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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치과의사 “과묵했던 아버지, 손자 치대 갈 땐 웃음꽃 만개”

<치과의사 3대 가족>
박재석·박창진 부자 이어 3대 태범 분당서울대병원 인턴 시작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기, 호기심 자극 과제 부여가 교육 비결

 

1968년 박치과의원을 개원하고 40여 년을 동네치과의사로 살아온 박재석 원장(서울치대62졸)은 환자들에겐 친절했지만 집에선 비교적 과묵한 가장이었다. 대신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족에 대한 헌신이 느껴졌고, 자녀들에게는 특별히 공부나 가업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들 창진이가 치대에 들어갔을 때는 다소 무덤덤했던 박 원장은 손자 태범이가 치대에 들어가 3대가 가업을 잇게 됐을 때는 정말 기뻐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치과계에 교정 및 예방 프로토콜 연자로 널리 알려진 박창진 원장(미소를만드는치과의원·경희치대95졸)의 아들 박태범 씨(부산치대23졸)가 올해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치과의사 3대의 가족사를 들어봤다. 
 

“치과의사로서 할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잘 없고, 어렸을 적 아버지, 어머니 치과 대기실이나 원장실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치과의사의 꿈을 키운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치과의사란 직업을 권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항상 잘 놀아주고 재미있지만 힘든 숙제를 많이 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박태범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버지 박창진 원장은 진료와 강의 등으로 늘 바빴지만, 주말이면 항시 자녀들과 온종일 함께 놀아주거나 소풍이나 여행을 다녔고, 특히 태범 씨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라면 학생의 범주를 벗어날 정도의 다양한 논문 자료나 관련 장비들을 안겨주고 달성해야 할 숙제를 내주곤 했다.  

박태범 씨는 “아버지는 과제를 통해 항상 호승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과제를 달성하면 더 많은 지식을 알려주거나 숙제를 내줬다.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느꼈고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며 “치대에 진학한 후에는 어떤 치과의사가 될지에 대해 롤 모델이 됐다. 대학공부에 도움을 받은 것은 별로 없지만 국시준비과정 중에 치과교정학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 “아버지처럼 교정과 전문의 되고파”
 

태범 씨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아버지처럼 교정과 전문의가 된 후 예방적인 진료에 힘쓰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치아는 한번 깎으면 재생이 안 되니, 예방에 중점을 두고 환자 스스로가 치아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태범 씨는 “할아버지는 평소 감정을 드러내시는 경우가 많지 않으신데, 치대에 입학했을 때, 그리고 치과의사가 됐을 때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그리고 인턴 생활을 시작할 때 정말 기뻐하시면서 격하게 포옹해 주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더 좋은 치과의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창진 원장은 “나 역시 그저 치과의사로서 아버지의 삶을 보고 이 길을 스스로 택했다. 어렸을 적 저녁이면 아버지가 TV를 켜놓고 한 켠에서 교정장치를 만들곤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때 옆에서 자투리 와이어를 구부려 아버지가 만드신 클라스프 같은 것을 비슷하게 만들곤 했다”며 “제가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는 무엇을 강요하기보다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데 노력했다. 많이 놀아주고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데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아이들을 키우며 중요시했던 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을 갖춘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직업적으로는 치과의사의 길 말고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을 하길 바랐다. 치과의사란 어찌 보면 좁은 한 공간에 얽매인 삶일 수도 있다”라며 “할아버지, 아버지를 보며 이 직업에 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좁은 공간에서 작은 입안과 치아를 보는 치과의사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를 보고 넓은 시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하고 있는 일을 행복하게 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수 손자가 수련받게 된 병원을 찾은 박재석 원장은 “치과의사는 환자가 건강하게 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최선의 치료 방법을 결정하려면 환자의 사회경제적 상황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목전의 수입이 아니라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이면, 먹고사는 것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자들은 모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