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 (목)

  • 구름많음동두천 23.2℃
  • 구름많음강릉 27.7℃
  • 박무서울 24.1℃
  • 박무대전 24.1℃
  • 맑음대구 25.9℃
  • 구름많음울산 25.7℃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4.1℃
  • 맑음고창 24.0℃
  • 맑음제주 26.0℃
  • 구름조금강화 22.8℃
  • 구름많음보은 23.2℃
  • 맑음금산 22.2℃
  • 맑음강진군 24.2℃
  • 맑음경주시 24.9℃
  • 맑음거제 23.9℃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 개설만으로 처벌 불가” 논란

대법, 실체없는 의료법인·수익금 부당유출 한해 처벌 판시
치협 “향후 하급심 사무장병원 판결 위축 초래 깊은 유감”

 

이른바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과 같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의료법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비의료인이 세운 의료법인이 실체가 없는 ‘유령 법인’이거나 수익금을 부당하게 유출한 경우로 한정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치협은 성명서를 발표, 향후 하급심의 사무장병원 판결의 위축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비의료인 P씨는 형식적으로 의료법인 설립 허가를 받은 뒤, 이사장 자격으로 개설 신고를 하고 의사 등을 직접 고용·진료를 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올랐다. 당시 P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37억8000만 원의 요양급여를 챙긴 혐의도 받았다.

 

원심 재판부는 비의료인인 P씨가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없는데도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세운 의료법인이 실체가 없거나, 수익금을 부당하게 유출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에 관여하는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격 위반이 된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설립 자체는 허용되는 상황에서 이 기준만으로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을 처벌하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란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동이라 할지라도 법률이 범죄로서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고, 범죄에 대해 법률이 규정한 형벌 이외의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설립을 허용한 이상,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개설·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출연하고 임원의 지위에서 운영에 관여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김준래 변호사(법학박사·전 건보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는 “이번 판결은 기존의 사무장병원의 판단기준을 대폭 완화했다고 판단된다. 새로운 기준에 의하면, 외형상으로만 의료법인 형태를 갖춘 경우에 한해 사무장병원으로 보겠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사실상 의료법인 개설 병원의 경우에는 향후 사무장병원으로 판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 추가적으로 실체가 없는 의료법인이거나 비의료인이 재산을 부당유출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무장병원이라는 것인 만큼, 의료법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실무상 사무장병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치협 “원심 파기 환송 유감”

이와 관련 치협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발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한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개설·운영에 대한 파기 환송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아울러 앞으로 하급심의 판단을 예의주시하며 불법 의료기관에 대한 사전감시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법인 설립기준 구체화 및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천명했다.

 

치협은 성명서를 통해 “불법개설 의료기관 설립 주체가 점차 다양화돼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이 출몰하게 된 상황에서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을 비의료인과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논리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는 오히려 사법부가 나서서 의료법인 수익금 편취를 용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치협이 그간 적발된 사무장병원을 분석해 보면, 의료생협·사단법인·종교법인·재단법인 등의 개설주체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주도적으로 개설·운영한 것에 대해 개설 자격을 위반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하고 있는 만큼,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무장병원 개설 및 운영 금지에 대한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잘못된 판단은 향후 사무장치과에 대한 수사와 하급심 판결의 위축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치협은 “공공성과 비영리성의 일탈 행위에 대해 미흡하게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 하급심에 대해 의료의 특수성을 제대로 헤아리는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사무장병원은 낮은 인프라 수준, 의료질 저하, 과잉진료 가능성, 건보재정 누수, 의료 지속성의 제한 등 국민들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며 “앞으로 치협은 하급심의 판단을 예의주시하며, 지속적으로 불법 의료기관에 대한 사전감시방안을 검토하고, 법인 설립기준 구체화 및 관리체계를 강화함으로써 국민건강을 수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