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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생을 보내며

시론

레이저에서 나오는 빛을 보지 말라고 눈을 가려주었다. 곧이어, ‘아플 거’라는 P 피부과원장의 위로를 자장가 삼아 눈 감은 김에 잠시나마 쪽잠을 자보려고 했지만, 살을 베는듯한 아픔과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니,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아볼 뿐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P 원장이 경영하는 피부과를 찾은 이유는, 이제 ‘강호(江湖-개원가)’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과정의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 있는, 그간의 세월의 흔적인지도 모를 ‘검은 반점들’을 좀 없애고 개원가로 나오든지 하라는 후배들의 충고를 듣고, 아는 피부과에 와서 레이저 치료를 받게 되었다. 과거에 개원했던 동네의 P 원장을 찾아가면, 예전의 개원가 동료라는 생각에서인지, 개원 초기에 함께 예비군훈련 등을 받았던 기억을 되살려 준 탓인지, 필자가 가면 별로 진료비를 청구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재료비 정도만 받는 P 원장이다. 바쁜 시간 중에, 불쑥 찾아간 필자에게 짬을 내어 아픈 레이저 치료를 끝내고, 한 달 후에 다시 오라 하고, 다음 환자를 부른다. 필자는 P 원장을 믿는다. 이 친구에게 내 몸을 맡겨서 어떤 탈이 생겨도 그건 불가피했을 상황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믿을 수 있는 P 원장이다.

 

지금부터 34년 전쯤에 서울 모처에서 필자도 ‘개업’이라는 것을 하였었다. ‘청운의 꿈’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었지만, 이전의 경제적 어려움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개원치과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던 것 같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손’을 타고난 필자였지만, 그 당시에는 ‘공휴일’도 진료하고, ‘토요일 3~4시’까지의 진료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개원 3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난데없이 ‘세무조사’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하루에 아말감 tablet을 몇 개 소모했는지 그 개수를 확인하면서 그야말로 ‘돈벌이가 안 되었던’ 보험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했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전히 ‘세무조사’를 당하고 담당 세무사가 인근치과의원과 비슷하게 신고했던 관행에 의한 신고금액(?)과 실제 수입과의 차액에 대한 추징금을 납부하고 나니, 개원 3년 동안 모인 돈(?)마저 자취를 감추었고, 그제서야 정신을 추스르고, 개원한지 3년째인 신규개원치과의사가 세무조사라는 것을 당하게 된 연유를 알아보게 되었다. 머지않아 당시 세무 당국에 요직(?)으로 근무하던 친척 분이, 왜 세무조사 당시에 자기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를 원망하면서, 누가 필자를 세무조사대상자로 추천(?)하였는지를 수개월 후 확인해 주면서 의문이 풀렸다(지금의 후배들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그 당시의 이야기이다.).

 

전문대학 치위생과에 교수직을 맡고 있던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 당시였다. 일주일에 하루만 ‘강의’를 나와, ‘세무조사’의 충격으로부터 ‘머리를 식히라’는 요청이었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개업치과의사로서는 타산이 맞지 않는’ 행위였지만, 그래도 필자를 믿고 강의를 요청한 필자의 제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면서, ‘강사료’ 신경을 쓰지 않고 강의에 전념했던 것 같다. 당연히 치과 수익은 감소되었지만, 밤늦게까지 강의 준비하는 필자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어주며, 남편을 믿어준 아내에게 ‘지금도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느낌을 갖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것인지를 필자의 길지 않은 인생 경험에서 처절하게 배운 시기였고, 앞서 언급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필자가 ‘믿음’이란 중요한 덕목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개원 15년의 기간을 접고, 현재의 직장으로 옮겨와 ‘봉직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하니, 치위생(학)과의 강의 요청도 많아졌고, 현재 근무하는 직장 소속 대학원으로부터의 강의 요청도 있었다. 강의에 따른 ‘교안’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고, 이 기회에 아는 출판사에서는 ‘책’을 출판하자고 해서, ‘저서’라는 것도 내게 된 것 같다. 그 당시, 지금은 작고하신, ‘구강보건통계학’을 담당하시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 문혁수 교수께서 ‘투병 중’이셔서, 치과의사가 저술한 최소한의 구강보건통계학 교재의 맥이라도 이어가야 하는 당위성에, 필자라도 작은 도움을 드린 것 같고, ‘구강보건통계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작은 ‘소망’의 떡잎을 자라게 한 것 같기도 하여, ‘보람’을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이제는 치과대학 및 치전원을 비롯해 치위생(학)과에서도, 치과의사에게도 쉽지 않은 ‘구강보건통계학’을 강의하는 학교가 적어, 교재는 사실상 사장될 우려가 있지만, 4차, 5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후학들이 충분히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소망’의 잎을 키우고 있다.

 

강의나 전공의 수련을 시키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나 수련의는, ‘학업이나 수련과정을 잘 따라오는 학생이나 수련의’일 것이다. 필자도 이런 학생이나 수련의들 중 몇 명과 함께 근무했던 것 같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 중 몇몇과 함께 근무하면서 필자가 배운 것은,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은, ‘믿음을 줄 수 있는 인재인가?’의 물음에 “Yes.”여야 더 바랄 바가 없는 인재를 선발한 것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함께 지내며 주변의 가르침과 학습을 통해 본인 스스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지닌 인재라면, 이들을 보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인재이므로, 이들 또한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

 

반면, ‘이 직원은 부족함이 많은 직원이지만, 우리가 사랑으로 감싸면 하나의 팀은 이룰 수 있는’ 인재의 경우는, 그 전제 조건이 ‘주변의 끊임없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직원과의 화합 여부는 다른 직원들의 사랑과 이해에 화답하는, 직원 본인 스스로가 베푸는 ‘사랑’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경쟁력’이 있는 인재를 선발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믿을 수 있거나’, 본인 스스로의 ‘소망의 떡잎을 지니고 있는’ 인재를 선발해야 할 것이다. 주변의 끊임없는 ‘사랑’이 필요한 인재도 좋은 인재로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인간들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지속적으로 주는 경우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끊임없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이들의 관계가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성경 말씀을 이 기준에 비추어 기독교인인 필자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난 2월 말에는 본원을 떠나 SKY대학 중의 한 치과대학병원 레지던트로 새 출발을 하는 인턴 K 선생이 마지막까지 필자 곁에서 진료를 돕고 있었다. 필자 생각으로는 품성, 실력, 성실함 모두 나무랄 데가 없는 K 선생이라, 본원에서 붙잡지 못한 것을 한동안 아까워했을 정도였다. 인턴 수련 기간 마지막까지 예방치과 교수를 도와준 것이 필자도 고마워서, 인턴 K 선생의 앞날에 도움이 되라는 의미로, 해당 대학병원에 계신 아는 교수분께, ‘K 선생은 믿을 수 있는 선생’이라고 짤막하게 추천하였고, 3년간 전공의로 수련받는 동안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시라는 당부를 하였다. 필자가 발견한 ‘작은 소망’을 귀 병원 교수님들도 발견했으면 한다는 ‘주제넘는’ 첨언도 하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