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역이 의원과 약국을 품은 복합 메디컬 공간으로 변신을 꾀한다. 재작년 말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지하철역 개원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이다.
지하철역 상가는 일반적인 상권과 차별성을 띤 만큼 매력적인 요소들이 빛을 발하지만, 그 그림자도 짙다는 경고도 뒤따른다. 때문에 개원을 염두에 둔 예비 치과 원장의 경우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2년 전만 해도 병·의원은 근린생활시설에만 두도록 돼 있어, 건축물대장이 없는 지하철역 상가에는 개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2월, 도시철도법이 개정되면서 건축물 대장이 없어도 편의시설 관리대장이 있으면 지하철역 상가 개원이 가능해지게 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역삼·종로3가역에 의원·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메디컬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어 8~9월에는 합정·면목·학동·장승배기역에 도합 약 200평 규모의 상가 입찰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 지하철역에 입점 중인 의원은 총 4곳으로 역삼·잠실·디지털미디어시티·강남구청역 등에 위치해 있다. 진료과로는 정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등이 있을 뿐 치과는 아직 없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 ‘메디컬존’의 장점으로 하루 700만 명이 넘는 수송인구, 지하철역 주변의 수많은 잠재 고객, 지하철 이용객의 의료 접근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치과 개원 전문가들도 접근성, 유동인구 등을 바탕으로 환자 유입을 노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지하철역사 안에서는 시야가 집중되는 효과가 있어 마케팅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덧붙였다.
# 여러 장점 상쇄할 만한 리스크 산재
다만 이러한 장점을 상쇄할 만한 위험요소들도 곳곳에 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지상 상가의 몇 배에 달하는 높은 임대료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합정·면목·학동·장승배기역 메디컬존 상가의 월 임대료는 평당 23~37만 원이다. 합정역 상가 38평의 경우 월 임대료가 1419만 원으로 평당 37.3만 원인데, 서울시 전체와 마포구의 1층 상가 평균 임대료가 각각 평당 13만 원, 14만 원인 것과 비교해 2~3배의 시세 차를 보인다.
보증금도 월 임대료의 18개월분으로 역시 만만찮은 액수다. 또 이는 감정가로 나온 시세일 뿐, 상가 입찰이 경매로 진행되기에 실제 이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할 가능성이 높다.
치과 경영 전문가인 정기춘 원장(팀메이트치과의원)은 “경영 구조상 임대료 고정비 지출은 매출의 10%가 마지노선”이라며 “가령 38평이면 최대로 들어갈 수 있는 체어 수가 5대이고, 엄청 잘 되는 치과의 경우 체어 당 매출이 약 1500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지하에 위치한 상가 특성상 안전과 위생 문제에 취약하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위생에 문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코로나 이후로 환자의 위생 관념이 철저해진 만큼 병원 이미지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치과 경영 전문가인 강익제 원장(NY치과의원)은 “낮은 층고, 소음, 실내공기와 같은 실내 환경의 제약과 더불어 서울교통공사에서 요구하는 9시30분~20시 근무 등 빡빡한 진료 여건이 단점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지하철역 상가가 누릴 수 있는 특혜인 유동인구 유입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권 대표(브랜드본담)는 “주변에 주거인구가 충분치 않고 유동인구에만 기대어 개원할 경우, 코로나 등 외부충격으로 인한 환자 감소에 매우 취약할 수 있다”며 “또 노령층의 경우 계단이 많은 지하철역사의 치과 내원에 불편함이 없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