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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시론

금년의 일본구취학회는 지난 6월 초, 일본 Fukuoka 치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숙소를 정한 Hakata라고 불리우는 도심에서 Fukuoka 치과대학은 꽤 먼 거리였다. 그러나, 학회가 열린 이틀간 지하철로 후배 교수 및 함께 참석했던 개원 원장들과 함께 왕복하는 동안 많은 행복감을 느꼈다. 참가자 모두가 어렵고 바쁜 와중에 애써 시간을 내어 참가한 국제학회였다고 생각한다. 강릉에 본인이 새로 지은 집이 지난 화재에 전소되어 그간의 추억과 기록, 재산을 모두 잃은 M 교수, 최근 ‘치과경영개선’ consultant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K 원장, 최근의 투병을 잘 이겨내고 있는 A 원장과 정년을 앞둔 필자까지 4명이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조촐한 팀이었고, 필자의 머리 속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다소 복잡했지만, 매시간 해야 할 일로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대회장을 맡고 있던 다니구치(谷口 奈央) 교수에게 여러모로 배려해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스승 격인 Honda 선생님(本田 俊一)의 건강하신 모습에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일본 내 ‘구취진료전문 인정의’를 대한민국 2호로 취득하고자 하는 K 원장의 앞길에 대한 부탁을 드렸고, 추후 일본구취학회와 우리 Team의 연결고리를 맡아줄 M 교수와 A 원장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일본 관계자들에게 고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설픈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부탁을 하였고, 학회장 밖에서는 일본내 구취측정기의 한국내 인허가를 위한 일본업체측의 협력을 부탁하였고, 새로운 구취조절재료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여 회원들에게 알릴 거리도 준비하였다. 다행히 한국내 소수 정예의 회원들만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A 원장의 내년도 일본구취학회 발표까지 덤으로 의뢰를 받았다.

 

필자의 예방치과 분야의 전공에서 세부 전공을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생리적 구취증의 예방법’이라고 요즈음은 대답을 하곤 한다. 묻는 사람도 이를 듣는 사람도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드는지 그 다음 질문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는, 필자 스스로는 ‘세부 전공’을 독보적으로 택했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 ‘남들이 안 하는, 돈이 안 되는’ 분야를 세부 전공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본에 가서 어렵게 배워온 분야이고, ‘생리적 구취증 예방’의 불모지-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구취 진료는 주로 병적 구취증 진료에 치중되었다고 생각한다.-를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10년 넘게 노력해 온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후배 제자들을 배출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의 시간을 안일하게 보내왔지만, 엄밀하게 평가해 보면 아직은 옹달샘에 불과한 수준인 것 같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윗물이 ‘콸콸’ 솟아야 아랫물이 ‘웅대한 강’을 이룬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윗물이 아랫물 위치로 흐르는 과정에 방해(?)하는 구조물이 있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물의 특성상 이 구조물들을 통과하여 아래 위치로 이르게 되지만, 옹달샘에서 샘물이 솟지 않거나 비가 오지 않아 가물게 되면, 흐르는 물이 어느 구조물에 갇히게 되거나 마르게 되어, 이 물은 계곡물에 도달되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웅대한 강의 모습을 만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정년을 앞둔 교수’의 할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하나의 ‘획’을 첨가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게으른 필자가 요즘 하는 일은 그러한 일이다. 잘될지는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생리적 구취증 예방법 교육’을 위한 system을 구축하는 일로, 우리나라에서 현재 생산되거나 수입이 가능한 기기와 재료를 사용하여 생리적 구취증을 예방할 수 있는 protocol을 만들어 발표하는 일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생리적 구취증 예방을 위한 임상진료지침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에서도 동일한 ‘생리적 구취증 예방 protocol’을 이용하여, 동일한 기기와 재료를 사용하면서 생리적 구취증을 예방할 수 있도록 치과의사들이 교육받도록 하여, 생리적 구취증으로 고민하는 환자가 치과의원에 내원했을 때, 이를 해당 진료지침에 의거하여 예방법을 교육할 수 있도록 counselling system을 구축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강의 상류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옹달샘 수준의 수량이지만, 물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언젠가는 많은 양의 물이 시내를 이루고, 계곡물이 되어 흐를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4년 전인가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가족이 함께 ‘무주구천동 계곡’을 찾은 적이 있다. ‘계곡’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인지 ‘오염’을 막기 위해서인지 ‘무주구천동 계곡’ 전체가 ‘입수금지’가 되어 있었다. 필자의 20대 대학생 시절에 이곳을 찾아 ‘무주구천동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더위를 잊고 함께 왔던 친구들과 담소하던 기억, 이끼 때문에 미끄러운 바위에서 미끄러져 차가운 계곡물에 빠졌던 기억 등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계곡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멀리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면서 필자의 20대 추억만을 기억해낼 뿐이었다.

 

‘입수금지’라는 표지판이 없고, 물의 흐름이 막혀 있지 않은 계곡물에, 어느 누군가가 발을 담그며 적신 수건으로 이마의 흐른 땀을 닦으면서 더위를 잊을 수 있다면, 계곡물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타고난 DNA의 염기서열이 그리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못하면서, 성격을 구성하는 DNA의 염기서열만 특이한 필자의 역할은 흐르는 물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그 물길이 모여 계곡물이 되고 강에 이룰 수 있도록 ‘옹달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