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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락락 9988(口口樂樂 9988) -입이 즐거워야 99세까지 건강합니다–

Relay Essay 제2552번째

치매 치료로 유명하신 모 신경과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에게 부모님의 ‘치매’가 ‘말기암’ 정도의 충격이라면, ‘치과 문제’는 ‘피부병’ 정도 수준의 타격이라고 합니다. 당장 암이라는 커다란 문제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 몸에 난 두드러기 정도는 내버려 두든지 연고나 바르면 되지, 굳이 병원을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다는 거죠. 치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고 당장 먹고 자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진 마당에, 칫솔질 못하고 충치가 좀 생긴다 한들 그것이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매국가책임제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치매 정책을 살펴보면 구강건강 분야는 철저히 소외돼 있습니다. 컨트롤타워인 중앙치매센터, 전국 256개 5000여 명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치매안심센터를 비롯한 치매와 관련된 어떤 기관에서도 구강건강분야 종사자는 전무합니다.

 

보건복지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치매직종별 교육’에서도 치과의사, 치과위생사는 대상자가 아닙니다. 치매 어르신의 거의 99%는 치과에 못 가시니, 당연히 연 1회 치석제거술이나 틀니, 임플란트 등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치료도 받지 못합니다. 이분들이 사용하지 못한 공단부담금이 최소 1년에 1000억 이상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책정된 장기요양환자 구강 관리 예산은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0원입니다. 하지만, 이게 말이나 되냐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치매 환자에게 치과 문제는 암환자 몸에 난 두드러기 정도일 뿐이라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치매 환자에게 구강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금보다 더 큰 소리로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해나간다. 둘째, 치매 환자의 구강건강 문제를 누구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고관절 골절’ 수준으로 인식을 전환 시킨다.

 

제가 혈기 왕성하던 20~30대였다면 당연히 전자의 방법을 썼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나이를 먹고 삶의 경험이 하나씩 쌓이다 보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인식개선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구로 비교하자면 노 쿠션에서 쓰리 쿠션으로 바뀐 것이지요.

 

즉, 치매 환자라서 구강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구강건강은 중요하기 때문에 치매 환자도 구강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사람들의 인식을 천천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유행어처럼 자주 쓰이는 ‘9988(99세까지 팔팔하게)’의 앞에 ‘입이 즐겁다’는 의미의 ‘구구락락(口口樂樂)’을 붙여 ‘구구락락 9988’이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구구락락 9988’은 ‘입이 즐거워야 99세까지 건강하다’는 뜻으로, 먹고 웃고 말하는 구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구강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바로 전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치매 환자에게 구강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누군가가 9988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저는 “에이~ 앞에 구구락락(口口樂樂)이 빠졌네요. 입이 즐거워야 오래 살죠”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