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질 때면 한강 시민 공원에 가서 연을 날리곤 한다. 산적한 일들의 규모가 가늠이 되고 대략의 개요가 잡힐 때가 연을 날리러 갈 시간이다. 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하면 복잡하게 얽힌 내 생각도 단조롭게 풀어진다.
연을 날리는 데 있어서는 바람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어떤 날은 얼레에서 실을 풀기가 무섭게 연이 날아올라버린다. 이런 날에는 실이 다 풀려 나간 얼레를 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 놓고 하늘 높이 오른 연을 구경해도 된다. 어떤 날은 내가 몸소 움직인 만큼만 연이 난다. 바람이 없는 날이다. 그런 날에는 전략이 좀 필요하다. 걷거나 뛸 수 있는 백 미터 이상의 땅을 확보하고 속도조절을 통해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연을 띄워 올려야 한다. 안 되는 날이라고 그냥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지면에서의 바람과 지상 십미터에서의 바람은 다를 수 있다. 연이 지상 십미터까지만 날아오르면 그 때부터는 연이 바람을 타면서 순식간에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다.
연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이제는 내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바람의 도움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바람이 세서 연줄의 장력이 세지고 연이 떠오르면 얼레를 푼다. 바람이 도와줄 때 얼레를 풀어놓아야 바람이 도와주지 않을 때 얼레를 감을 수 있다. 얼레를 다 풀고도 바람이 여전히 도와주고 있다면 그 때는 전진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걸어나갈 때다. 바람이 약해서 연줄의 장력이 약해지고 연의 고도가 낮아지면 얼레를 감아야 한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뒷걸음질을 쳐야 할 수도 있다.
아이들 놀이 같은 연 날리기이지만 어쩔 땐 연이 나에게 세상사의 순리를 알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일이 연 날리는 것과 닮은 점이 많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주변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이 많다. 내가 한 것 같지만 보이지 않게 도운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많다. 그래서, 잘 되었다고 교만할 것도, 안 되었다고 실의에 빠질 것도 없을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은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잘 날고 있는 내 연을 옆 사람의 연이 덮치는 순간과 같이 내 힘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도 맞이한다. 그런 때에도 내 역할은 명확한 것 같다. 애써 순리대로 풀어가는 것… 남의 탓으로 실패를 맛보았다고 내가 내 힘마저 들이지 않으면 아예 수습이 되지 않는 일도 있다. 연을 내리고 꼬인 연줄을 침착하게 풀어 가다 보면 자리를 펴고 앉은 시민들이 연줄을 잡아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하늘에는 바람이 있다. 좋은 결과가 곧바로 나와주지 않더라도 몸소 조금 더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바람의 손맛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바람의 흐름을 따라 장력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 날은 한껏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치과계에 바람이 불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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