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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자연스러운’ 세상을 기대하며

스펙트럼

지금 28세인 나는, 20살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쉬지 않고 과외를 했다. 용돈벌이로 시작하긴 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언니누나 사이로 지내는게 재미있었다. 어느덧 나이가 벌써 30에 가까워지다 보니 이제는 언니누나로 지내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크게 나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항상 1:1 과외로 수업을 했는데 약 반년 전 친구의 권유로 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장소는 무려 대치동! 학생 시절에도 다녀본 적 없는 대치동 학원가에 선생님으로 다니게 되다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큰 상태로 어찌저찌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대치동의 이미지는 내 생각과는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일단 대치동 그곳은 내 생각보다 더 강렬했다. 내가 맡은 반은 ‘중등 의대 준비반’이었으니… 내가 다니게 된 학원이 유별나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긴 했지만, 처음 마주하게 됐을 때 적잖이 놀란 건 사실이다. 대치동은 진짜 이렇구나 라는 생각으로, 내 색안경은 더 진해졌다.

 

첫 수업 날 학생들을 만났는데, 내 색안경이 옅어졌다. 학부모의 등쌀에 쓸려 좀비처럼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을 상상했는데 이게 웬걸, 학생들의 의욕이 앞섰다. 자리도 맨 앞부터 채워지고 숙제가 적으면 더 내달라고 하는 학생들이었다. 이게 뭐지?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유전자 자체가 달라 보였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학교 공부만 하기는 아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원 생활을 거듭할수록 학원이라는 곳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중학과학도 채 끝까지 배우지 않은 중학교 1, 2학년들 학생들에게 고등 생명과학을 가르치라는 학원의 요구에 혀를 찼는데, 그걸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으로서 욕심이 나기도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의대 준비반’이라는 이름으로 팀 수업을 듣는 걸 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 세상에 들어가서 보니 학생들의 역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자녀를 낳는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조금씩 괴롭힌다. 이런 세상이 있는 걸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의대 준비반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솔직히 대답을 못하겠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렬함은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져 이 ‘대치동 학원가’의 문화에 둔감해질 즈음 충격적인 말을 하나 들었다. 가까운 학생 한 명이, 서울대, 더 나아가 의대를 진학하기를 바라는 이 학생이 내신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었단다. 모든 수업은 이제 학원으로 전향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려고 하는 듯 했다. 잠시 잊고 있던 사교육에 대한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내신이 뭐길래, 서울대가 뭐길래, 의대가 뭐길래 학교를 포기하는 걸까.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얼마나 많은데 무엇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쓸쓸하긴 하다. 그때 내 인생에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아이를 낳는게 맞을까…

 

어려운 세상이라고 새삼 느낀다. 자녀 교육의 세상은 너무 어렵고 나 또한 사교육과 공교육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사교육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교육에 대한 부모 관심의 크기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어렵다. 나부터도 아이를 낳으면 어떤 학원을 보낼지가 제일 큰 관심사가 될테니까. 그래도,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이런 생각을 피할 수가 없다. 공부가 뭐라고, 성적이 뭐라고, 서울대가 뭐라고, 의대가 뭐라고? 모두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질 수는 없을까. 오랜 시간 과외 선생님으로 사교육의 세상에 몸담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떳떳하지 못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어 이 공간에 하소연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