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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차별’에 대하여

시론

3월의 어느 날, 오랜만에 과거에 다녔던 이발소를 찾아가 이발을 하고, 지하철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본 관광객으로 가득찬 객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본에서는 3월은 졸업을 하고 사회인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학생들은 진급준비를 하는 여유로운 시기이다. 그런 탓인지 일본의 젊은이들이 캐리어를 끌고 웃으면서 지하철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요즈음은 ‘앱’이 발달이 된 탓에 굳이 길을 묻지 않아도 된다.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에 내려갔더니, 역장처럼 보이는 역무원이 필자를 불러세우며 일본 관광객이 길을 물어보는데 대답을 해 줄 수 있냐고 해서, 이 분이 필자가 일본어 배우는 중임을 어찌 알았을까 의아해하면서 일본관광객들이 타야 하는 방향을 알려 주었고, 내리는 역도 안내해 준 적이 있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겠지만, ‘사족(蛇足)’처럼 뿌듯한 느낌으로 했던 행동을 최근에는 후회하곤 하는데, 필자가 내리면서 함께 동승했던 일본 관광객들에게 다시 가서 어설픈 일본어로 필자가 내린 후 몇 번째에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매우 고마워하면서도 부담스러운 표정을-고맙다는 표시를 별도로 해야할까 하는-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친절한 아저씨’로 평가받았을 것이고, 아무리 저평가되더라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 정도로 간주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 후, 일본을 수시로 왕복하면서 ‘구취증’ 공부를 하는 중에, 본의 아니게 일본의 문화를 접하다 보니, 필자가 일전에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은 ‘철도의 왕국’이라고 불리워도 좋을 만큼 철도가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나라이다. 지하철이나 철도(국철, 사철)를 이용할 때, 우리나라에서처럼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줄을 길게 늘어서서 승객들이 내리기 무섭게 올라타곤 한다. 운이 좋아 입석 열차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옆 사람의 옆구리나 어깨를 닿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게 앉는다는 것이고, 한번은 머리가 하얀 은발 신사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니 오히려 사양하면서 당황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재일교포 치과의사 선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며 그 답을 해 주었다. 일본은 어렸을 적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예의’를 배운다는 것이고, 머리가 하얗더라도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활동하고 있으면 ‘나이’에 대한 대접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도 해 주었다. 다만, 누가 보아도 몸이 불편하거나 노쇠해 보이는 분에게는 서둘러 양보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일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철도를 이용할 때, 승객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조금 더 이해가 가는 광경들이 보이는 것이다.

 

일전에 한국에서 일본 관광객들에게 필자가 베푼 지나친(?) 친절은, 받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 되는 것이다. 입석 열차를 타고 음식물을 먹거나(좌석이 지정된 열차에서는 가능하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하는 승객들은 드물고, 설사 있다면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이나 한국 관광객인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젊은이들을 관찰해 보면, 모르는 옆사람이 무엇을 하건 상관하지 않으면서, 옆사람의 행동이 정 불편하다 싶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는, 과거에 서울에서 대전 정도의 거리까지 옆자리에 앉게 되면, 대전 정도에서는 서로 연락하자며 인사를 하고 내리기까지 했었던 기억도 있다. 싸가지고 간 음식물이나 음료는 당연히 나누어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 함께 살았다든지, 어느 학교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라면 더욱더 간절한 관계로 발전했던 것 같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도 과거와는 많이 ‘다른’ 나라가 되어가는 것 같다. KTX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함께 앉아 오더라도, 기껏 건네는 말이 화장실 갈 때 잠시 비켜달라는 말 정도인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서로 피해를 주지 말자는 ‘예의 바른’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여운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 느낀 것은, 때로는 두 나라의 ‘문화’의 차이가 우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속마음(本音)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 한민족들은 사람을 만나면 자신에 대한 소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도 쉽게 드러내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철도를 이용할 때, 좌석이 정해진 열차에서 배가 고파 역에서 사온 도시락을 펴고 혼자 먹기가 미안해서, 옆에 앉은 일본 젊은이에게 어눌한 일본어로 과일이라도 함께 드시겠냐고 권했는데, 자신은 괜찮다고 하고, 마스크를 쓰고 휴대폰을 보는 광경이 떠오른다. 순식간에 ‘한국에서 온 손님(?)의 무안한 손’을 만들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로 무척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일본어’였다. 언어를 알면 그 나라 문화를 알 수 있고,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부했던 것 같다. 방문할 때마다 늘어나는 필자의 언어 능력에 그들이 감동(?)했는지, 필자에게 ‘구취증 조절법’을 가르쳐 주신, 당시 대가(大家, 巨匠)였던 일본 치과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택인지, 혹은 필자의 출신학교와 현재의 신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자에 대한 대접은 각별했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수평적인 관점이라고 하면, ‘차별’은 수직적인 관점일 것이다. 최근의 한일관계를 두고 Media에서는 연일 공방이 끊이질 않는다. ‘극우(極右)’에도 ‘극좌(極左)’에도 속하지 않은 필자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한일회담의 성과는 천천히 평가해도 늦지 않고, 우리의 2세들에게 가르쳐야 할, 일본 관련 과목의 교육 강화(국사, 세계사, 일본어학 등)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의 2세들이 일본을 정확히 알면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일본을 우리 후손들 세대에서 앞서나갈 수 있고, ‘차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에 관계없이, 우리는 더 정확히 ‘일본’을 우리 후손에게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다.

 

도쿄 신주쿠(新宿) 거리의 광장에서는 주말에 ‘반한(反韓)집회’가 자주 열리곤 한다. 한국 관광객들은 이곳을 지나가면서 한국사람 티를 내면 곤혹을 치를 수도 있다. 반대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집회가 열릴 때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는 일본 관광객이 경복궁이 어디냐고 물으면 경복궁 정문까지 데려다주는 우리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한민국의 피를 이어받아 일본의 재일교포들은-오사카 지역의 경우, 30% 정도의 인구가 재일교포 또는 그 후손이라고 한다.- 저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에 굳세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2002년에 한일월드컵 중계 TV로 ‘재일동포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붉은 악마’의 응원 문구를 보고, 일본내 재일교포들은 감동의 눈시울을 붉혔다고 필자에게 전해 주었다. 필자는 일본내 치과의사들이 모이는 학회에서 논문 등을 발표하면서, 그 자리 어느 곳에서 차분히 필자의 발표를 듣고 있을 재일교포나 그 후손 치과의사들을 생각한다. 그분들이 들었을 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발표가 되도록 필자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