명서를 만들었다. 결국 선배 치과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7년 치과 앞 오래된 5층짜리 연립 주택이 재개발을 시작하였다. 주민이 하나, 둘 동네를 떠나고 건물 허무는 소리와 덤프트럭이 오가는 소리 그리고 먼지가 온 동네를 뒤덮는다. 다행히 오래된 고객께서 치과를 찾아 주셨다. 25년 동안 한 장소에서 휴식다운 휴식을 하지 못하였던 나에게 Burn Out이 왔다. 매일 하던 모든 진료가 고통으로 다가왔다. 출근하기 전 거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절을 하며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원하였다. 2017년 12월 나의 상태에 대해 배우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입주가 시작되는 2020년 5월까지 안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8년 3월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후배를 만나 동업을 제안 하였다. 5월부터 2년간의 안식년을 시작하였다.

 

2022년 7월 7시에 출근을 하여 치과 내부 및 외부 환경을 정리한다. 그리고 예약된 환자를 체크하는데 10여분이 소요된다. 진료를 받기위해 오시는 예약환자 한분 한분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드리는 10분간의 Time Off 시간을 갖는다.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