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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나?

시론

축구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시즌입니다. 월드컵은 축구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지구촌 축제입니다. 바야흐로 20년전인 2002년, 우리나라는 일본과 제17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였습니다. 이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와 함께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축구는 우리 국민에게 더욱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축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대중적인 스포츠 종목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스포츠로 치부하기에는 축구는 특별함을 가집니다. 축구 경기는 부국이나 빈국, 사막이나 고지대, 그 어디서나 공 하나와 골대, 편평한 땅만 있으면 개최될 수 있습니다. 상대팀의 골대에 우리팀의 골이 들어가면 득점한다는 경기 룰도 단순하여, 누구나 쉽게 몰입하여 선수와 팀을 응원할 수 있습니다.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에서는 11명의 선수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사들이 되고, 국민들은 온 마음을 모아 이들을 응원합니다.

 

축구의 근원에 대한 설은 다양합니다. 사실 축구와 유사한 형태의 놀이 문화는 고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달하였습니다. 국제축구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 de football association, FIFA)은 사람들이 소나 돼지의 오줌통을 공기로 채운 뒤 공으로 만들어 차고 다닌 기록에 근거하여 축구의 기원을 고대 중국에서 찾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축구의 기원은 영국이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영국은 800년 경부터 북유럽 바이킹의 침략에 시달렸고, 1013~1042년까지는 바이킹 데인인 크누트 왕조가 영국을 지배하였습니다. 바이킹의 폭정과 학대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은 데인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사망자들의 두개골을 차면서 승전을 기념하였는데, 이것이 축구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영국은 19세기 전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축구를 전파하였습니다. 한 축구팀을 구성하는 인원이 11명인 이유는 19세기 영국 사립학교에서 기숙사 방 별로 축구대항전을 하는데 한 방의 인원이 11명이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를 만든 것도, 리그제 시스템을 만들어 대중적 인기를 끌어올린 것도 영국이기에 영국을 축구 종주국이라 부릅니다. 한국 근대 축구의 시초는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군함 Flying Fish호의 선원들이 인천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부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사실 영국의 축구 역사에서 보듯, 축구는 원시성과 집단성이 매우 강한 종목입니다. 축구선수는 상대편 선수와 몸을 직접 부딪히고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빕니다. 집단으로 경기하는 야구와 다른 점입니다. 축구선수 11명의 임무와 목표는 명확합니다. 공을 상대편 골대에 넣어 이기는 것입니다. 이는 원시 부족에서 부족원들이 한 몸이 되어 사냥감을 몰아 식량을 확보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사냥감은 느슨하고 빈 곳으로 도망가기 때문에 11명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사냥에 성공할 때까지 서로 긴밀하게 협동하고 호흡을 조절해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축구는 집단성이 강하기 때문에, 축구 경기는 ‘전투’로 은유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태극전사’, 스페인의 ‘무적함대’, 독일의 ‘전차부대’가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국가대표급 체력과 지략을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반복되는 일상과 현실에 순응하여 야성을 잃고 살아가다가, 파릇한 그라운드 위를 가로지르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날 것의 본능이 깨어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국민을 단결시키고,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배타적 애국주의를 부추기는데 축구를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과거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프로축구 리그를 민중의 불만 해소 창구로, 또 통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축구에 민족적 요소가 강하다 보니 경기의 열기가 현실의 국가간 전쟁으로 이어진 적도 있습니다. 1969년 남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월드컵 예선경기를 계기로 5일간 실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과 축구가 다른 점은 축구경기의 종료 휘슬과 함께 보통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쟁은 실제 무력 행위와 유혈사태가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축구 경기를 통해 야성을 가진 자연적 존재로 돌아가 은유적 전쟁을 치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전세계인이 축구를 사랑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한국 축구는 1983년 수퍼리그를 출범시켰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프로리그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프로축구 출범에 대한 기폭제가 되었으며, 그 후로도 한국 축구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시련을 맞이하였지만, 선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불굴의 투지로 도전해 왔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축구 분야에서의 성과는 대한민국 성공의 하나의 지표이기에 우리는 축구에 우리 삶을 투영시키고 또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